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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Ⅰ) / 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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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는 하나님의 백성(Ⅰ)
베드로전서 2:1-10 

대한민국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이 정한 법과 또 질서와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고 법을 어긴다든지 질서를 깨뜨리게 되면은 권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정한 법과 질서를 잘 지킬 때에 교인으로서의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역시 의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은 하나님이 정한 법과 의무가 있는데 그 법과 그 의무를 지키고 수행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호받고 또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10절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도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조금만큼도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그 동기와 과정과 원인을 에베소서 2장이 설명을 해 주는데요 에베소서 2장에 의하면은 우리는 본래

①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들입니다.
②그리고 세상풍속을 쫓고 마귀를 섬기든 사람들이었습니다.
③그리고 육신의 정욕과 욕심을 따라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이미 죽었거나 심판을 받아야할 존재들이었습니다.
④그리고 내가 지은 죄와 허물로 이미 이 세상에 있지 못할 공동묘지에 들어가야 되고 가옥에 들어가야 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으로, 그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다- 하시고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2:19절을 보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주셨다> 그랬습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하면 아멘. 
감옥에서 썩고 죄로 심판 받고 고통으로 쓸어졌어야할 나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백성이라>고 우리를 인정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 것입니다.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형수가 특사 당해서 감옥에서 나오고 무기를 선고받은 죄수가 감형이 되어서 세사에 나왔다. 이 사건보다 억천만 배 우리를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거예요

지금 미국 안에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사람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30년을 살아도 법만 어기지 않으면은 요 경찰을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한번도 안 만나요.
그러나 법을 어기는 날이면은 그 날로 끝이에요. 법을 어긴다든지 뭐 탈세를 한다든지 그러면 그 날로 끝입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교훈을 집약하고 집약해서 해서 안될 일고 해야할 일을 구분해 주는 게 십계명입니다.
그리고 성경 보면은 하라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면은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 부분적이기는 합니다만 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할 일을 명명백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차례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나쁜 것은 버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같이 하실래요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
요 다섯 가지를 버리라고 합니다. 좀 살펴볼 까요

① 악독이 뭡니까? <다른 사람을 헤치지 위해서 품는 독한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독한 마음을 품으면 독한 말이 나와요.
그리고 독한 마음을 품으면은 눈빛이 독해져요, 그리고 독한 마음을 품으면은 하는 짓이 포악해 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독한 마음을 품으면은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주지만은, 자기가 먼저 죽어요. 왜? 속에서 독이 자꾸 품게되면은 자기가 죽거든요 내가 먼저 죽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뭐랬어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의 마음이다> 그랬습니다. 

② 궤휼을 버리라 그랬는데 궤휼은 <속임수를 말>합니다. 왜 영화를 보면은 막 화산이 터지고, 바다가 갈라지고, 사람이 공중으로 나라가고 토네이도(tornado) 회리 바람이 일어나서 도시를 쓸어버리는, 이런 장엄한 장면을 보게되는데 여러분 그게 다 영화의 특수 기법으로 촬영을 한 속임수입니다. 속임술, 모르셨어요 속임수라고요.

이 궤휼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고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고 다른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게 위해서 쓴 속임수 시체말로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누가 되었던지 사기치는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궤휼을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리라고 했습니다.
 
③ 그 다음에 외식을 버리라고 그랬습니다. <외식이라는 것은 더럽고 추한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덮고 꾸미고 치장하고 포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닌 척 하는 것>,
자기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는데, 겉으로는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것처럼, 그래 <할렐루야> 할 맘이 전혀 없는데 할렐루야-하는 것, <주여> 하는 것인데요. 이상해요 벌써 탁 들어 보면 알아요. 할렐루야 할 때에 야자 딱 들어보면 알아요. 그리고 주여 할 때에 여자 들어보면 저게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한번 해 볼래요. 그게 외식입니다. 포장하는 것, 거룩한 것처럼 깨끗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④ 다음에 시기를 버리라고 그랬는데, 이 <시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방해를 놓는 것, 훼방을 놓는 것 그게 시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하지 마세요. 좋은 일하는 사람, 잘되는 사람을 시기하면은 절대로 그 사람이 잘 되지를 못해요, 성공하는 사람을 시기하면은 성공을 절대로 못하는 거예요. 행복한 사람을 시가하면은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성공과 행복은 부러워해야 내가 되는 것예요. 시기하지 마세요.

