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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시 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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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제사를 드리라(시50:7-15) 

     

무척이나 금슬이 좋은 노부부가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여보, 임자. 당신이 나한테 준 최고의 선물은 친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거라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과 친구되는 법은 몰랐거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을 이용했었소. 그리고 내 생활에 별 보탬이 안된다고 생각될 때는 금방 관계를 끊었던 것 같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누구하고도 가까워지기 어려울 거예요. 그렇죠?' '응, 그렇지, 그랬어...' '그러다가 친구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물론 그럴 때에 나의 그러한 이기적인 태도와 무관하게 나를 좋아했던 한 두명을 빼고는 친구가 없었지. 관계에 마음을 쏟고 관계를 발전시키며 설사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많을지라도 기꺼이 주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인데 젊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을만큼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적이 없었소.'
그러자 아내가 말을 합니다. '제가 자라난 동네는 그와는 정반대였어요. 제 주변의 사람들은 시간이나 물질이나 마음을 써 주는 일에 그렇게 후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당신이 생일에 받았던 축하 카드와 우리가 첫 크리스마스 때 받았던 카드의 수를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지금도 생각나는구료...' '예, 그게 모두 친구들이 보내 준 카드였지요. 저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오랜 세월을 노력했어요.' '나도 알고 있소. 매달 우표 값과 전화비가 말해 주는 게 아니겠소?' '예, 우리 집 우표값과 전화비가 꽤 많이 나오죠? 하지만 그것은 남을 챙겨주고 세워 주는 일에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별로 비싸지 않은 대가라고 생각해요.' '그렇구말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너무 바빠서 그런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그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예요. 나중에 가서야 깊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며 후회하게 될 거거든요. 너무 뒤늦게사 말이지요...' '그게 바로 나의 감사 제목이라오. 나는 당신 덕분에 그런 비참한 상태를 벗어난 것 같소. 정말 당신 말처럼 그건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고 우선순위도 바로 정해야 할 일로 인생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일이지, 안그렇소?...' '그래요, 그래서 당신도 지금은 친구가 많아졌죠?...'

이 노부부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관계'일 것입니다.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부, 부모 자식, 형제, 가족, 친구, 이웃, 교우 등등... 그리고 그 모든 관계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상대를 이용하는 인간관계'입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맺고,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끊는 관계입니다. 자기가 더 많은 것을 주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관계를 유지해 가는 그런 바람직한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주고 받음이 균형을 유지할 때에 그 관계는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세상에서의 관계성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인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세속적 관계성 속에서 이해될 때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인간과 동급으로, 하나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해서 하나님을 대하는 그런 관계가 버젖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이 선언은 당신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곤혹스런 하나님의 자기 설명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을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저들의 속내가 드러난 자리가 바로 '제사', 곧 저들이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저들의 제사는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왔고 또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드리는 번제와 희생제가 항상 제단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물을 인하여는 책망할 것이 없으나 다른 면에서는 책망할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뭔가 저들의 신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드리는 예배에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저들이 예배 때마다 하나님께 비둘기를 드리고 염소를 드리고 수소를 드렸는데 무엇이 모자라서 하나님께서 이런 책망을 저들에게 하실까요?

