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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족보의 의미 ( 출 6:23-30, 마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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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의 의미 ( 출 6:23-30, 마 1:17 )
 
 
잭 하일스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에는 참 재미있는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는 우정이 모든 사랑 중에 으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정보다 더 큰사랑도 더 진정한 사랑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에서 우정의 사랑을 빼면 진정한 사랑으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혼에서 우정을 빼면 두 사람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99%의 문제는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서 자녀로 하여금 좋은 이름을 잘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의 믿음을 전수시켜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자녀 양육의 기술입니다. 요즘 보세요! 자녀 문제 잘 안되면 부모가 큰소리 못 치고, 창피 톡톡히 당해요. 아들 병역 문제나, 아들 미국 시민권 문제나, 자녀 위장 전입이 부모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시대입니다. 자녀에게 우리의 믿음을 잘 전수하고 좋은 가문을 이룰 수 있도록 좋은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에 나타난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보세요.

첫째, 족보의 내용은 제사장의 계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는 모세와 아론의 족보라고 했지만 모세의 아들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모세의 위엄이 모세에게 한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아들들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 계통에 집중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계승자를 중심으로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신앙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큽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세요. 엘리는 자녀들의 신앙에 대하여 무책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아들의 부도덕에 대하여 얘기했으나 엘리는 야단도 치지 않고 "얘들아, 너희들에 대한 소문이 별로 좋지 않구나"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들들과 더불어 자신도 하나님의 징벌로 죽게 됩니다.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를 보세요. 이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그 불이 나와 그 불에 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불과 다른 불을 구분도 못하게 길렀습니다. 이런 부모의 자녀에 대한 신앙적 책임은 면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6:4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자녀를 신앙적으로 양육하는 것은 부모에게 가장 큰 책임입니다. 자녀를 신앙적으로 잘 양육해야 좋은 집안의 전통이 생깁니다. 좋은 족보를 남깁니다. 좋은 가훈을 남깁니다. 자녀양육 건강 조제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자녀양육을 위한 특별 건강식 조제법입니다. 주원료는 십계명과 산상수훈입니다. 여기에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를 한 컵을 첨가합니다. 또 잠언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와 잠언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와 잠언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를 잘게 썰어 넣습니다. 그리고 디도서 2:3-8을 골고루 바릅니다. 그런 다음 데살로니가전서 5:16∼18과 시편 103편을 양념으로 씁니다. 이렇게 한 다음 로마서 8:28을 마지막으로 넣어 센 불로 푹 익혀 매일 규칙적으로 먹입니다. 특별한 영양이 필요한 어린이에게는 요한복음 14:26∼27을 가미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족보는 철저하게 왕 같은 제사장의 계보입니다. 이 족보에서 빠지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의 족보입니다. 제사장의 족보에서는 모세의 자손도 빠집니다. 오로지 제사장의 후손들만 기록되는 아주 특별한 책입니다. 1863년 늦은 오후에 관광 나온 두 군인이 웅장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방문하였습니다. 너무 늦어 문이 잠긴 것을 안 그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때 마침 대성당의 감독인 아더 스텐리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다음날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성당의 문을 열어줍니다. 안에 들어가 그들에게 대성당을 소개해 주던 감독은 성당 안에 있는 기념비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건물이 언젠가는 무너져서 먼지가 되고 없겠지만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면 영원히 살게 되므로 이 기념비보다 더 영구적인 기념비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권하였습니다. 이날 대성당을 찾은 두 사람의 군인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신하고 구원을 얻은 감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가문의 세습에 의하여 세워집니다. 그러나 현대의 제사장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제사장의 나라라는 개념을 말해줍니다. 우리 나라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제사장의 나라가 됩니다. 성경은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 계보를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무엇으로 자랑하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무엇으로 만들겠습니까?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만드시렵니까? 그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일시적으로 기쁨을 주겠지요. 돈 잘 버는 아이로 만드시렵니까? 용돈은 넉넉하겠지요. 명예를 얻는 아이로 만드시렵니까? 잠시 고개 조금 더 들고 다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모든 것은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제사장의 계보가 최고입니다. 예수 잘 믿는 아이의 부모가 고개를 들고 다닙니다. 세상의 것 가지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무엇으로 큰 소리 치겠습니까? 예수 잘 믿은 것 가지고 큰 소리 치겠지요. 아이들을 공부 잘하게 하려고 '맹모삼천'도 감수합니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위장전입도 감행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예수 잘 믿게 하려고 좋은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이사오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 가까운 데로 이사오십시오. 영적 소득이 있는 데로 이사오십시오. 이래야 제사장의 가문이 됩니다. 이래야 가문을 빛내는 인물이 나오는 겁니다.

