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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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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본문 : 사도행전 20:22∼24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끌고 코르테스 제독이 신천지 개척을 위해 멕시코 동해안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이 점점 약해져 가고 향수병으로 인해 목적 의식을 상실해 갔습니다. 이를 본 제독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불사르고 병사들의 마음을 오직 개척자의 정신으로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병사들로 하여금 타고 갈 배가 없으니 목숨을 걸지 않으면 실패하고 말 것이기에 목숨을 걸고 다짐하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자가 누구입니까?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일하려는 자입니다. 조폭들이 두목이 되는 원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을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다해 싸우므로 상대방을 항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적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도를 몰랐을 때는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게 되었을 때 바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았습니다. 이방인의 전도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자기의 사명임을 확실히 깨달은 바울은 복음의 일꾼으로서 일하는데 게으르거나 핑계하는 자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본문23절에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요즘 은혜 받고 있는 복음성가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향한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바울 사도는 일하는데 있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목숨을 다해 일하는데 있습니다.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죽을힘까지 다한다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님께 드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첫째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70여년 동안 한결같이 인술을 펼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문창모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지난 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한국의 의료계는 물론 교육계 정치계 종교계 등 각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이 분은 96세를 사시면서 강원도 원주에서 문 이비인후과를 개원해서 43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진료를 해 오셨습니다. 이 분은 얼마나 사명감이 투철한지 모릅니다. 국회의원 할 때에는 서울에서 원주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회 일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려와서 진료를 하시는 겁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인 96세까지 진료를 하였는데, 시골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위하여, 또 일 하느라고 낮에 시간 내기가 힘든 환자들을 위하여 매일같이 아침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기자가 물었답니다. "장로님, 은퇴하실 때가 훨씬 지났는데, 진료를 계속하고 계십니까? 이제는 좀 쉬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의사의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눈감는 순간까지 진료를 멈추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된 것이 하나님의 사명이고 그 사명 감당하려고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꾸준히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환경과 조건을 살피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문 장로님처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노라는 마음가짐으로 헌신하고 충성할 때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은 본래 열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는데 결국 다메섹 도상 위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주님과의 만남이 핍박자로 열심을 내던 사울을 바울로 회심시키고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주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복음의 사명을 확신하였습니다. 바울은 고후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사명은 일사각오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미쳤다고 할지라도 사명은 사람을 한 가지 목표에 몰입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명 없는 사람은 사명자들을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목숨을 다해 일합니다. 여러분들도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와의 만남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땅 끝 시리즈의 작가 김성일 장로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교수이면서 60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창조사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40대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원래 모태 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외가댁은 3대에 걸쳐 예수를 믿는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 2 학년때 소설가가 되고 나서 교만해진 것입니다. 신앙이란 현대시대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방송국 PD로 근무하는 큰 딸의 편도수술이 잘못되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어렴풋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아내에게 밀어닥친 '위암'이라는 병 앞에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내 육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회사 출퇴근을 병원에서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원인이 내가 교회에 나가다가 안나가서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계기로 그의 생각은 180도로 바뀌었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직장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중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내가 변하면 해결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믿는 사람만 잡아죽이면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하고 자녀도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직장도 변하는 것입니다. 문제가운데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야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철저하게 자신을 쳐 복종시켜 그의 인생 전부를 바칠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대하게 믿음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바칠 때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한 사람 치고 불평이나 불행에 빠져있는 그리스도인을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낙담하고, 비관하며, 좌절과 불행 속에 사는 신자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생명을 드리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의 생각 밖의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과의 만남으로 능력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께서 어느 날 주님을 생각하며 깊은 기도를 드리다가 환상 중에 천국 문에 들어서게 되었었다고 합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 사도가 그를 맞이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천국문 입구에서 베드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감리교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했는데 자기가 전도하고 자기와 같이 하던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분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나와 함께 영광스러운 감리교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천국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합니다" 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어떤 명부를 한참 뒤적거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렇다면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러면 한가지 더 묻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칼빈의 교리를 강조하는 장로교인들은 몇 사람이나 들어왔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한참 살펴보고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때에 그는 더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겸손히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운동은 대단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거 같군요. 한가지 더 물읍시다. 그럼 천주교인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베드로 선생님은 한참 있다 대답하기를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 때에 요한 웨슬레는 깜짝 놀라며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 천국에 들어오는 겁니까?" 베드로 사도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요한 웨슬레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오는 곳이죠. 다시 말해서 감리교인이냐 장로교인이냐 천주교인이냐 그게 문제가 아니죠.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을 해주어서 요한 웨슬레가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세워진 이후 오직 교회를 염려하는 것이 그의 달음질하는 삶이었습니다. 핍박이나 환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어려움 당하는 것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크신 능력을 베풀어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세상과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도록 능력을 더해 주십니다. 바울은 성령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드리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도 생명을 다하며 일하지 못하고, 사명 앞에서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피하고 숨으려 하지말고 성령충만함으로 믿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작은 헌신이라도 하겠다고 뜻을 정해야 합니다. 성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를지라도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라고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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