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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교사입니까? / 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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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교사입니까? 
본문 : 디모데후서2:1-2

[예화-新개미와 베짱이] 우리가 어려서 듣던 동화 가운데 "개미와 베짱이"가 있습니다. 개미는 일할 때 열심히 일했고, 베짱이는 일해야 하는 때에 일하지 않고 노래만 했다는 것입니다. 추수가 끝나고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개미는 비축한 식량으로 따스한 겨울은 보내는데 베짱이는 먹을 것 떨어지고, 입을 것 떨어져서 굶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이야기가 크게 바뀌어 졌습니다. 어떻게 바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 다음해가 되었습니다. 개미는 역시 지난해처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일만 하다 보니까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척추 디스크, 그래서 합병증으로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모든 물질을 모두 병원비와 약값으로 다 날려 버렸습니다.

베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짱이는 더 열심히 노래를 했습니다. 남들이 욕하든 말든 열심히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레코드 취입을 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그 판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교육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환경이 변하고 교육내용이 변하고, 교육의 관심이 변하고 습니다.

[예화2] 요즘 학교 교육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기사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한 일간지 사회면에 "가르칠 학생이 없는 학교와 교실이 없는 학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일보 3월 9일자)

잘못된 학교 배정 때문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신입생 258명중 227명이 전학을 가는 바람에 31명만이 남아 가르칠 학생이 없어서 수업을 못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수도권의 어떤 학교는 신입생이 배정되어서 입학식을 치르긴 했는데 가르칠 교실이 없어서 수업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매스컴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사실들을 보도하는 것은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학교 교육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있습니다. 무슨 교육입니까? 바로 교회교육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을 농사에 비교해서 설명한다면 우리 교회학교는 모판, 못자리에 해당합니다. 못자리는 모가 자생적으로 논에서 자랄 수 있기 전 까지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임시 장소입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바로 이 못자리에서 한 해 농사가 결판납니다.

교회학교가 바로 못자리와 같은 곳입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세상과 사회 속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바로 교회학교입니다.

학교교육에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면 교회교육에 우리 가정의 미래가 달려있고 대양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이 저녁에 제가 교회학교에 대한 설교를 하니까 목사님! 이런 설교는 교사 헌신예배나 교사대학에 가서나 하시지 뭐 이런 저녁 예배 때 하십니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떠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는 가정의 교사입니다. 가장 중요한 교사입니다.
여성 구역의 구역장, 권찰님과 남성구역의 구역장, 총무님들은 구역의 교사입니다.
남녀 선교회의 회장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남선교회, 여전도회의 교사입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우리 모두는 나중에 믿은 초신자들의 교사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미 교사입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교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위대한 교사 중 한 명이었던 바울을 살펴봄으로 우리 스스로 "교사입니까?"하는 질문에 답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교사입니까? 라는 질문은 영적 부모입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1절의 "내 아들아"라는 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고 인도하였던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습니까? 바울이 디모데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 본문을 바울이 디모데를 자식처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영적으로 낳은 영적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는 영적으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아버지요, 디모데는 바울에게 영적 아들인 것입니다.

제가 쌍둥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이 열이 38.5도를 넘어 39도가 다 되어 가는데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이들이 아픈 것을 보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심정이 다 같을 줄 압니다.

[예화-로렌조 오일] 오래 전 상영된 영화 가운데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텔레비젼에서도 수차례 방송을 해서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입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렌조라는 어린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로렌조가 이상한 행동을 해서 여러 병원을 다니며 수차례 검사를 한 결과 부신백질 이영양증 이라는 병에 결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병명이 좀 어렵지요? 부신백질 이영양증! 영어 약자로 ALD라고 합니다. 이 병은 아직 치료법이 발견되지 못한 불치병이라고 합니다. 10만 명 중 1명이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병입니다.

