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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 마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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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17:1-8
제목 :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간간이 입신가운데 천국을 갔다 온 사람들의 간증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 옷이 빛과 같이 빛나고 희어졌습니다. 1,500년 전의 모세가 나타나고 900년 전의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장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서 누리게 될 그 맛을 이 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황홀했겠어요?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너무 곤하여 졸다가 이 광경을 보고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잠꼬대와 같은 말을 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할때에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대답하질 않으셨습니다. 다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면서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구름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여호와께서 구름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와 함께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법궤를 지성소에 안치할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해서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제사를 드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구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다’ 는 것을 나타낸다는 표(表)였습니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도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라고 하셨습니까? 베드로는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했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다>, 공동번역에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셨던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고 축복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수님과 같은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들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 개념으로는 아버지는 좀 더 높고, 아들은 낮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의 아들 개념은 낮다는 개념이 아니라 동질(同質)의 개념입니다. 소의 새끼는 소입니다. 돼지의 새끼는 돼지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분신이요 또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내 아들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 주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온 인류를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가 응답됩니다. 모든 인생의 키(key)는 예수님께서 다 쥐고 계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이 다 믿어집니다. 기적이 믿어집니다. 그 믿음으로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에 일어난 동일한 변화가 내게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서 이런 삶의 변화가 이 믿음을 통하여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겠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나?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너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예수님이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되어진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全知)하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혜가 한정되어 있는 인간의 말을 듣고 살아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물어보나마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세상 말로 말하면 떡이 생깁니다. 횡재를 만납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문제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기계로 말하면 안내서와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이 마이크를 통해서 설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편안하게 설교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듣는 분들도 이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하여서 잘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전 예수님께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어린애들까지 합하면 아마 이만 명이상 되었을 것인데 이만 명 정도의 사람을 모아놓고 어떻게 육성으로 말씀을 하셨을까 때로는 신기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마이크를 통해서 이만 명이 아니라 이백만 명, 이천만 명이라도 마이크를 통해서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이크를 한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다루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마이크, 스피커, 앰프를 잘 다루어서 말이 잘 나오도록 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안내서를 잘 보고 안내서를 따라서 연결할 것 연결하고, 끼울 것 끼우면 결국 이렇게 좋은 마이크의 성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에게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설명서를 만들어 놓았어요. 그게 바로 성경말씀이십니다. 성경말씀 안에는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원받을 수 있는, 천국갈 수 있는, 온갖 길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만 따라가면, 말씀대로만 살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다 열어놓았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주님의 말씀만 듣고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넉넉하게 천국갈 수 있고, 넉넉하게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 어떤 장로님의 선친은 예수믿기 전 청년 때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누구를 한번 골탕을 먹여볼까, 어떻게 하면 오늘 다른 사람을 못되게 괴롭힐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믿는 사람이 와서 예수믿자고 하더랍니다. 예수믿으면 부자되냐고 하니까 부자된다고 하더랍니다. 예수믿으면 집이 생기냐고 하니까 집도 생긴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 한번 믿어보자고 결심하고 예수를 믿었는데 1년 되니까 정말 집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이런 예수님 같으면 되는대로 믿지말고 제대로 믿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는데 당시는 6.25 전쟁이 터진 뒤라 부모없는 아이들이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런 애들을 돌보면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시겠다고 생각하고 그 애들을 모아서 기르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을 골탕먹일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니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까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부모없는 애들을 잘 키워내고 돌보시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사신 어른이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너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라> 이 한마디에 온갖 축복의 비결이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따라가기만 하면 그 안의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한때 사단이 주는 생각을 가지고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의 말을 대변하다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한 이후에 베드로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거침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켰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사람을 일으켰다“ 고 거침없이 설교를 해대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믿었는데 남자의 수만 오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얼마나 많았겠어요?
종교지도자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예수운동이 일어나서 온 예루살렘이 다 예수 따라가게 되겠다, 이렇게 그냥 두어선 안되겠다 해서 대책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체포해 무리들 가운데 세워놓고 무슨 권세로, 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고 심문했습니다. 사도들이 심문받은 장소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판결했던 장소,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장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소. 예수만이 구원이요”라고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불학무식한 베드로인줄 알았는데 얼마나 확신에 차서 말하는지 말로는 당할 수가 없어서 베드로와 요한을 문 바깥에 나가있게하고 자기들끼리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앉은뱅이가 일어난 증거가 있다, 이대로 베드로가 하는대로 두면 온 예루살렘이 다 예수를 믿어서 예수를 죽게한 우리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대로 둘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의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후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도무지 가르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도록 아주 엄하게 경고를 내리고 내어 보내십시다”
그렇게 결정하고 제자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이제부터 도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만약에 그렇지 아니하면 다시 체포할거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 참 감사합니다” 그럴줄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듣고 본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너희 말 듣는 것이 옳겠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겠나 판단해 보라, 우리는 사람 말 안듣고 하나님말씀 듣겠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계속 가르치고 계속 말하겠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제자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희의 협박을 보셨지요.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렇다”하고 지진으로 땅이 진동케 하셨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살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사실 겁니까. 사람의 말 들으면서 살 것입니까?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너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어 집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서 생명과 멸망이 결정되어 집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어 집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하여서 지금까지 변하지 아니하는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3. 하나님 말씀 들은 자와 사람 말 들은 자의 결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서 행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의 기록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 말듣고 따라갔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실패담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되는 첫날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리고 동산의 각종 실과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지만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는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먹지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탈을 쓴 사단이 와서 “정말로 동산에 있는 나무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다 먹어도 좋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왜 먹지 말라고 했는 줄 아느냐, 먹으면 너도 하나님같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 먹지 말라고 했다. 네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결코 죽지않을 뿐만 아니라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
하와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사단의 말을 들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것이 파멸이요,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요,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입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이것이 바로 사는 비결입니다. 아담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과 아내의 음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아내는 “내가 한번 따먹어 봤는데 따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이것 먹으세요”.라고 합니다. 아마도 하와는 갖은 말과 아양으로 아담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삽니까? 아내의 말을 들었다가 엄청난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 아내 말 들으면, 남편 말 들으면, 부모 말 들으면, 자식 말 들으면, 윗사람 말 들으면 죽는 것입니다.
