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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이 있는 교회 / 잠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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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있는 교회(잠언 19장 21절)


< 서 론 >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은 이웃나라 친구로부터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대왕은 대단히 기뻐하며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 사냥을 나갔는 데 개들은 사냥할 의욕이 전혀없이 누워만 있었습니다. 며칠 후, 사슴 사냥에도 두 사냥개들을 데리고 나갔지만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왕은 몹시 노해서 사냥개들을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가 방문하게 되었는 데 대왕은 친구에게 불만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실망한 낯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 그 사냥개들은 호랑이와 사자 사냥을 위해 훈련된 값비싼 사냥개들이었습니다"

금년도 늘빛교회의 주제를 `목적이 있는 늘빛교회'로 정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 있다면 교회도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며 개인과 사회를 구원하여 천국을 확장하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호랑이나 사자를 잡는 것 같은 큰 목표요 목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토끼나 사슴 정도를 잡는 세상 수준의 목적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운영되고 있는 교회도 있다는 말입니다.

1. 교회의 목적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왜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교회의 설립은 인간 창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에 대해서는 두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 인간 행복설 - 인간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 하나님 영광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영광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영광을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영광을 올려야 할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인간은 만물 중에 으뜸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하나님의 속성을 드높이는 일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로 표현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잘 드리도록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갈 수록 예배가 인간중심이 되고 관심을 사람들에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교회경영학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있습니다.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 사업 잘되세요?" 할 때는 스스로가 민망스럽습니다. 교회 스스로가 기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요즈음 이단 소리 듣는 구로구의 어떤 교회는 교회 유급직원만 해도 5백명이랍니다. 그러니 기업도 큰 기업이지요. 교회가 기업화가 되다보면 교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별 아이디어들이 속출합니다. 신자들은 고객이 되고 고객의 취향에 맞게 교회가 변질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를 하나님에게 조율하기 위해 와야하는 데 자꾸 사람들 위주로 설교나 목회가 되어갑니다. 뭔가 아늑해야 하고 눈에 근사하게 보여야 하고.... 교회는 점점 종교기업장이 되어버립니다.

교회는 예배를 최우선 순위로 설정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교회에 나와야 하는가? 예배하기 위해 와야 합니다. 예배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은 벌에 쏘여도 움직여서는 안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중심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선 예배의 태도가 변해야 합니다. 졸거나 발을 꼬거나 데리고 온 자녀들과 장난질을 쳐서는 안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 이런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과 인격을 생각하며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그분의 도움과 응답을 받기 위해,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에게 마음과 심혈을 쏟아바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배가 교회당 밖으로 흘러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당은 예배훈련소, 예배연수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일한" 예배당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배당을 나가면 예배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예배를 통해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하는 예배가 되지 못하고 종교집회로 끝나기에 세상에 나가서 예배하는 생활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왜 창조되었는가?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예배터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찬송이 있고 설교가 있어야 예배가 아닙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 앞에서 살면 그것이 예배입니다. 세상의 부도덕과 불경건에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면 그것이 곧 예배이며 존재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늘빛교회의 예배가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격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를 받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예배로 불붙어야 세상이 우리를 물들이지 못합니다.

2. 교회의 목적은 예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배는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얼굴이 훤하고 술집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비틀비틀 세상이 저들의 것입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그 얼굴에 감동이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은 얼굴이 "맹탕"입니다. 영향을 못받았어요.

왜 그럴까요? 교회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배가 최우선의 목적이거늘 봉사나 성경공부 교습소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성경은 배우고 봉사는 하는 데 예배하는 삶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숙이 배움의 양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측정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많이 배웠고 잘 아느냐가 아니라 성경말씀 대로 살고 있느냐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대학공부해서 사람 노릇을 했습니까? 육아책 들여다보며 자녀 키웠고 요리책 보며 요리했나요? 그것 없어도 잘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제자훈련하고 베델공부하고 이런저런 공부해서 교회 잘 섬겼습니까? 그런것 없어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을 배울만큼 배웠는 데도 오히려 비판의식만 늘고 꽤만 부립니다. 제대로 못 배운겁니다. 성경에는 익숙하지만 인격에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대부분 예배를 등한시합니다. 성경공부에는 열심을 내는 데 예배하는 일에는 등한시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신앙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보면 그 좋았던 믿음 다 까먹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향을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나옵니다. 구약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신약적인 의미는 제자입니다. 백성이나 제자나 같은 뜻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따르는 사람들이요 본받아야 할 게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본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법도가 있고 예수님의 삶이 있습니다. 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특히 70년 대 80년대의 한국호는 이상한 통치 철학을 가진 선장들에 의해 운행되어 왔습니다. 한마디로 "잘 살아보세" 철학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인권보다 자연보다 환경보다 사람의 질보다 더 우선시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풍파를 만난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7,80년대 목회자들의 철학은 그냥 부흥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이든 무속적이든 많이 모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 철학은 자리만 있으면 사람이건 짐이건 많이 싣고 보자는 선장의 철학처럼 위험한 것입니다. 21세기 교회의 이슈는 성장이 아니라 건강입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교인들의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가로 그 군대의 힘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군대의 힘은 그들이 최전선에서 어떻게 활약하는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는가로(청중)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자신들의 현장에서 사역자가 되는가(군대)로 알 수 있습니다(릭 웨렌).

