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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경건 (약 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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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경건(약1:26-27) 

약1:26-27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무엇인가?" 경건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가?" 이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경건의 의미를 깨닫고, 매일매일 순간마다 경건의 실천이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골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늘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자기의 믿음이 제일 좋은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친구가 넌지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만약 자네에게 소가 열 마리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는 당연한 듯이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소가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려야지. 그러나 내게는 소가 한 마리도 없다네."
친구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말이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는 또 쉽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한 마리뿐만 아니고 열 마리라도 다 드려야지. 그러나 내게는 말도 없는걸 어떻게 하겠나."
친구는 마지막으로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돼지가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러자 그 농부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역정을 냈습니다.
"자네! 간밤에 우리집 돼지가 새끼를 열 마리 낳은 것 어떻게 알았어?"
물론 우스개이야기입니다만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돼지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께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 소나 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큰소리 치는 사람은 언제나 시원치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사실 언제나 말이 없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한 유명한 수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속세를 떠나서 깊은 사막 속에 들어가 수도하는 일에 전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일이 생기면 그에게 찾아가서 기도를 받기도 하고 또 그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큰 은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수도사님, 우리가 수도사님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이렇게 먼길을 찾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뜻밖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으면서도 실천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듣기만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이미 들은 것을 가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이미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새로운 말, 신기한 말, 무엇인가 재미있고 유익한 말을 자꾸 듣기를 원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1:22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 2:17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고,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해서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3:13이하에 보면 지혜도 참 지혜가 있고, 거짓 지혜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지혜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지혜도 있습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경건을 참 경건과 거짓된 경건으로 구분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입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경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전연 기뻐하시지 않는 삶도 있습니다. 거짓된 경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참되게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속에서 참된 경건의 척도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언어생활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과연 경건한 사람인지 경건하지 못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물질생활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물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경건생활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회생활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삶이 아니고, 교회 밖에서 곧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진정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경건의 모양만 보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첫번째 척도는 언어생활입니다.

2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모름지기 경건의 첫걸음은 말조심하는데 있습니다. 혀에 재갈을 먹여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말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될 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지, 조금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고 원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해방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이 힘들다고 곧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죽겠다! 다 망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은 그들의 말 그대로 광야에서 다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민14:28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러나 욥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얼마나 큰 시험을 당했습니까?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열 자녀도 다 죽었습니다. 그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음을 생각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

누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욥입니다. 이처럼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참된 경건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동료 유대인들이 돌로 떼려 죽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입을 열어서 어떻게 말을 했습니까?
"이 못된 놈들아! 너희가 잘될 줄 아느냐?"
만일 그가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의 순교는 별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들을 마음으로 감싸주었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삶인 줄 압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삶이 경건한 삶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말조심 해야되겠지만, 사람들 앞에서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근거없는 말, 지어낸 말, 또 듣기는 적게 들었는데 크게 확대해서 하는 말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상처를 줍니까?
여러 해 전에 논산훈련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관이 훈련병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설명을 자세히 했습니다. 이제 훈련병들이 한 사람씩 사선에 올라서서 목표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실습을 하는 차례였습니다. 한 훈련병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습니다. 힘껏 던졌습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목표물에 떨어진 것이 아니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대편력 중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터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다시금 집어서 던질만한 시간적인 겨를도 없습니다. 옆에 있던 중대장이 그것을 보고서 자기 몸으로 수류탄 위를 덮쳤습니다. "쾅!"하면서 중대장의 몸은 그 순간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가 누구였습니까? 강재구대위입니다. 나중에 추서되어서 소령이 되었습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병사는 나라를 지키는 것은 커녕 자기 동료를 죽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혀를 재갈먹이지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리게 되면,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고 전도의 문을 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영혼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 가운데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그 사람은 자기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고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낫다."
자기는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교회의 문을 막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나는 경건하다. 내가 지금 예배 드리고 있으니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첫걸음은 말조심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이런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주옵소서. 성령께서 내 혀를 재갈 먹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가급적이면 말을 아끼고 꼭 필요하다면 은혜로운 말, 덕스러운 말,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발명가 에디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의 정원을 정말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을 자고 나서 아침에 나와 보았더니 정원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꽃도둑이 와서는 꽃을 다 따간 것입니다. 꽃을 딴 것 까지는 좋은데 줄기를 잡고 흔들어놓아 어떤 것은 뿌리까지 뽑혔습니다. 그가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에디슨은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큰 종이 위에 큰 글씨로 이렇게 썼습니다.

"꽃도둑님 귀하
앞으로 꽃을 꺾으실 때는 손으로 꺾지 마시고 부디 여기에 매달아놓은 가위를 이용해서 잘라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위와 함께 그 메모지를 정원의 잘 보이는 곳에 메달아 놓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나가 보았습니다. 거기에 회신이 적혀 있었습니다. 회신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집주인님 귀하
주인님이 달아놓으신 가위는 잘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숯돌에 잘 갈아서 다시금 매달아 놓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까? 내가 조금 속이 상했다고 해서 가시 돋힌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결국 그 말이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희의 오른뺨을 치느냐? 왼편 뺨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고 하느냐? 겉옷까지 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느냐? 십리까지 가 주어라."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모습이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경건의 첫걸음은 말을 조심하고 혀를 함부로 굴리지 않는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의 두번째 척도는 물질생활입니다.