그건 바로 '감사의 상실'이었습니다. 저들의 제물에 저들의 마음이 얹혀지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권면합니다. 감사와 서원을 잊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문제였습니다.
이 시50편의 키워드는 '참예배'입니다. '무엇이 참된 예배인가' 하는 겁니다. 예배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희생제를 드렸습니다. 그 제물에 대해서는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서원했던 지난 날의 애틋한 신심이 점점 형식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의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제사, 중심이 쏠려있지 않은 예배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는 겁니다.
우리가 때로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때 이런 경험들을 할 것입니다. 받아서 기분 좋은 선물이 있고, 받아서 기분 나쁜 선물이 있습니다. 순수한 선물 속에는 감사가 깃들어 있지만 순수하지 못한 선물 독 뇌물 속에는 뭔가 계산된 의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반대급부가 들어있습니다.
진정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는 선물, 마음 없이 그냥 인사치레로 주는 선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여 주는 경우,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입장에서 건네주는 경우... 바로 여기서 더 큰 기쁨이 생기기도 하고 기쁨이 사라지기도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주고 받음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크기나 액수가 아니라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담긴 것이면 얼마 안나가는 물건에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이면 비싼 것이라 해도 기분이 별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을 향해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겁니다. 저들은 어김없이 때를 맞춰 당신께 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저들 마음 속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마음이 기울여지고 중심이 쏟겨지지 않는 제사라는 걸 알았습니다. 점점 저들의 예배와 섬김이 형식화되고 건성화되어가고 있음을 아신 겁니다. 그래서 저들을 향해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간절함으로 드렸던 네 서원을 갚으라'고 권면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상실, 간절함의 소멸, 건성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스라엘의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주님을 향한 마음이 흐트러져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4: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감사가 무엇인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감사란 곧 신령과 진정의 마음으로 드리는 겁니다. 신령과 진정의 마음이 실리지 않는다면 그건 참 감사가 아닌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다 그 말입니다. 저들은 예배를 드렸고, 예물을 드렸고 모든 것을 다 행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존경이 저들에게 결핍되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깨우쳐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감사가, 신령과 진정이 결핍되어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꾸중하시는 원인은 예물 때문도 아니었고 게으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은 넉넉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들을 책망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을 희생제물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라고 잘못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이라면서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요 인간에게서 그런 걸 받아먹고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람과 그 사람의 선물에 의존하는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저들이 제물을 드리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를 드러냅니다. 저들은 하나님께 제물만 드리면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드려야할 존경심이 결여되고 하나님의 존엄성을 감소시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물질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입니까? 그래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21절에서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너와 같다고 하느냐?..." 이 말을 요즘 시쳇말로 하면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너희가 나와 맛먹으려 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이 얼마나 통렬하고 안타까운 질책입니까?...