⑤ 그 다음에 비방 버리라 그랬습니다. 비방이 뭐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악담하는 것, 그리고 허위사실, 거짓 사실을 퍼트려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이 비방입니다.
다른 사람을 좋게 말해주지 않는 것, 악평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좋게 말해주어야 됩니다. <참 아름다우시네요. 참 예쁘시네요>. 이렇게 예뻐하는 것하고, 예뻐하는 것하고 달라요.
한번 따라 하실래요 <예뻐>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요? 이런 것들은 내가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예수가 누군지, 사랑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철없을 때가 가지고 놀던 것들이거든요. 우정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가지고 있던 못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예수 믿고 나서, 예수를 알고 나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된 다음에도 그것을 가지고 놀아요? 그걸 버리지를 못해요? 그것은 예수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걸 버리지 못하면은!

모 폭력조직의 두목이 있었습니다. 형을 모두 마치고 감형까지 되어서 출소를 했습니다. 그래 시체말로 자유 시민이 된거에요.
그런데 출소해 가지고 얼마 지난 다음에 다시 그 조직들을 모아 가지고 옛날 하는 짓을 도로 하다가 또 감옥에 또 들었어요.

대도(大盜)로 소문난 무엇 이가 있었어요 역시 수형 생활을 끝내고 출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다시 도적질하다가 또 붙잡혀 가지고 지금 교도소에서 썩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과 악한 것들을 버리지 안니 하면!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교도소로 가는 거예요. 다시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시 지옥 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리라는 것은 <멀리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찾을 수 없도록, 다시 만날 수 없도록 멀리 던져 버리라> 그런 뜻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악한 것들! 곧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과 악한 것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 가지고 놀던 흉기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흉기를 아직도 가지고 있을려고 그러세요. 왜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왜 가슴에 품고 다녀요? 왜 손에 쥐고 살아야 합니까? 버려야지요. 버리라 그랬습니다.
따라서 <버리라> 따라서 <버립시다> 아멘.
지금 당장 버립시다.
그런데 주요한 것은 어디다 버려야 합니까?
공중에 버렸더니 빙빙 돌다가 다시 오네요,
바다에 버렸더니 파도에 밀려 가지고 다시 찾아오네요.
땅 속에 묻었더니 그놈의 죄가 다시 살아나서 나한데 찾아오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오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을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고,
갈라디아 2:20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쁜 습관, 쓸데없는 고집, 악독, 고치기 힘든 버릇, 이런 것들을 그냥 버리지 마세요.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시다. 십자가에 꽉꽉- 못박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죽지 않습니까? 못박아 버리세요.
그리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거예요. 예수와 함께! 이게 우리의 신령한 부활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아 버려야 됩니다. 아멘.

2. 둘째는 자라야 합니다.

2절을 보면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이가 성장하는데 유전적 요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후천적으로 성장 발육에 필요한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저 북한 아이들은 영양이 모자라 먹을 것이 없어 가지고요 크지를 못해요.

지금 우리나라는 요 너무 잘먹어 가지고 얼마나 키가 큽니까?
아마 저도 자랄 때에는 좀더 잘먹었더라면 저도 컸을 거예요. 고생하고 못 먹고 자랐거든요. 물론 저희 집 부모님이 키가 작으셔요. 그런 탓도 있지만은 그래도 지금처럼 내가 우유 먹고 컸다면은요 좀더 큽니다.

지금 전 세계에 있는 수백만의 어린 생명들이 영양 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임산부가 애를 순산하지 않아요 임산부 자체가 영양이 모자라니까 애가 크지를 못하는 거예요. 나와도 크지를 못하는 거예요

성인의 건강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비만증 비대증이 생기는가 하면은 각종 성인병이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영혼이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예기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

그걸 먹고 자라야 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먹어도 될 것과 먹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해 먹어야 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 키워보시지 않아요? 아이한데 썩은 우유먹이면 돼요? 우유나 부패한 이유식을 곰팡이가 생긴 것을 아이한데 먹이면 잘 크겠네요.
큰일나지요. 그래서 우유 병도 얼마나 철저하게 소독을 합니까? 왜 아이들을 살리려니까

여기서 말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육신은 밥을 먹고 큽니다만 은, 영은 말씀을 먹고 크는 것입니다. 신령한 젖을 잘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신령한 젖은 순전해야 됩니다. 그 말씀을 먹어야 자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말씀이 동서남북에 널려있습니다. 기독교 방송이나 극동방송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면은 계속해서 하루 조일 설교 방송이 되지요.
또 기독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은 역시 하루 종일 설교가 방송이 돼요. 기독교 서점 가보세요 수 백 종의 수많은 설교집들이 꼬쳐 있어요.

