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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함에 이르는 두려움 /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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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룩함에 이르는 두려움
본문 : 히12:14-17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본문내용] 15647K bytes
거룩함에 이르는 두려움  히12:14-17

한 스코틀랜드인 성도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는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아주 훌륭한 교훈을 발견했다네."  "오, 그래? 그럼 내게도 그것을 들려주게."  "그래, 읽어 주지."
말을 건넨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그가 발견한 성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시편 56:3 이라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도 동의하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참 훌륭한 말씀이군 . 그런데 말야, 나도 오늘 아주 훌륭한 교훈을 발견했지. 자네가 발견한 것보다도  더 훌륭한 의미가 있는 말씀이라네. 자, 이사야 12: 2절을 보게나.  그 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네.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자, 어떤가?"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병행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과 자신을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심지어는 마귀의 권세까지도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있는데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두려움만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의 편에 있는 사람은 정의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오히려 두려움보다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겁이 많은 개일수록 큰소리로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미국 시카고에서 악명 높았던 범죄 갱단 두목의 딸이 책을 썼는데, 그 딸이 말하기를 자기 아버지는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누구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차를 보아도 경계하며 쳐다보고, 식당에 앉아서도 사방을 경계하며 앉아있고, 잠시도 공포가 떠날 날이 없더니 결국은  갑자기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조선 왕국 시대에 가장 무서운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가장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왕위를 빼앗고 죽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이고 폭군 행세를 하였습니다.         

일찍이 시성 괴테는 인생이 안고 있는 두 가지 두려움이 있는데 그 하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려운 것을 모를 정도로 교만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소심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악령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면 교만과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함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성도가 참으로 거듭난 참 성도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그의  말이나 행동, 또는 그 생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 안 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 있는 체하고 말을 잘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제멋대로 거짓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참 신앙이 없는 위선적인 신앙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경외함"으로 표현했습니다.
시편 2편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으며, 시편 114편 7절에는 "땅이여 너는 주 앞에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떨며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두려움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평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인간의 감정 속에 슬픔과 기쁨이 함께 공존하듯이 성도의 가슴속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이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성도들이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것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 문에 나와 있는 세 가지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적어도 두 가지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느헤미야 1장 11절에 있는 약속의 말씀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했고. 했으니 기도를 들어주시는 축복 받게 됩니다.
둘 째는 이사야 66장 2절에 ".... 무릇 마음이 가난한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을 내가 권고(도우심)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진 성도를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약속합니다. 

1. 은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15)

만일 어떤 가난한 노동자가 몇 달 동안 힘들게 노동을 했음에도 임금을 지불해 주지 않는 다면 '이번에도 임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사나!'하는 걱정과 두려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주일 날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사람은 달게 은혜를 받고 있는데 왜 나에게는 은혜가 임하지 않는가? 하는 은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닌 열 두 제자가 있었지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사람들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았고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녔어도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갔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평하기를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로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쓸모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맛을 냅니다. 썩어져 가는 세상에 소금 역할을 합니다.  맛을 내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어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비웃음거리가 되어 밟히게 됩니다. 
제가 잘 아는 교회의 목회자 사모님이 당뇨병을 앓고 있던 중에 무리를 해서 심근경색으로 두 번이나 쓸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뇨병이 생기면 피가 걸죽해지고 혈관이 좁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심장에서 무리하게 몸 전체에 피를 공급하기 위하여 힘을 쓰다가 심장 부분에 발작증세가 일어나고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심근경색증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영적인 심근 경색증에 빠지게 됩니다.  연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돕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감당할 능력은 부족한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은혜마저 끊겨지면 혼자서 감당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쓸어 지고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수 없습니다.
이어서  고후 6:2절에는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주시는 데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를 헛되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는 자세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힌두교를 믿었던 썬다싱은 기독교 학교를 다니다가 복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침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에 누어 죽어버리겠다고 하며 죽음이냐 하나님이냐의 양자택일을 놓고 밤새도록 기도하다가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은혜를 입은 썬다싱은  가족들에게 버림당한 것도 개의치 않고 인도와 티벳 일대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복음 전하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갈급 해야 합니다.  사슴이 목이 말라 갈급 하면 사냥꾼이 총을 겨누고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만 찾아다닙니다.  물을 찾는 갈급증 때문에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찰스 스펄전 목사가 어느 날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피곤하고 지쳐 의자에 앉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묵상하면서 조금씩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을 템스강 속에 있는 고기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템스강 안에 살고 있는 고기가 강물을 조금씩 마시다 보면 다 말라 버릴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템스강보다 큰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셔라, 작은 고기야 마음껏 마셔라  나의 강물은 네가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 스펄전은 자신이 애굽의 거대한 곡창의 작은 생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쥐는 곡창의 곡물을 조금씩 먹다가 곡물이 다 떨어져 굶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라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요셉이 와서 “용기를 내라, 작은 생쥐야 나의 곡창은 네가 먹기에 풍족하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만큼 무궁무진하여 고갈되는 법이 없습니다.  은혜는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풍성하여 집니다.
여러분은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은혜를 받습니까?  은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까?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14절에는 은혜 받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삶이 은혜 받는 첫째 조건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 져야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은혜 받는 두 번째 조건은 거룩함을 좇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큰 소리 치고 다니면서도 거룩함을 좇지 않는 다면 그 사람은 거짓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는 거룩함을 좇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부어 집니다.

