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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 / 욥 31:3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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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
욥31:32, 16-23

본문에 보면 욥은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였고, 행인에게 자기의 문을 열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자기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었으며, 과부의 눈을 실망시켰는지를 말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그는 거리의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을 볼아 보며, 그들을 섬겼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스스로 의롭게 여기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욥기 32장 1절에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욥은 하나님에게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몇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제할 때에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조심해야 할 일은 구제할 때에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하면서 구제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우월감을 갖거나 자기가 영적으로 더욱 성장한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구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의 구제와 섬김에 대하여 자랑하다가 하나님에게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행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일은 구제하면서 그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제를 받는 일에 수치를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제 받는 사람이 그것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느낄까봐 조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필요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를 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6장 3절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씀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할 때에 구제를 하고 그것으로 끝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구제를 받는 사람은 구제 받는 일을 즐기게 되고 의존심과 의타심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제를 할 때에 그의 삶의 근본적이 대책이 세워지도록 기도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형제애입니다. 구제는 그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하여 하는 것인데 구제 자체가 그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제로 인하여 그 사람이 삶에 용기를 얻고 소망을 갖게 되며 자기의 삶에 애착을 가지게 될 때 그가 실제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구제로 인하여 의타심을 갖게 되고 의존심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에 구제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이 닫쳐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구제할 때에 어떻게 구제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에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양과 염소를 분별할 때에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하자 의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구제와 선행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제할 때에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즐거움은 노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때에 그 즐거움이 더욱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가 일하여 자기의 생계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의 쓸 것도 채워 준 것을 보게 됩니다. 노동을 통하여 돈을 벌어 자기와 자기 가족들의 부요한 삶만을 추구할 때에 우리의 직장 생활은 따분하게 되고 노동의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노동은 그 자체로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예배일 뿐만아니라 그 결과로 얻어지는 물질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되어 질 때 더욱 노동의 희열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주는 작은 물질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세 번째로 우리가 구제에 대하여 배워야 되는 것은 구제하는 자에게 물질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구제를 많이 하면 사업이 잘 되고 부자가 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되기 위하여 억지로 구제를 하는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를 감찰하시며 우리의 동기를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구제를 할 때에 계속해서 구제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실족함이 없게 됩니다. 구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말은 물질에도 어떤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유 인력이나 베르누이의 정리처럼 과학의 법칙에 의하여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가 움직이듯이 돈이 돌아가는 데에도 어떤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구하는 분야를 경제학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돈이 경제학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3장 22절에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불의한 방법으로 기업을 경영했던 회사들이 망해가고 있는 것을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존속하리라고 기대했던 재벌들이 하루 아침에 허망하게 망하는 것을 보며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욥기 27장 16절에 악인이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지라도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과 의복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그 것을 누리는 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가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물질이 몰려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잠언에 31장에 나와 있는 현숙한 여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끝으로 우리가 구제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돈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허망하거늘 하물며 인간보다 소망이 없는 돈을 의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도서 2장 25절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에게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신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일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물질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돈을 의지하지 말고 그 때 그 때 주시는 물질로 인하여 자족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현명한 삶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라고 전도서의 기자는 충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지혜의 삶인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항상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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