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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시는 하나님 / 합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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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시는 하나님
▧ 본문 말씀 / 합 1:5-11

(합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합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합1: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합1:8)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합1: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합1:10)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합1:11)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 말씀 강해
정확하게 언제쯤인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쯤인 것 같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진역 근처에 육교가 하나 있는데, 그 육교 아래를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육교 난간의 간판에 크게 써 놓은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정직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듭시다”라는 일종의 공익 광고와 같은 글귀였습니다.

저는 그 광고를 보면서도 그 당시에는 그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착하게 살자, 정직하게 살자는 정도의 의미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 그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가되고, 왜 그런 글을 육교 위에 크게 써 놓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보며 지나다니도록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정직하면 잘 살수 없는 세상입니다. 제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여러분들도 대부분 마음속으로 저의 이런 생각에 동의를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직만 가지고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사회라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당연히 잘 살아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의 사람은 당연히 못살아야 합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사실이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육교 위에다가 “정직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크게 써 놓지만, 그 글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은 “정직하면 손해본다”라고 읽습니다.

몇 주 전에 T.V에서 부도난 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행적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대 기업이 부도가 나자 노동자들이 실직을 하고, 임금을 못받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하청업체들도 연쇄 부도가 나서 망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부도난 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요즘도 일년에 8-9개월씩 해외 여행을 다닙니다. 수십억씩 카드를 쓰고 다니기도 합니다. 초호화 저택에서 아직도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지 않습니까? 회사를 위해 피땀을 흘리며 일한 노동자는 실직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도를 낸 기업주는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장사를 합니다. 그런데 중국산을 국산이라고 속여 팔고 있습니다.100원에 팔면 되는 것을 속여서 200원에 팔기도 합니다. 가짜를 진짜라고 속여 팔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게는 날마다 번창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단속에 걸리지도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원산지를 표시하여 물건을 팔고, 폭리를 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고, 세금까지 꼬박꼬박 내면 머지않아 가게 문을 닫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어쩌면 꿈과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고민이 이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정직한 사람들은 항상 손해만 보게 되는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마음대로 설치는 이런 세상을 가만히 버려두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가, 이것이 하박국이 가졌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1장 1-4절에서 율법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공의가 실종되었고, 악인이 의인을 꼼짝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박국의 눈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며,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박국의 이런 질문은 하박국만이 가지는 의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고민이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잘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민입니다. 부도덕한 기업의 경영자는 호화 생활을 하지만, 노동자들은 실직과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속이는 저울과 공평하지 못한 추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은 날마다 번성한데, 정직한 기업 윤리를 가지고 사업하는 회사들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뜻하지 않는 환란과 시험이 다가옵니다. 안에서 밖에서 흔들어 정신이 없게 만듭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놀고 싶은 것 다 놀며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무얼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질문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을 향해 “ 하나님,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왜 그냥 버려 두십니까? 왜 악인이 잘살고, 정직한 사람이 못사는 사회가 되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보고만 계십니까?” 이렇게 질문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니까, 율법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공의가 변질되고, 악인이 의인을 억누르는 이런 사회가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 이렇게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그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분문을 단 한 문장으로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일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이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었던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5절입니다.

(합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을 이미 준비해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보면 깜짝 놀라게 되고, 들어도 아무도 믿지 못할 그런 일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어떤 경우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박국도 당시의 유대 사회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타락한 사회를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아무런 일도 안하신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우리도 지금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이 정직한 사람은 잘 살 수 없고, 신앙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으시고 계신다고 불평합니다.

까뮈라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사람이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소설 중에 “페스트”라는 아주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페스트의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페스트에 걸려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옆에 신부와 의사와 불신자가 어린 아이의 고통스런 죽음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결국에는 죽게되자 신부가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불신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어린 아이를 고통 속에 죽도록 버려두시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평생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하박국의 불평이 바로 이 불신자의 불평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가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박국을 위해 준비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합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합1:9-10)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좀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은 갈대아 사람들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이란 바벨론을 말합니다. 즉, 바벨론 군대가 유대를 침략하여 견고한 성을 허물고, 왕을 멸시하며, 백성들을 모래같이 포로로 잡아가는 무서운 전쟁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갈대아 즉 바벨론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 군대이며, 얼마나 잔인한 사람들인지 오늘 분문에서 아주 자세히 말씀해 줍니다. 하박국은 바벨론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창자가 흔들이고 뼈가 썩는 것 같았다고 하박국 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합1:7-8)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바벨론 군대는 표범같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이리 떼와 같이 피에 굶주린 자들입니다. 먹이를 채어가는 독수리처럼 빠른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유대를 헤집고 다니며 강포를 행할 것이고, 사람들을 사로잡아 갈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빼앗아 자기 것처럼 가지고 갈 것이며, 다른 사람이 지어 놓은 집을 자기 집이라 빼앗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바벨론 군대의 행진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대가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을 버리고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자, 하나님께서는 멀리 있는 이방 민족 바벨론을 들어서 유대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들어도 믿지 못할 일을 하겠다고 5절에서 말씀하셨는데, 그 믿지 못할 일이 바벨론 군대를 동원하여 악으로 가득 찬 유대 사회를 심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유대 사회가 얼마나 악한 사회였는지 2절에서 4절까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유대 사회에 가득 찬 악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의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공의를 덮어두고 사는 것을 보통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모든 악한 행위들을 보지 않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아무리 악을 행하여도 손해가 없고 오히려 더 잘살게 되니까 점점 악에 빠져들고 악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심판을 눈앞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그동안 형통하였던 악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표범 같은 바벨론 군대가 유대 사회를 덮쳤습니다. 저녁 이리 같은 군대가 유대 성읍 곳곳에 들어갔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유대의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려 조롱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악을 행하던 모든 방백들은 웃음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자신들을 영원히 지켜줄 것 같았던 든든한 성벽이 여리고 무너지듯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죄를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의인을 핍박하던 모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짐승처럼 끌려가 버렸습니다.

(합1: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합1:10)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시편 1편에 보면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며,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면서도 잘 살았던 사람들, 의인을 핍박하면서도 형통하였던 사람들, 공의를 덮어두고도 성공하였던 모든 사람들이, 바벨론의 군대 앞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정직하면 손해를 보는 일이 더 많은 사회입니다.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거짓말도 해야 수단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악인의 형통은 결코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잘사는 것이나, 의인을 핍박하여 성공하는 것이나, 공의를 무시하고 형통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따라 해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심판하시며, 우리들이 믿지 못할 방법으로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시대 때에 온 세상에 악이 가득 차고, 율법이 무시되고, 공의가 사라지고, 의인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도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믿지 못할 방법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악인의 성공을 탐내지 마십시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보는 손해를 아까와하지 마십시오. 공의를 행하다가 조롱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시며, 우리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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