둘째, 족보의 결론은 모세와 아론입니다.
성경의 족보의 결론은 모세와 아론입니다. 모세와 아론에 와서 족보가 마무리됩니다. 우리가 족보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이름이 우리 족보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내가 우리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우리 가문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내 조상을 자랑하거나 내 조상을 탓하는 것은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잘 되어야 합니다. 가문을 빛내고 가문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문을 더럽히고 가문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가 하는 큐티의 내용을 보세요. 역대하에 나오는 왕들을 보세요. 아버지 여호사밧은 선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까닭이었습니다. 그 아들 여호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32세에 죽었습니다. 먼저 그의 아들들이 죽고, 자신은 창자가 튀어나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서도 열왕의 묘실에 장사지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은 악한 사람의 말로가 이렇습니다. 신약에도 보세요.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난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방인이지만 칭찬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선택받은 가룟유다처럼 몰락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정승판서를 많이 배출한 가문을 명문 혹은 명가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로 인하여 가문이 영화를 누립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이 가문을 빛냈습니다. 모세와 아론 집안의 그 족보가 사는 것도 모세와 아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족보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결론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서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기 위한 족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족보의 주인이고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1:17에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고 합니다. 이 말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록된 족보의 결론입니다.

가끔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모교를 빛낸 사람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써서 축하합니다. 어느 대학교 입학, 어느 고시 합격, 챔피온 취득 등입니다. 또 가끔 어느 동네를 가다보면 동네를 빛낸 사람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써서 축합니다. 아무 동네의 아들 아무개 사법고시 합격 등입니다. 한번은 지나가다 보니 아무개 과장 승진이란 현수막도 있습니다. 아마 이 현수막은 그 집에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높이고 축하하려고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26절은 나이순으로 아론과 모세라고 하였습니다. 27절은 부여받은 임무의 중요성의 순서로 모세와 아론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임무의 중요성에 따라 영적 장자권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아론은 형이지만 영적 지도력에 있어서는 모세가 형이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관계가 그러했습니다. 에서가 육적 장자이었으나 야곱은 영적 장자였습니다. 르우벤과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르우벤이 육적 장자이었으나 요셉은 영적 장자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장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많은 축복 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족보의 의미는 소명입니다.
족보 다음에 다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소명의 재확인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바로에게 다 고하라". 이 말씀을 주시려고 족보 이야기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주신 구원의 소명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하여 백성을 이끌 일꾼을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출애굽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출애굽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세는 여전히 나약하고 말을 못하는 존재입니다. 모세의 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때문에 모세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애굽 땅에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까지 따라와서 모세에게 다그칩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도 피하려고만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의미를 보세요. 구원의 소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소명을 주시고 구원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의 소명이 아니면 모세와 아론의 부르심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은 누구나 고귀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일해야 할 독특한 사역과 장소를 주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60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가정, 나의 직장, 나의 사회에서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러한 자신의 소명, 자신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소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이크 머독은 '예수의 리더십'이란 책에서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가치이며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작년 9월 11일에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지금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We will never forget)"라는 큰 현수막을 걸어놓았습니다. 이를 갈면서 복수를 벼르는 문구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문구가 되어서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저도 여러 해 전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합니다. 야드바심이란 기억이란 뜻입니다. 그들이 독일 사람들에게 당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오스카 쉰들러의 묘도 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사업가이었습니다. 나치와 결탁하여 유대인을 공장에 고용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유대인의 영향으로 유대인을 구하기로 결심하여 소위 쉰들러 리스트라는 명단을 작성합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은 참 감명 깊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카 쉰들러는 자신의 옷깃에 금으로 만든 나치 핀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핀을 떼어내며 슬프게 외칩니다. "만약 이 핀을 돈으로 바꾸었다면 유대인 2명의 생명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학살당한 유대인 6백만 명에 가운데 2명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사람일지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유대인의 속담에는 "한 생명을 구한 자는 머지 않아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 존재 이유를 아는 사람은 생명을 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름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의 소명, 구원의 사역을 담당하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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