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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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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6)

□ 부족함이 많은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고 질서가 있고 모든 것이 풍요로웠습니다. 정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풍요로웠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한 이후 우리 인간에게 가난이 왔습니다. 배고픔과 빈곤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여야만 했습니다. 물론 인간의 타락 이전에도 노동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노동이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품을 떠난 우리 인간은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우리 인간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가져도 만족이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삶 속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많고 영적으로도 부족함이 많고 시간적으로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 과연 나는 부족함이 없다!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실 이 시를 쓴 다윗의 삶을 살펴보아도 많은 부족함과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거룩한 떡을 요구하여 먹은 적도 있고 나발에게 양식을 구하려 군사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 압살롬 때문에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던 떄도 있었습니다. 16년이라는 피난 생활이 인간의 배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심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던지 시22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렇게 늘 아쉽고 부족한 것이 우리 인생인데 다윗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체험되어진 신앙고백입니다.



□ 왜 부족함이 없는가?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그렇게도 많은 궁핍과 환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배신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바울이 가진 것이 뭐가 있습니까? 부동산이 있습니까? 주식이 있었습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남는 것이 있다면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수모를 당한 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탄한 삶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씁니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풍성함입니다. 부요함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왜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한 자가 되셔야만 했을까요?

저와 여러분을 부요케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시편 23편 전체는 왜 여호와를 자기의 목자로 삼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23편을 우리가 깨달으면 아니 깨달을뿐만 아니라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 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따르면 부족함이 없는가?

1.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2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먹어야 삽니다. 배부르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금식기도을 해 보신 분은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금식기도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죽을 한 숱갈 떠 넣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아세요!

온 세상이 달라져 보입니다. 이렇게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되신 우리주님께서 제일 먼저 인도하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푸른초장입니다. 푸른초장이 없다면 양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천산지가 전부 파랗기 때문에 푸른초장 에 대하여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나라는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푸른 초장은 대단히 드뭅니다.

다윗은 양을 많이 쳐 봤기 때문에 양들이 푸른초장으로 인도될 때 양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마치 양들이 푸른초장을 만난 것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은 양들이 누워 가지고도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을 만큼 풀이 많은 곳입니다. 풀이 적으면 어떻게 누워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지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은 단지 우리를 단지 푸른초장으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단지 배고픔의 문제만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참된 평안과 안식이 없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휴스턴 제일 감리교회의 챨스 알렌 목사님이 쓴 시편 23편에 대한 책들 가운데 [심령의 치료자 하나님]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이 목사님에게 큰 회사의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이 사장은 말단 사원으로 그 회사에 들어가서 그가 지닌 비상한 능력과 열성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사장으로서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같았으나 실상 그는 사장이 됨으로 해서 잃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경쟁회사와 끊임없는 보이지 않는 경쟁을 계속해야 하고 경쟁회사가 실적이 조금만 높아가도 불안 초조 긴장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편히 쉬지 못하고 긴장, 긴장 또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의 주치의가 백방으로 그를 치료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때, 그 담당의사는 그 사장에게 목사님과 상담해 보기를 권면하여서 이 사장은 챨스 알렌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두 사람은 장시간 대화했습니다. 면담을 마친 후에 알렌 목사님은 그에게 약을 지어 주며 "내가 이 약을 당신에게 지어 드리는데 매일 다섯번씩 일주일 꼬박 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처방대로 해야 합니다. 약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도 안되고 약을 건너뛰어도 안되고 며칠 먹다가 쉬어도 안됩니다. 일주일 동안 하루 다섯번씩 드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이 약을 먹고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 식사 후에 그리고 자기 전에 이 약을 잡수세요."

사장이 집에 가서 약을 꺼내보니 그 속에는 약봉지 같은 조그만 네모난 종이에 전부 시편 23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장은 자기 인생을 고쳐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가 되어 버렸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처방이라면 한번 해보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시편 23편의 말씀을 펴들고 끓어 앉아 그 말씀을 읽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도 혼자서 이 말씀을 먹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를 최대한 받아 들이겠다는 마음의 자세로 말씀을 읽었습니다. 점심 후에도, 저녁 후에도, 자기 직전에도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처방대로 꼭 그대로 해 갔는데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평안이 그 마음 속에 찾아 왔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푸른초장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푸른 초장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막연히 좋은 말씀으로만 생각지 말고 이 사장처럼 여러분의 삶속에 한번 적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복잡하게 믿는 사람은 목회자가 되었든지 일반성도가 되었든지 삶이 피곤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는 일도 없지만 않되는 일도 없다"

복잡하게 믿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헤맸듯이 굽이 굽이 돌아서 은혜를 받고 단순하게 믿는 사람은 있는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는다.