첫 증상이 나타난 지 6개월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고 2년 내 식물인간이 된 후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문제는 이 병이 유전적인 병으로 그 원인이 로렌조의 부모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올리브 기름에서 병을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하고 치료에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완치는 안되고 그저 병의 진행을 멈추는 정도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로렌조는 병이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올해로 24번째 생일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다시 한번 더 읽으면서 부모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육신의 부모가 되기가 어렵겠니까? 아니면 영적인 부모가 되기가 어렵겠습니까?
사람 나름이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든지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많은 것을 우리가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희귀병이 걸린다면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할까요?
모두다 로렌조의 부모처럼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병을 고칠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영적이 자녀들이 영적 불치병이나 영적 희귀병에 걸려 영적인 고통과 고난의 상태에 있다고 한다면 교사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화-살신성인의 교사] 우리는 지난 주일 서울 시내 모 교회에서 예배 도중 천장이 무너져 내린 사고를 메스컴을 통해 다 보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 였지만 한 교사의 미담이 있어서 교사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시던 이원형 선생님이 그분입니다. 기도하던 도중에 천장이 무너져 내리자 그것이 기도하던 아이들 위로 덮치려 하자 그것을 손으로 막고 아이들을 대피키며 서 있다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결국 잔해와 함께 1층 바닥으로 떨어져 소천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이 없다고 하는 이 시대에 위대한 믿음은 스승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지만 저는 얼마나 도전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도 저런 스승이 되어야겠다고 결심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을 자식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식보다 더 귀한 영적 자녀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양교회 성도 여러분, "교사입니까?" 여러분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영적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 부모로서의 교사가 되십시오.
영적 부모로서의 구역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 부모로서의 기관장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영적 부모로서의 초신자들 앞에 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 부모가 되십시오.

둘째, 교사입니까? 하는 질문은 은혜를 체험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계속되는 1절의 말씀 속에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앞으로 너 또한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것인데 그 가르치는 일을 잘 행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된다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분명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은혜속에서 강하라
은혜 속에 거할 때 강해집니다. 은혜를 체험해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은혜생활입니다. 신앙생활 속에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받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방법! 이것은 단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이고, 신약성경에서는 예배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백성들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생활은 곧 예배 생활입니다. 예배 생활 제대로 안 하면서 "은혜 받았다" 이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지난 주일 낮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시면서 예배 생활이 신앙의 뿌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배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배가 중요한데 어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예화]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벨의 예배와 가인의 예배가 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인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기는커녕, 예배 드리다가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가대원, 기도자, 헌금위원, 안내위원, 주차봉사위원 모두가 예배를 통해 은혜 받도록 예배를 돕는 중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잘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예배를 통해서 받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는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교사입니까? 하는 질문을 두 번째 대지로 바꾸어서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가 있습니까?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체험이 있으십니까?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무엇보다도 교사는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간절히 바라기는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 우리들이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보혈의 은혜로 거듭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줄 아십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거듭났습니다. 전에는 예수를 핍박하던 일을 했지만, 이제는 예수를 전하는 일을 합니다. 전에는 무엇가 대가를 위해 일했지만 이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합니다. 오히려 자기 돈과 시간과 인생을 드려서 일을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바울 자신을 부인하게 만들었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 것입니다.

0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0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0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權)이 없겠느냐 --중략--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이 다른 모든 전도자들처럼 모든 권리를 사용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포기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대양의 모든 성도님들이 대양 제단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 은혜 속에 강한 그리스도인, 자기 부인과 자기 포기의 신앙인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교사입니까? 하는 질문은 비전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가르침에 있어서 네 개의 세대, 4세대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먼저 바울 자신이 가르침의 1세대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디모데가 2세대입니다. 2절의 디모데가 가르친 충성된 사람들이 3세대입니다. 마지막이 이 충성된 사람들이 가르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4세대 사람들입니다.

바울로부터 시작해서 디모데, 디모데의 가르침을 받은 충성된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또 다른 사람들입니다. 바울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충성된 사람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로 부흥하며 팽장하고 있습니다. 영적 재생산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울로부터 시작한 이 영적 재생산의 라인을 거쳐서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증거 되고 전달 된 것입니다.

만약 이 영적 재생산의 라인이 끊어진다면 복음도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달 선한 목자의 교사기고란에서 한 선생님의 고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내가 가르친 이 아이야 후에 자라나서 분명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전도자가 될거야!
내가 양육한 구역식구가 후에 자라나서 하나님의 교회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될거야!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후에 대양교회와 한국 교회를 이끌어 갈 믿음의 사람들이 나올거야!! 이것이 교사의 비전입니다.

계속적인 영적 재생산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오늘도 콩나물 시루 같은 아이들과 구역식구들에게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사랑으로 복음의 물을 주는 교사, 이들이 바로 비전의 교사들입니다. 꿈이 있는 교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비전이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비전을 꿈꾸는 교사가 더 큰 비전을 가진 아이들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비전이 있는 교사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먼저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교사 열정이 주일학교를 살린다.", "구역장의 열정이 구역을 살린다."
열정 하나만 있어도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구역은 변화됩니다.

이런 열정의 교사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영적 부모입니까?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로 거듭나셨습니까?
비전이 있습니까?

이 저녁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교사입니까?"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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