2. 쓴 뿌리가 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15하)

15절에 보면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더러움을 입히는 것이 <쓴 뿌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쓴 뿌리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을 말합니다. 
신 29:18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떠나서 악을 행하는 것이 쓴 뿌리입니다.
사울 왕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겸손하고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점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쓴 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십 수년간을 쫓아다녔고  제사장 85명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은혜가 떨어져 쓴 뿌리가 생긴 사울 왕은 밤마다 악령에 시달려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은혜를 잃어버리면 쓴 뿌리가 생겨서 그 행위가 악하여 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여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태선 장로는 6,25 사변 이후에 가난과 질병과 실의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는 신유의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교만의 쓴 뿌리가 생겨서 자신은 감람나무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온 자칭 재림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상남도 기장과 부천에 있는 소사와  덕소에 신앙촌을 세워서 그 곳에 들어오는 성도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며, 모든 재산을 헌납 받고 집단 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쓴 뿌리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본래 사탄은 하나님 나라에서 강력한 능력을 소유한 계명성이라는 천사장 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명성이라는 천사장에게 교만의 쓴 뿌리가 생겨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많은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전하려다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 무저갱이라는 어둠의 나라에 이르러 살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도 죄의 쓴 뿌리가 나도록 유혹하였으며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의 쓴 뿌리를 심어 놓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있는 마음에는 언제나 사탄이 역사합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 중에 쓴 뿌리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분들은 없습니까?  그런 분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저들이 사탄의 종노릇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쓴 뿌리를 가진 사람은 자신도 멸망의 길을 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명망의 길로 가도록 끌어 드립니다.
신앙인들 중에 쓴 뿌리를 조심하십시오. 거짓 영에 이 끌려 다른 사람들까지 미혹하려 합니다. 
가정의 쓴 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가족 중에 도박이나 술과 음란과 세상 향락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여 져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져 나가는 쓴 뿌리의 세력들이 많은 영혼들과 인생들을 쓸어드리고 있습니다.
쓴 뿌리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더럽게 합니다.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주도 세력이 쓴 뿌리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며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쓴 뿌리입니다.  내 속에 쓴 뿌리가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강력한 쓴 뿌리의 세력에 이끌려 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한다. (16)

16절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망령되다는 원문의 뜻은 "귀중한  것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천대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 21:24'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고 했습니다.
망령된 자에 대해서 현대인의 성경은 "불신앙"으로 번역했고 표준 새 번역에서는 '속된 사람'이라고 했으며 현대어 성경은 '하나님께 무관심한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이 가장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혹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망령 된 자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을 본문에서는 에서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아들입니다.  이삭이 늦은 나이에도 자식을 얻지 못하게 되자 간절히 기도하여 낳은 쌍둥이 아들들 가운데 첫째 아들이 에서입니다.  에서는 성격이 소탈하고 피부색이 붉고 털이 많을 뿐 아니라 사냥을 즐기는 남성미가 넘치는 야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삭의 특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성격도 좋고 인간미가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최대 약점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모든 장점을 다 소유하고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호감 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에서는 하나님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에서는 장자로서 아버지로부터 재산의 2/3에 해당하는 상속을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에서의 아버지 이삭은 왕도 부럽지 않는 큰 거부였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재산의 거의 모두가 에서에게 상속되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반면 에서의 쌍둥이 동생, 야곱은 여성스럽고 어머니 치마폭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 형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간교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호감 살 만한 장점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은 특별한 매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잔꾀를 많이 쓰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는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약점과 결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가지 큰 장점이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물질적 상속을 받는 장자의 축복보다는 영적인 축복을 받는, 하나님으로부터 장자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사람 좋고 인간미는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고 야곱은 인간미도 없고 간교한 인물이지만 믿음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누가 더 좋은 사람입니까?  물론 야곱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 됨됨이보다도 믿음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인간미가 좋아야지 믿음만 좋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점점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끊임없는 인격 변화가 이루어져  후에는 에서보다 훨씬 더  신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어내기 위해 꾀를 썼습니다.  마침 음식을 장만할 어머니는 안 계셨고 에서는 사냥에서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사냥하기 위하여 온 산중을 뛰어다니다 보면 몹시 허기가 지게 마련입니다.  특별히 에서는 팥죽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야곱은 그 점을 노리고 형이 사냥에서 돌아올 때를 맞춰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에서가 도착하여 지치고 허기진 모습으로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야곱이 교활하게도 흥정을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자신에게 넘기면 팥죽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에서가 생각할 때 어짜피 아버지 재산의 2/3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데 그까짓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야곱의 요구대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는 예사롭게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지만 이로 인해 그 후 에서에게는 엄청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되찾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지만 야곱에게 넘어갈 장자의 명분을 되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세상 것을 얻기 위하여 에서처럼 헌신짝을 엿장수에게 넘기는 것처럼 넘긴 적은 없습니까?  이런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인만 복을 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고 주일을 범하고 세상으로 내려간 일은 없습니까? 
에서처럼 하나님 축복에 대해 무관심한 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잃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 뜻을 함부로 거역하는 일을 삼가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두려움이 있어야합니다.  은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쓴 뿌리가 생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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