언젠가 서울에서 목회하는 제 후배 목사가 상심한 마음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형님, 정말 목회하기 싫습니다.' '왜 그러나...', '교인들이 저를 봉급쟁이 취급합니다. 제가 돈 몇푼 받으려고 이 길로 뛰어든 겁니까?' '월급 몇푼 준다고 마치 고용인 부리듯 하려는 저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친구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뒤늦게 신학교에 간 친구입니다. 그런데 막상 목회현장에 서고보니 참으로 실망스런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심사도 그런 겁니다. 제물 얼마 드린다고 당신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오만한 이스라엘의 심성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과 같은 반열에 놓일 존재가 아닌데도 인간은 자기가 제물을 갖다 바친다는 보상심리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존중심을 갖지 않고 저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도 잃어버리고 서원조차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인간 같이 생각하는 사고는 시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십니다. 인간이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면 인간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그런 신도 아니고 그 제물 바치는 일로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런 분도 아니십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을 좇아 생명을 누리고 자유를 맛보며 사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하질 않고 형식적 신앙생활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여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둘기나 양이나 염소나 소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온갖 피조물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저들이 바치는 수소 고기나 염소의 피를 먹고 마실 일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저들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방편입니다. 그게 예배자에겐 대단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가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 아무런 감흥이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태도가 불쾌했습니다. 물질만 갖다 바치고 자신들의 온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신령과 진정으로 당신을 경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해 하셨습니다. 당신을 인간과 동급으로 여기는 저들 그리고 마치 당신을 고용한 듯이 부리려는 못된 신자들을 본 것입니다. 그런 저들에게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네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질타하시는 겁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감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물? 돈? 물질?... 감사는 전혀 그런 것들과 무관한 겁니다. 감사는 인생의 됨됨이를 달아보는 저울이요 영혼을 비춰보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감사는 오직 깨달음과 겸손한 마음에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그득했던 하박국 선지는 바로 이 이치를 깨달았기에 비록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즐거워하며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니다. 엄청난 환난이 휘돌아치는 그런 현실 한복판에서도 그는 감사했던 겁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저들이 감사를 잃었던 것은 아마 '환난으로 인한 곤고한 생'이 그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시는 걸 보면 저들은 어려운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제물을 준비하여 예배하는 괜찮은 신앙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들에게 하나님은 관념적인 분이셨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삶에 초대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여기질 않고 성전에 계신 하나님, 자신들의 제물만을 받아먹는 하나님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 속에 초대하지를 않았던 겁니다.
사실 사람이 삶에 지치고 피곤하면 하나님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환난의 순간이 그의 신앙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환난의 때라는 겁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도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릴 수도 있게 하는 하나의 전환점입니다.
저들은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했지만 자신들의 환란의 자리로 하나님을 초대하질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신앙입니까? '하나님, 제가 지금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고 있고 이런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제 삶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초대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저들을 향해 하나님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그러면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거 뭔가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러야 되는데 도리어 하나님이 '너희가 나를 불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환난이란 무엇입니까? 환난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간에 태풍 라마순이 우리나라를 관통하고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피해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신문이나 TV에서 거센 파도가 들이치는 사진들을 보셨지요? 태풍이 불어올 때의 바다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쓴 이야기 가운데 바다와 관련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멀고 먼 옛날 바다는 푸른 빛을 띠지 않고 투명했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밑바닥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이 검게 변해가도 잠만 쿨쿨 자는 바다를 보고 있던 하나님이 이 녀석을 혼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태풍을 보내 바다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얼마나 바다를 세게 때렸던지 그만 바다는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어 그때부터 푸른 빛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하나님은 바람과 빗방울을 보내 바다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바다가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바다는 저렇게 푸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풍은 바다로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다는 태풍에 맞아 저렇게 퍼런 멍이 들어 깨어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우화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환난도 태풍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환난은 우리를 깨우는 것입니다. 깨워서 우리로 참 신앙을 갖게 하고 하나님을 올바로 의지하게 하는 하나의 복의 터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 신령과 진정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나라에 이른 한 영혼이 베드로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하늘나라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첫 번째 간 곳은 천사들로 붐비는 거대한 작업실이었는데 베드로는 그곳이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갖 사람들의 청원이 접수되는 접수처'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천사들은 세상의 도처에서 보내온 온갖 청원들을 분주하게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도착한 곳에서도 천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복을 포장하여 지상으로 배달하느라 무척 분주해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이 '포장 및 발송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기도로 청원한 사람들에게 보내줄 은총과 복을 포장되어 지상의 그 청원자들에게 발송하는 업무를 맡아보는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이곳에도 수많은 천사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 도착한 곳에서도 많은 천사들이 분주히 일을 하는데 이곳은 '반송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으로 보낸 복과 은총의 소포가 다시 수취인 불명으로 그냥 되돌아온 것을 정리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간절히 구해서 가장 좋은 것을 보내 주었지만 '그건 내가 구한 게 아니라'고,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고 받기를 거부한 소포들이 되돌아와 있는 창고였습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가장 후미진 구석엘 데려갔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천사가 하릴없이 빈둥대고 있었습니다. 앞의 세 곳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풍경이라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겁니까?' 그러자 베드로는 그곳이 '확인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야. 지상의 사람들은 부탁한 복을 받고나서 확인서를 보내는 일이 없거든... 은혜를 알고 사는 자보다 배은망덕하게 사는 자가 더 많다는 얘기이지...' 그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 건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거야 간단하지.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거지...' 이것은 하나님의 복받기를 갈망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에는 인색한 인생들을 잘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이 주신 온갖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않고 풀어보지도 않은 채 되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생 가운데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무한한 은총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는 행위에 다름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풀어준 사랑과 은총에 대해 자족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의 결핍의 조건들을 찾아내어 하나님께 더 많은 요구를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엄연한 인간의 실상인데 그런데도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이라는 수레에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채워주십니까? 우리의 손으로 만지며 사용하는 물질 말고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은총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동안 값없이 받는 햇빛과 달빛과 별빛... 잠시도 마시지 않고선 살 수 없는 공기, 물, 바람, 구름... 그게 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하늘나라까지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존재의 흥을 불러일으키는 시와 노래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자리에서만 꽃피는 겁니다. 불평의 항목들을 겨울날 초가집에 매달린 고드름발처럼 늘어뜨리고 사는 인생은 결코 감사의 시와 노래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그런 성스런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거듭 결핍의 조건들을 끄집어내어 불만의 모래알을 씹으며 사는 인생만큼 불행한 삶이 없는 겁니다.

감사하며 사십시오.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며 사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을 내 삶의 자리로 언제나 초대하며 사십시오.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주님께서 더 큰 은총과 복으로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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