아담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자손으로 하여금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가도 소식이 없습니다. 사래는 이미 아이를 나을 수 없는 몸입니다. 창세기 16장 2절에 보면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를 통해서 씨를 주지 않을 것 같소, 내게 몸종이 있으니까 이 몸종을 통하여서 아이를 낳도록 하십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그랬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말씀 듣지 아니하고 아내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라함이 아내의 말을 좇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중동지방의 민족적인 갈등, 종교적인 갈등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 듣지 아니하고 아내 말 들었다가 저런 꼴이 되지 않았습니까? 거기사람들 보면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나라들은 ‘이스마엘’이란 이름들이 많고, 대부분이 회교국가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중동지역의 분쟁은 없었울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모님 말씀은 순종해야 됩니다. 윗어른의 말도 잘 들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들으면 거기서부터 죽음입니다. 거기서부터 실패입니다. 거기서부터 고통이 따르게끔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너희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삭이 흉년을 만났습니다. 인간적인 이성(理性)은 “너 여기 있으면 굶어죽는다, 그러니까 빨리 양식이 풍족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이삭은 이성(理性)의 판단을 따라 애굽으로 갈 것을 결정했습니다. 오늘밤만 지나면 내일 가나안을 벗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밤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굶어죽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들을 것입니까 내 이성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듣기로 결정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땅도 아닌 바로 그 땅에서, 몇 해 지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 해에 농사지었는데 100배나 얻었고, 종들을 많이 주셔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러다가는 이 모든 땅들이 다 이삭의 땅이 되지 않겠나 하는 두려움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가데스바네아에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두 명의 정탐군을 가나안에 보냈습니다. 열 명이 와서 보고하는데 “그 땅은 비옥합니다. 그 땅에는 아낙자손이 있습니다, 그 땅에는 철병거가 있습니다, 그 땅은 성벽이 높습니다, 그 땅은 그렇게 좋지만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올라가면 죽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야 됩니다”라고 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올라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물론 열 사람이 보고한 그대로 맞습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까? 올라가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열 사람의 말은 얼마나 정확했습니까? 그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진실했습니다.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따랐던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광야가 얼마나 뜨겁습니까? 달걀이 익어버리는 그 뜨거운 사막에서 40년동안 헤맸다고 상상해 보세요. 왜 이런 고생을 했습니까? 하나님말씀 듣지 아니하고 사람말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주의 말을 들으라>.
사울 왕을 보세요. 얼마나 멋진 왕인지 모릅니다. 키가 장대하여 다른사람 보다도 어깨 위는 더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멋있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세금많이 거두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왕중의 왕입니다. 그런데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전쟁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이 이야기합니다. “아, 이렇게 귀한 소와 양들을 왜 죽일 겁니까? 그것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십시다”. 사울이 다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을 안듣고 사람말 듣다가 <네가 내 말 안들었으므로 나도 너를 버린다> 이렇게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사울을 죽여버리면 자기는 안쫓겨 다녀도 됩니다. 옆에 있는 참모들이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명령만 내려주시면 단칼에 사울의 목을 치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안된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종을 손대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더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인격과 신앙에 감복되어 왕관을 가져 와서 우리의 임금 되어달라고 사정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은 포로로 남의 나라에 잡혀갔습니다. 포로이기에 주는대로 먹어야 할 것인데 “왕의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도 먹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이것 먹지 말라고 했다”며 먹지 않습니다. 왕은 안먹으면 죽인다고 합니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죽어도 하나님 말씀 듣겠다며 하나님 말씀을 따랐더니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총리는 며칠 만에 끝나는 총리도 있는데 다니엘은 왕조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그의 총리직이 바뀌지 아니하는 정치가 중의 정치가가 된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그들에게는 금신상에 절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태워 죽인다는 것이 왕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건져내 주셔서 위대하게 높여주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에게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허락해 주었습니까? 말년에 그는 후궁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때문에 나라가 분열되는 엄청난 비극을 격지 않습니까?