필립 켈러라는 목사님이 쓴 [목사가 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필립켈러목사님은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동 아프리카에서 양치기와 목자의 생활을 하신 분으로서 과거에 양을 치며 느꼈던 것과 시편 23편을 비교해서 [목자가 본 시편 23편]을 썼습니다.

양은 4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양은 절대로 쉬거나 눕지 않고 그저 맴맴거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 2가지만 애기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완전무결한 보호가 있을 때

소심하고 겁이 많은 동물인 양은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받지 못하면 누워 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자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 개짖는 소리, 어린아이들이 출현하면 양들은 마음놓고 쉬지 못합니다. 인간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받지 않으면 푸른 초장에 눕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을 삽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떤 불행이, 위험이, 재난이 우리를 엄습할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의 인생의 목자이신 예수님이 내곁에 계심을 볼 때에 이런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만이 모든 두려움을 쫓아낼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6절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대머리됨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수고로워하지 않으십니다.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심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 하느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이사야 41:10절 말씀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무서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희를 붙들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두려워 하지 말라]. 매일 매일 하시는 한마디의 말씀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기드온에게도, 많은 선지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이 믿음이 있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품에 편히 누워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알력과 마찰이 생길 때

떼를 지어 사는 양들이기에 언제나 무리 가운데 알력과 마찰이 생기고 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있는한 양들은 편히 눕지를 못합니다.

동물들의 세계에도 끊임없는 다툼과 알력과 잔인한 경쟁이 있습니다. 닭들을 한번 보세요. 찬하게 지내다가도 여차하면 포악해져서 상대방을 콕콕 쪼아서 물어 뜯습니다. 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 잘 지내다가도 알력이 생기면 서로 떠받습니다. 양들은 상대방을 자꾸 밀어냅니다. 끊임없는 세력다툼과 주도권 싸움이 계속 됩니다. 여기에서 긴장과 잔인한 경쟁의식과 싸움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 양들은 만족하게 쉴 수가 없으며 늘 서 있어야 합니다. 왜요? 내가 이미 공격했기 때문에 언제 도전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서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대항 하다가도 목자가 나타나면 그 때 평화가 옵니다.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찾아옵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웬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못하고 교회에와도 여전히 그런 분이 계십니까? 누구와 알력이 생기고 원수를 맺고 있으면 그 마음에 푸른초장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그 누구와 알력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지나친 경쟁으로 싸움이 생기는 한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알력이 생기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누가 더 크냐고 싸움이 벌여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안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원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서로 나누어지고 깨어지고 원수된 이러한 무리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화목케 되기를 원하셔서 주님이 대신 죽으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 봐야합니다.

십자가는 화해의 표시이며 평화의 표시입니다. 고린도 교회교인들은 서로 헛된 자랑을 했습니다.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은 은혜 많이 받은 것 자랑하고 방언하는 사람은 방언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자기 자랑을 했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 자랑하고 정통을 자랑하는 이는 내가 정통이라고 뽐내었습니다. 그리고 참 예수교 사람이라고, 참 그리스도파라고 나눠지고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너희들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구나! 너희들이 왜 십자가를 헛되게 하느냐? 십자가는 화해의 표시요. 십자가로 나누어진 둘을 하나되게 하시는 그 역사를 너희가 헛되게 하는구나!"그렇게 말씀 하시고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박히신 것외에는 나는 알지 않기를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 그가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2절)

푸른 초장에서 풍성한 꼴을 먹게 한 다음 목자는 쉴 만한 물가르오 인도하십니다. 사슴하고 양하고는 반드시 풀을 먹고 난 다음에는 목이 말라서 반드시 물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은 깊은 물을 무서워합니다. 왜냐하면 양이란 우굴우굴한 털을 가지고 사니까 꼭 이불을 덮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물이 좀 깊은데 들어가면 털이 물에 베어서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욕은 언제 시키느냐? 항상 털을 깍고 난 다음에 합니다. 그래서 양은 깊은 물을 싫어합니다. 거세게 흐르는 물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양을 어디로 인도합니까?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아무 염려 없이 두려움 없이 들어가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목자는 양을 너무나 이해를 잘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이해를 잘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미워하는지, 어디를 싫어하는지,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따르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만 육체와 영혼과 시간의 모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푸른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양인 당신 안에 부족함이 있습니까? 그것은 두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지 않아서입니다. 둘째로는, 구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리고 구하였을지라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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