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렘 29:11-14)

  • 잡초 잡초
  • 444
  • 0

첨부 1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예레미야 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예레미야 29:11-14)

종교학자들은 인간은 원천적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그 근본이 종교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모르고 종교를 모르는 원시인들도 해나 달이나 별을 섬겼고 절대적 힘을 형상화해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찾고 섬기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찾은 사람들은 운명이 바뀌고 역사가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한 나라들은 번영했고 일류국가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생애가 달라진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본래 불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아버지는 농민들을 학대한 지주로 지목되어 농민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의 학살당하는 모습을 본 그는 그 충격으로 간질 발작을 일으켜 평생 지병으로 고생했습니다. 학교에선 따돌림 받았고, 공부엔 흥미를 잃어 낙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청년이 된 그의 관심은 사회주의였습니다. 기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정의한 사회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기독교는 권력에 기생하는 기생충과 같다고 여기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며 비밀조직에 가담했습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총살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28세였습니다.
총살형이 집행되는 날 그의 눈에선 후회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억울하고 아쉬운 일생이었습니다. 사형집행이 막 시작될 무렵 "황제의 특명이오 집행을 중지하시오"라며 달려오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는 사형대신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야했습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기차가 간이역에 멈췄을 때 낯모를 부인이 신약성경 한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흉악범들 틈에 낀 채 노동을 해야 했고, 추위에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틈틈이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책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라고 증명한다 해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싶다"고.
4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참혹했던 수용소 생활을 그린 「죽음의 집」을 썼고, 그리고 「죄와 벌」을 썼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무신론자, 사회주의자, 저항아, 반항아, 간질병 환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단 도스토예프스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누구를 찾느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개인과 국가의 운명과 장래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본문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생각을 살펴보십시다.
11절을 보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자기 백성들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시려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8:4을 보면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라고 했고, 시편 40:5을 보면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사람입니다. 산천초목도 아니고, 에덴 동산도 아니고, 천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천사를 위해서도 아니고, 산과 바다를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려 오셨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다윗은 시편 139:17에서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사야 55:8-9을 보면 하나님의 생각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달라서 천만배 크고, 높고, 깊습니다. 그러기에 내 생각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제 아무리 깊이 사색을 한다해도 하나님의 생각처럼 깊을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고상한 생각을 하고 차원 높은 생각을 한다해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조각가「로댕」하면 그의 명작「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중 지옥편의 일부인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좌상으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을 생각하고,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누가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가를 지켜보는 사람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바라보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 행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행동하십니다. 본문 11절 말씀대로 평안과 소망을 주시고 구원과 영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처럼 편협하거나 외골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크고, 넓고, 높고, 깊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 복판엔 항상 내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2. 부르짖으라, 찾으라고 했습니다.
12절을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주목할 말씀은 "부르짖으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6월. 월드컵 경기 때 일본 동경 신주꾸에서는 한국인 1,200명「대사관」이라는 식당 주차장과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응원전을 펼쳤습니다. 한국인 응원단 1,200명이 모여 응원을 하는데 일본 경찰 4천명이 둘러서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응원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동경시민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스페인이나 이태리 사람보다 더 역동성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래서 싸우기도 잘하고 소리도 잘 지릅니다.
세계인의 관심은 한국이 4강에 진출한 것보다 응원하는 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대-한민국"이라고 소리친 나라가 있습니까?
이-탈리아, 아-메리카, 브-라질, 프-랑스?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쳐 기도도 잘합니다. "주-여!" 라고 소리지르며 기도하는 교회, "믿습니다!"라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교회는 한국교회 밖에 없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들으신다"고 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전심이란 말은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찾고 찾으라는 말은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옛 시조가 생각납니다. "잘 가노라 닫지 말고 못 가노라 쉬지 말라...가다가 중지 곧하면 아니감만 못하니라"
그렇습니다. 토끼처럼 잘 달린다고 설치고 방정떨면 안됩니다. 뒤쳐졌다고 포기하거나 중단해도 안됩니다. 가다가 중단해 버리면 떠나지 않음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찾을때까지, 만날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주실때까지, 응답받을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나 착한 일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는 말씀은 그런 사람들에게 응답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한의사인 최서영 박사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토대로 현대인이 지켜야 할 건강 10계명을 정리해 밝힌 바 있습니다.
첫째, 폭식을 삼가라.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면 기가 소모된다는 것이 동의보감인데 담백한 음식을 먹어야 혈기를 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술을 많이 마시면 기가 혼란스러워진다.
셋째, 인스턴트 식품을 삼가라. 한가지 맛의 음식을 오랫동안 먹으면 오장이 상한다.
넷째, 과로하면 정이 흩어진다.
다섯째, 스트레스를 피하라. 특히 화를 자주 많이 내면 장기가 손상된다.
여섯째, 독이 쌓이면 (중독) 치료가 어렵다.
일곱째, 색욕을 경계해야 정기를 기른다.
여덟째, 운동으로 기를 돌려라.
아홉째, 말을 적게하여 내기(內氣)를 기르라
열째, 잠을 잘자야 기가 축척된다.
그러나 열가지를 다 지키기란 힘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의보감보다 성경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찾으라 내가 너를 만나주리라, 부르짖어 기도하라 내가 들어주겠노라"고 말씀합니다.
헬렌켈러는 설리번 선생을 만나 그의 생애가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만나 직업이 바뀌고 인생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폭력만 찾다가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사람, 돈만 찾아다니다 망한 사람, 색욕만 찾아다니다 쓰러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폐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이주일씨를 찾아간 모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혹 하실말씀이나 소원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시죠"라고 말하자, 그는 "조금만 더 살고 싶어"라며 울먹이던 모습은 애처롭고 비장해 보였습니다. 인기나 돈으로 치면 아쉬울 것이 없는 그였지만 생명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고, 명성을 얻어 이름을 날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보다 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사람의 얼굴, 지문, 손모양, 눈의 홍채나 망막, 그리고 목소리 인식 장비를 개발해 실용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계산대에 마련된 지문인식 스캐너에 손가락만 갖다대면 결제가 끝나는데 이것을 지문 스캐닝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목소리 인식 기계 앞에 서서 "박종순입니다"라고 한마디하면 신상이 밝혀지고 은행거래 명세가 드러나 결제가 자동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공항 입구에 승객들의 얼굴 스캔 시스템을 설치하면 그 기계를 통과할 때 테러범인지, 야쿠자인지, 현상수배자인지, 그 신상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발전과 그 진보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문 인식장치나 망막이나 얼굴이나 목소리 인식장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1),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2),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며(3), 내 혀의 말을 아시오며(4), 내 마음을 아시며 내 뜻을 아시며(23)"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나를 늘 생각하시고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요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