그러나 교회의 목적이 변질되었습니다. 복받고 인생을 즐겁게 사는 곳이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적에서 이탈된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이 가져다 주는 유익만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책임과 그에 따르는 대가를 무시해 버리면 교회의 존재 목적에 위배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신자들을 천국 시민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에 재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인격과 생애를 보여주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가 있습니다.

3. 교회의 목적은 전도와 나눔입니다.

하나님은 왜 교회를 주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성하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때문에 조성된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로, 세상에 구세주를 보내시는 통로로 선택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세상에 머물도록 해야했고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선전하도록 하기 위해 선택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혼자 독차지하려고 했습니다. 독차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독선과 아집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민족은 흩어졌습니다.

교회의 건강상태나 힘의 평가기준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 교인을 끌어모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도자로 파송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우리 교회는 목적과 함께 하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왜냐? 우리 교회는 수평이동에 의하여 성장해 온 교회입니다. 초신자들을 불러다가 양육시켜서 성장한 교회가 아니라 잘 다니던 분들이 이곳저곳에서 이사오고 여러 사정에 의해 우리 교회로 오셨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 이런 설교, 듣고 민망해 하실 것 없어요. 우리 장로님들부터 다 그러신 분이어요. 제가 세례주고 키워낸 분들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이어요. 교회를 옮긴 자체가 그리 민망한 것은 아닙니다.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의한 성장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열심하던 분들이기에 조금만 불을 붙여주면 금방 활화산이 됩니다. 금방 사역할 수 있는 분들이어요. 그런데 문제도 있어요. 다른 교회에서 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이전 교회의 문화보따리를 들고 와요. 유태 탈무드에 "재혼을 하면 네 명의 남녀가 한 집에 산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지금 부부된 사람들 두명에 전 남편과 전 아내, 이렇게 네명이 산다는 것이지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보다 더 합니다. 수백명의 목사님들이 강목사와 목회하는 겁니다. 그냥 우리가 한 교회에 와서 아집을 버리고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강목사의 목회와 가르침에 충실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옛날 방식을 고집합니다. 옛날에 이랬으니, 옛날 목사님은 저랬으니... 그래서 저는 우리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이사가거나 교회를 옮기면 꼭 말합니다. "강목사는 잊어버리세요. 그 교회 방식대로 하세요"

수평이동을 하신 분들의 약점이 또 하나있어요.
오래 믿었기에 불신자 친구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전도가 잘 안됩니다. 요즈음 우리 교회가 전도대를 조직하여 열심히 합니다. 이제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전도하여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면 굳이 돈들여 가며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아울러, 교회는 나눔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도 나누고 용서도 나누고 소유도 나누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섭취만 하면 심술궂게 되어갑니다. 사역하고 전도하고 나눠주어야 건강하고 힘찬 말이 되어 주님의 목적을 성취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곳이 될 때에 교회는 목적과 함께 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요 교회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 결 론 >

서울올림픽 때 금매달을 따 `세계에서 가장 발이 빠른 여자'라는 그리피스 조이너는, 사회자와의 인터뷰에서 "달려갈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달린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멋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목적을 세워두고 달려가야 합니다.
처음에 표어를 세울 때에는 "목적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목적과 함께하는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교회가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 목적과 함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을 주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다시 세웁시다.
바른 예배, 제자로서의 삶, 선교와 나눔의 생활.
이에 대한 목적을 바로 세우시고 바른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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