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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가 주시다 / 행 2:17, 25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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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행2 : 17, 25 - 41절
제 목 : 예수가 주시다

오늘 본문말씀은
마가 다락방의 오순절 성령강림 후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왜 이 설교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2:1절 이하에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 위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사람들 위에 임하는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나 저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6절에 사람들이 제자들이 방언 하는 것을 보고 소동하더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부인은 할 수 없지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저들이 새 술에 취한 것이다 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열 한 사도와 함께
[ 여러분 여기 귀를 기울어 보세요! ] 하고 외친 설교가
14절부터 시작되어지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오전 9시인데 무슨 술을 마시겠느냐?
술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 요엘로 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성령의 부으심 즉 성령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 따라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1절 이하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다 성령이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그것도 각 국 나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말합니다.
그러니 말이 달라졌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복음전파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복음이 세계각국에 전파된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17절에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합니다.
자녀들이 예언을 합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2>
늙은이들이 꿈을 꿉니다.
예언 환상 꿈은 구약의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실 때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 바로 희망을 말합니다. 비전을 말합니다.
삼상3:1절 사무엘 어린 시절 즉 엘리 제사장 시절에
[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니 백성들에게 희망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니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 받으면 비전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비전에 헌신되어 집니다.
우리도 성령 받아 비전의 사람되시기 바랍니다
그 비전에 헌신되어져 주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두 사람이 있습니다.
1) 꿈을 가진 사람 즉 비전을 가진 사람이고
2) 죽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비전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왜 초대교회 성도들이 행17:6절 말씀처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 즉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란 별명이 붙었을까요?
바로 성령 받아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럼 성령이 누구에게 임합니까?
16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17절에, 내가 내 영으로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구약에는 특정인에게만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육체, 남종과 여종들,
그러나 누구에게나 성령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예언과 환상과 꿈을 보게 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해서 예언과 환상과 꿈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이 예언을 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같은 대선지자와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홈 하바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같은 소선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고 그들을 통하여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언은 미래의 막연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3>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종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합니다.
특히 자녀들이 예언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에 하나님의 사건을 내어다 본다는 말입니다.
특히 성령받은 청년들 자신이 앞날을 내어다 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환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빌게이츠는 검퓨터를 통해 환상을 보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통해 환상을 보았습니다.
박세리는 골프를 통해서 환상을 보았읍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을 어떤 환상을 봅니까?
젊은이들이 기껏해야 시집가고 장가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박사학위를 따서 엘리트가 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세상적으로야 이것도 건전한 환상입니다.
오죽하면 오렌지족이란 말이 생기고
복권 사서 한 밑천 잡아볼까 하는 망상보다야 낫지만
그러나 내 인생과 내 젊음을 투자해서 영원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도전하고 모험하는 환상을 가져야겠습니다
이것이 성령받은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경직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령 받으면 꿈을 꿉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아 희망의 사람 비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충만 받으면 신앙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으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같이
부활의 생명, 역동적인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25-28절은 다윗의 시16:8-11절까지의 인용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약1000년 전 사람이었지마는
다윗은 부활의 신앙에 눈이 뜨여져 그가 사망의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한 생명의 길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부활의 신앙과 같이
진정한 성령충만이란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으면 <4>
나의 삶에 3가지 뚜렷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이것들은 다윗이 체험한 것입니다.
26절 [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
1)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어찌 이 세상 기쁜 일만 있겠습니까?
병들 때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때도 있고 시험에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령 받아 복음 전하다 보면 바울같이
욕 얻을 먹을 때도 있고, 고생할 때도 있고, 심지어 감옥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 받은 사람의 특징은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기뻐하고 기뻐하라 그리고 또 기뻐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임한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충만한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2) 내 입술도 즐거워합니다.
시편에는 [ 내 영광이 즐거워 하도다 ] 라고 합니다.
그 입술에 하나님의 영광이 담긴 찬송과 감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술이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입만 벙긋하면 욕이 나오고 비판이 나오고 불평이 나옵니다.
그 입술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입술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성령받은 성도의 두 번째 특징이 바로 감사와 찬송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교우들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 교우 가운데도 정말 어려운 가운데도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는 교우들 있습니다. 저들에게 부활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분명히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육체는 희망에 거합니다.
물론 부활의 신앙을 말하는 표현이지만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우리가 죽어서 천당 갈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고후4:8절 이하 말씀같이 역동적인 생명을 안겨다 줍니다.
< 사방에, 답답한 일, 핍박을, 거꾸러뜨림을 >
육신적인 삶에도 희망과 용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의 설교 중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위대함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5>
성경은 사람의 공적이나 업적 또는 자랑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다윗의 배후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다윗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으로 말하자면 그도 역시
29절 [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다윗도 역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성령 받은 자로서 )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갖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무엇이냐? 일찍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
30절 [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 한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었고
다윗은 27-28절에 노래같이 죽음에서 생명의 길을 보았듯이
3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설교하고자 하는
핵심이요 결론이 무엇인냐? 하면
결론을 두 가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32절을 의역하자면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다윗이 말했던 그 부활이 지금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일의 목격자다 ]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1:8절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말씀같이
너희도 성령 받아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예수님의 복제판이 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영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복제판이라 해서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교회 목사로부터 은혜 받으면
그 교회 목사 닮아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입을 때 제2의 엘리야가 된 것과 같습니다. 순복음 교회 보세요. 조용기 목사님 밑에서 은혜 받은 목사는 다 조용기 목사님 스타일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죠. 성령 충만하면 입만 벙긋 하면 예수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36절 <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베드로의 설교의 또 한가지 결론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주시라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껍질을 벗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진리의 말씀이 불덩어리가 되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가슴이 찔리고 어찌할꼬 하는 통회가 일어나고 그날 삼천 명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미워했고 욕했고 괴롭히며 급기야 죽였는데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를 가든지 저들은
[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다 ] 고 고백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가 주시다 라는 고백은 예수의 주권에 나 자신을 맡기는 행위로서 예수의 주권적 통치에 순종을 서약하는 것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단을 주인으로 섬겨서는 안됩니다.
그의 속임수에 빠져 나를 주인으로 삼고
자기를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돈과 세상의 쾌락과 출세를 위장해서
나를 주장하려고 하는 사단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예수가 주시다 라고 외치며 예수님의 주권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귀의 통치를 받는 육체의 소욕 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성령의 소욕대로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의 은혜 받아 가는 곳곳마다, 하는 일들마다
예수가 주시다 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아가는 내일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했을 때
이 말씀을 듣는 무리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났습니까?
5.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37절)
37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어찌할꼬 ] 하며
회개하며 전혀 새로운 방향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7>