우리가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경건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27절 상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 고아와 과부는 누군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에 무슨 사회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었겠습니까? 일자리가 충분했던 것도 아닙니다. 또 그 사람들은 누구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보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받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주는 입장에서는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이 보상하시리라는 마음으로 순수한 동기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경건입니다. 불순한 동기가 없으니까 정결하고 깨끗한 경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진 돈, 내가 가진 물질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쉽게 대답합니다.
"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선한 목적에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 가운데 일부를 떼어서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돼지가 하루는 길거리에서 암소를 만났습니다. 돼지는 암소에게 다가가서 평소에 자기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을 토로해 놓았습니다.
"얘, 암소야. 반갑다! 나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해 주느냐? 사람들은 내 고기를 가지고 햄도 만들어 먹고, 베이컨도 만들어 먹잖아. 어디 그것뿐이야? 내 창자를 다 빼 가지고 순대로 만들어 먹고 심지어 발가락도 족발이라고 해서 얼마나 맛있게 먹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고 너 암소만을 좋아할까?"
암소가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거야 간단하지. 이유는 뻔해. 너는 죽어서만 좋은 일을 하고, 살아있을 때는 너만 먹잖아. 그러나 나를 생각해봐. 나는 살아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주고 또 맛있는 우유를 주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너는 싫어하는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은 어차피 죽으면 남에게 다 주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죽고 나서 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나쁜 소리만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베풀어주고 나누어주면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칭찬해 주시고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편지 한 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가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움켜쥐고는 나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은 나의 것이지요. 나는 아주 쉽게 당신을 지배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신은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한히 값지며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포기의 풀도 살 수 없듯이, 내가 없으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죽고 말 것입니다. 회사도, 정부도, 학교도, 은행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내게 어떤 신비의 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 힘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사람들과 수없이 만납니다. 그들은 나 때문에 서로 인격을 무시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순전히 나 때문에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욕망이 없다면 난 어쩌면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돕는 선한 사람들,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려는 이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나의 힘은 사실 무한하답니다. 그러니 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가 누구입니까? 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목적에 사용하십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양과 같은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선한 목적에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쌍한 이웃들에게 내 주머니를 털어서 돕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돕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칭찬 받을 것입니다.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나만을 위해서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염소와 같은 사람입니다.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사랑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입니다.

경건의 세번째 척도는 사회생활입니다.

2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교회에서는 모두 경건한 척 합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면 그 사람이 정말 경건한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2:16에서 말씀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세상은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우리를 여러 가지로 유혹합니다. 물질로 유혹합니다. 타락한 성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명예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해서 거룩하게 살아야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도 세상에 물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바닷물이 짭니다. 그러나 바다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짜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빛과 소금된 우리들은 세상이 어두우면 더욱더 빛을 발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부패했으면 더욱더 짠맛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Sunday Christian"이 되지 말고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Everyday Christian"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입니다.
얼음공장에서 생긴 일입니다. 여름철이 되면 얼음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얼음공장은 항상 시끌벅적합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큰톱으로 얼음 덩어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 또 인부들의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합니다. 거기다 얼음공장의 바닥은 톱밥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 톱밥 위로 떨어지는 얼음조각들이 뒤범벅되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산란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시간을 좀 보려고 하는데 손목에 있던 시계가 없어졌습니다. 어딘가에 풀어놓기는 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값도 비싼 시계이지만 결혼할 때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받은 예물시계였습니다.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료들에게 같이 찾아보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작업장을 벗어나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끝났습니다. 다시금 작업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얼음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꼬마아이가 자기의 시계를 찾아서 손에 들고는 공장 입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얘야, 나는 잃어버렸던 내 시계를 그토록 찾아다니느라고 애를 썼지만 찾지 못했는데 너는 어떻게 쉽게 찾았느냐?"
아이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인부들이 모두 식당으로 갔습니다. 시끌벅적하던 작업장이 조용해 졌습니다. 아이는 공장 안을 지키기 위해서 책이나 읽으려고 한 곳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재깍재깍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톱밥을 헤쳐 보았더니 거기에 시계가 들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분주합니다. 세상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일에 찌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와서도 우리의 마음이 산란해서 예배 드리는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건성으로 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건성으로 듣고 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십 번, 수백 번 통독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단 한 말씀을 읽고 듣더라도 그 말씀에 집중해서 그 말씀을 붙드는 심정으로 들을 때, 그 말씀이 내 삶 속에 살아 역사하면서 내 영혼을 살찌우고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일과 속에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과 1:1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치 얼음공장의 식사시간처럼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비우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영이 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제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된 경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건의 첫걸음은 말조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말을 아끼십시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다.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서 나온 그 소리대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꼭 말을 해야 된다면 은혜로운 말, 덕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해서 쓰지 말고 환난 중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은 타락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켜서 우리 마음을 늘 하나님께로 집중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경건을 실천함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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