그뿐입니까? 잠실체육과 전주체육관 뭐 체조 경기장 뭐 인천 체육관 이상한 사람들이 집회를 열어 교인들을 유혹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먹을게 동서남북에 널려 있어요. 곳곳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하고 순전한 젖이 아니면 가지도 말고 먹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죽으니까! 잘못 먹으면 죽습니다.
여러분 여름에 뭐 하나 잘못 먹으면 식중독 걸리지 않아요.
언젠가 김밥 잘못 먹고 큰일난 일이 있어요. 애들이 그 소시지가 썩어서 그랬지요, 순수하고 깨끗한 꼴을 먹어야 내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 의사들이 통증으로 견지지 못하는 수술환자나 이런 사람들에게 그 마지막으로 통증을 제어하는 방법이 몰핀 주사를 놓는 거예요. 몰핀 아시지요 아편기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주사를 놓으면은 통증이 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열흘, 한달, 두달, 몰핀 주사만 맛아 보세요. 그것은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듣기 좋고 감미롭고 신바람 나는 듯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 아니면 먹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를 예수라고 그러면서 수많은 선교단체를 만들고 막 대학가에 들어가서 동아리를 만들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끄어 모으고 어느 지방에다가 큰 아성을 만들어서 막 그야말로 아방궁을 만들고 또 돈을 엄청나게 끌어 모아서 큰 집단을 만들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은 청산유수야 누구라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은 안 빠질 도리가 없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마각이 들어 나기 시작했는데 사기에다가 횡령에다가 성폭행에다가 이런 협의로 도피 중에다가 붙잡혔습니다.

신앙이 건전해야 생활이 건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건전해야 신앙이 건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나 여러분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은 4가지 기둥을 분명히 붙잡아야 됩니다.
따라하세요 <예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목사님 중심>
저는 그렇게 훌륭하고 위대한 목사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여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십자가 중심, 예수 중심, 예수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 복 받는다는 것, 예수 피묻은 십자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걱정말고 따라오세요! 지옥으로 안갈터이니까요. 

따라서 < 예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목사님 중심>. 어느 교회 중신이요? 광성교회.
다시 따라하세요 <예수 중심, 성경중심, 어느 교회 중심? 광성교회중심, 목사님은 누구요? 유흥준 목사 중심>

3. 셋째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5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드렸던 제사는 두 가지인데요 ①내가 드릴 수 있는 제사가 있고, ②내가 드리지 못하고 제사장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는 내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사함 받기 위해서 대 제사장이 반드시 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것은 내가 직접 못 드려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재물로 드리신 이후로부터는 내가 직접 제사장이 돼서 하나님께 직접 제사를 드리는데 그 제사를 예배라 그러는 것입니다. 예배가 제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산 제사, 살아있는 몸을 드리는 제사,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요한복음 4:23절을 보니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했고,
따라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리고 4:24절을 보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아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영혼의 힘을 다해 바쳐서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예배대상이신 하나님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예기를 잘 들으세요.

만일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예배를 빠졌다. 그것은 하나님 보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 놀러 가노라고 예배를 빠졌다. 노는 것이 하나님 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내가 무슨 회의 때문에 예배를 빠졌다. 회의를 하나님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기뻐하겠어요? 복을 주시겠어요?
안됩니다. 모든 예배는 다 예배입니다. 주일 낮도 예배, 밤도 예배입니다. 새벽에도 예배, 수요일 밤에 드리는 것도 예배입니다. 그 무엇보다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 만나느라 먹고 마시느라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 산 제사를 드리는 예배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신령한 제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기뻐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찾으십니다.

시편 50: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보여주시겠다 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른 예배 그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다시 한번 <나는 하나님의 백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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