첫 반응은 [ 마음에 찔려 ] 라는 반응입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는 말은 예리한 칼로 베임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예리한 칼에 베여 보면 베인지 안 베인지 표가 안 납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피가 나고 살이 벌어지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린 사람들
겉으로는 표가 안 나지만 감추어진 마음이 드러납니다.
히4:12-13절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말씀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면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드러내어 놓습니다.
성령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새로운 삶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상한 심령인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하다 보면 가끔 그런 말을 듣습니다.
[ 어떻게 나보고 설교합니까? ] [ 이번 집회는 꼭 나를 위한 부흥회 같다 ] 그럴 때 거역하지 말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왜 저들의 마음이 찔렸을까요?
1) 성령을 모독하고 거슬렸기 때문에 마음이 찔렸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이 설교를 합니까?
성령의 역사를 저들이 비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비웃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외면하던 사람이
어느 날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역사 하면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사 회개를 합니다.
2) 그들의 마음이 찔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죽였지, 로마 군병들이 죽였지, 나는 그 자리에 없어서
라고 변명하던 그들이었는데
[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주가 되셨느니라 ] 하니
마음에 찔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 십자가의 죽음과 아무 상관없던 자가
어느 날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 앞에서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내 죄 때문이다 ] 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사건은 십자가의 사건과 연관된 사건인 것입니다.<8>
꼭 생애 한 번 이상은 십자가의 사건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반응은 [ 우리가 어찌할꼬? ] 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이 어찌할꼬? 가 없는데 있습니다.
어찌할꼬 없는 은혜 은사 바로 성령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찌할꼬 없는 축복은 기복이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어찌할꼬? 가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어딘가 믿는 데가 있는 사람은 어찌할꼬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돈 좀 있는 사람은 어찌할꼬 라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돈이 바닥나야 어찌할꼬 합니다.
좋은 직장, 배경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건강 있는데 뭘 하면 못 살아 하고
어찌할꼬 라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 건강 배경 등이 모두 바닥나야 어찌할꼬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굉장히 답답해하십니다.
어찌할꼬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그 입에서 고백이 안나오니깐
갖고 있는 것을 자꾸 뺏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은혜 앞에 어찌할꼬 하고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령 사건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38절에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 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줍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가정생활 직장생활 자녀교육 돈 버는 일,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하고 최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최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위기를 당할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위기에서 구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그 분이 창조주요 왕이요 주권자요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성령 사건이 일어나 성령을 선물로 받아
예수가 주시다 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나면 <9>하나님이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주시고 그 분의 말씀이 먼저고 그 분의 뜻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건 즉 성령의 사건이 나의 삶이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건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사건입니다.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예수가 주시라는 사실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성령사건으로 삶의 방향전환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가 주시라는 사실을 나의 삶의 현장뿐만이 아니라
세계 만방에 전하기로 결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결론>
결론으로 초대교회 순교사 한가지를 소개합니다.
주후 32년 경 겨울에 로마 황제는 군인들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은
이교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 칙령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그 직분을 잃을 뿐 아니라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무적의 사단이었던 12사단의 사령관은 자기들의 부하를 불러모아 놓고 그 칙령을 읽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2사단 군사들이여, 여러분은 여러 전투에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황제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제국의 가이사에게 충성을 다 하는데 앞장섭시다.
내일은 우리 사단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얼마 뒤 두 명의 군인이 장군을 찾아 와
12사단에는 40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그들은 이교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장군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시오, 만약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직책에서 쫓아 낼 것이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리 알고 깊이 생각하고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시오,"
그 날 밤 진영에서 4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제사 참여를 거부하자 처형하라는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해가 지자 그들은 벌거벗긴 채 호수 한가운데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세운 큰 전과를 참작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호수 옆에는 신앙을 부인하고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한 사람을 위해
따뜻한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목욕탕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은 <10>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 보초병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와 함께 천사의 음성를 들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천사의 찬송 소리가 바뀌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39명, 순교자 39명, 그리고 39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때 그 보초병은 목욕탕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즉시 그 보초병은 무기를 놓은 채 소리 질렀습니다.
"여기 내 옷을 입으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소!"
그리고는 그 보초병은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다음날 아침 장군은 죄수들을 끌어내라고 명하였습니다.
얼어죽은 시체들이 호수 한가운데 쌓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보초병의 시체도 있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안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었습니다

죽어도 예수가 주시다 라는 사실에 눈이 뜨여져 죽으면
그는 복된 삶을 살은 성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루를 살아도 예수가 주시다 라는 진리에 눈이 뜨여져 산다면
복된 삶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가 주시다 라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전파했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충만 받아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기쁨이 있고 찬송이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예수가 주시다 는 진리에 생명을 걸고
고백하며 자랑할 때 나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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