바울이 타고가던 배가 왜 파산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선장의 말을 더 듣다가 완전히 풍비박산되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 배 한 척은 얼마나 대단한 재산이겠습니까?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갈 것입니까? 열왕기에 기록된 수많은 왕들을 보면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선한 왕이 되고 악한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만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냐, 사람의 말이냐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두 음성이 교차될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느냐 마느냐 하는 유혹은 이미 넘어선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마는 아직도 오늘 예배 갈까 말까 갈등하다가 승리하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1년 52주 내내 교회 가는데 한 주일 빠진다고 어떻게 되는 것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급한 일인데 급한 일부터 하자’고 하는데도 사람말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 의지하여서 나온 사람이 없지않아 있을 거예요. 이제부터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동시에 주어지면 사람의 말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취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요, 그것이 잘되는 길이요, 그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4.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성경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잘 들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고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행하는 것, 이 세 가지 의미를 본문에는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안에 온갖 축복의 약속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살아서 약속된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고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고 자녀와 떡반죽 그릇과 짐승의 새끼와 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대적이 너를 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어서 한 길로 왔지만 일곱 길로 도망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창고가 복을 받고 하는 모든일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세계만민이 너를 보고 두려워할 것이고 하늘의 보고를 열어서 비를 내려 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어서 꾸어줄지언정 꾸이지 아니하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아니하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아니하는 이런 복을 주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이런 복을 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듣고 행하여서 이런 복을 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귀담아 들어서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는 것을 그대로 실천해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제 죽어도 말씀대로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것이 사는 비결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가정이 힘들어지고 하는 일들이 어려워져서 어떻게 할까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일거리를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너, 8대 2 할 수 있느냐?” 교회나온지 얼마 안되는 분입니다. 예수님 믿은지 얼마안되는데 하나님께서 “너, 8대 2 할 수 있느냐, 네 수입의 8은 네가 쓰고 2는 나에게 줄 수 있느냐, 하나님 앞에 헌금할 수 있느냐”. 이것은 오래 다닌 사람도 때로는 하기 힘든 일인데 나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 10분의 1이 아니라 10분의 2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복주신다고 하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했어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잘되게 하시는데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 사업의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그것 때문에 그의 신앙이 살아나고 불꽃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잘 듣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했더니 십일조 아니라 십의 이조를 드리면서도 잘 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음성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것까지 순종하세요. 그것까지 순종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줄 믿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 말을 듣는 것이 사는 길이요,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축복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여서 약속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언제 무슨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변화산에서 기도하다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저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서 답답해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성경을 읽는 중에 성경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실때도 있고, 때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만 들으면 됩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만 들으면 뭐든지 다 해결되어집니다. 그래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말씀만 듣고 순종하면 다 끝납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오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물 위로 갔습니다.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떠다주어라>하니까 맹물을 떠다주어도 그것이 포도주가 된 것 아닙니까? 말씀만 있으면 삶이 달라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말씀 들으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못 듣고 있습니까? 수많은 전파가 있지만 이 전파를 우리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수상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설교말씀을 통하여서, 성경말씀을 통하여서, 기도 속에서 말씀하시는데 내가 눈이 가리워지고 귀가 어두워지고 마음이 닫혀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들으려고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음성을 들려주게 될 것이고 그 음성만 들으면 다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저도 한 20년 전 우리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저의 진로를 놓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한 주간 산에 가서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네 앞에 열린 문을 준다 문열어 준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회에서는 여기 있지말고 좋은 교회 소개해 줄테니까 자꾸 가라는 거예요. 가야만 된다는 겁니다. 안가면 목사 면직 시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있으라는 겁니다. 너의 문을 열어 준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말씀 들었더니 하나님께서 세워줄 것 세워주고 다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듣고 순종하면 삽니다. 복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귀는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려고 열려있고, 우리의 눈은 예수님만 보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주님의 음성만 듣고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왜 교회 나옵니까? 사람말 듣기 위해서 교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듣기 위해서 교회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와서 사람말 듣다가 상처받는 사람이 있는데 교회와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듣는 말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사모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제 사람말 듣다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 하나님이 사람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에서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말을 할지라도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종들이 들으니까 참 기가 찬 것이었습니다. 맹물을 항아리에 채워 놓고 그것을 술이라고 떠다 주라니 이건 뺨맞을 일 아닙니까? 그래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니까 종들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서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세요. 그것이 사는 길이요 기적이 일어나는 통로입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들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들으면 삶이 바뀌어 집니다. 변화산에서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시는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박혀져서 사람의 말 듣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만 듣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리라고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뒤에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예배시간에 기도를 통하여서, 찬송 속에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없는 말씀들을 주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 마음에 감동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할 때에 초자연적인 음성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늘 사모하고 그 말씀이 내게 떨어질 때마다 그 말씀을 생명을 걸고 순종하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아직은 내가 순종하지 못한 그 무엇이 있다고 하면 그것까지라도 한번 순종해 보세요. 하나님의 역사를 이 현장에서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날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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