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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낮추시고 주리게 하심의 축복 / 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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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추시고 주리게 하심의 축복 ■
신 8:1-6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날씨가 따뜻하고 좋아서 이제는 입춘과 우수도 지났으니 이제는 그 지겨웠던 눈도 그만 내리겠지 생각했는데 23일에 이어 24일까지 계속해서 내린 눈으로 말미암아 강원도에는 대설경보가 그리고 경상도와 경기도 일원에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문을 보니까 강원도 대관령에 66.5 ㎝, 산간지역에는 80cm 안팎의 적설량을 보이고 있으며, 경북지역의 지역별 적설량은 24일 오전 9시 현재 영양 수비 40㎝, 영주 죽령 25㎝, 예천 상리 16㎝, 상주 화북 15㎝, 문경 동로 8㎝ 등으로 영주 죽령, 칠곡 한티재, 영양 구주령, 예천 저수령 등 4곳의 국도와 지방도가 눈이 쌓여 교통이 통제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제에 이어 오늘까지 계속해서 내리는 눈과 같이 이 땅에는 경제 환란의 대 바람이 의약분업의 찬 기운이 여당과 야당과의 차가운 냉기류가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한파는 가정은 물론 늘찬양교회의 재정도 얼어붙게 만들어 큰 물질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잘나가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IMF를 만나게 되었고 또 우리 민족과 교회가 이 위기를 어떠한 자세로 해쳐 나갈 것인가? 에 대하여 신명기 8장 1절부터 20절까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명기 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4O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게 되는 연유들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원래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센 땅에서 지중해를 건너 블레셋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남쪽 길이 있고, 둘째는 고센 땅에서 숙곳을 지나 술 광야로 가는 중앙 통로가 있으며, 셋째는 고센 땅에서 홍해를 건너 시내광야로 가는 서쪽 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 길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서쪽 길을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길은 물도 없고 거칠고 메마른 광야 길로 하나님이 한 순간도 도와주시지 아니하면 못 가는 험난한 여행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해주신다고 말씀해놓고서는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좀더 구체적으로 이 같은 이유에 대하여 하나 하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Ⅰ. 광야 길의 목적들

신8장2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뜨겁고 건조한 땅 물이 없는 광야 모래 길을 40년 동안이나 걷게 하실 때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메마른 돌짝길에 피고 지는 작은 풀잎 하나라도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막무가내로 방치 하실 리는 절대불가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본문 8장2절 중반 절에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의 첫째가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의 첫 번째 목적은 백성들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겸손하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짜증스럽습니다.
겸손한 아내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아내는 평소에 불평이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늦은 시각에 들어오면 겸손한 아내는 그래도 남편이 집이라도 있지 않고 찾아와주니 감사합니다 하는데 교만한 아내는 내가 어쩌다 저런 남편 만나 가지고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며 살아야 하나 하며 왜! 들어와 이 원수덩어리야! 돈 있을 땐 나가서 계집질하고 돈 없으면 돌아오는 이 원수야 나가! 어디를 들어오려고 하며 대판 싸움을 벌이든지 문을 탁 걸어 잠그고는 안 열어 줍니다. 그러다 과부 되면 누구만 손해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심에 있어 언제고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꿉니다. 나의 마음이 감사로 은혜로 바뀌어질 때 그때서야 하나님은 나의 상황을 변화시키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여러분이 변하는 것입니다. 일이 아닙니다. 성격이 변해야 해요, 성격. 안 고치면 다 끝난 거예요. 우리가 집 다 세워놓고 무너뜨리거와 똑같습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예수 오래 믿으면 뭐해요? 교회 오래 나오면 뭐해요? 내가 변해야 지요. 내, 성격, 내 생각이 바꿔져야지요. 겸손해져야지요. 이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했던 안타까운 하나님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빨리 순복하고 엎드리는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방랑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모든 것을 먹여 주시고 입혀주시며 완전하게 인도를 해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으며, 반석을 쳐서 나오는 생수를 통해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또 의복과 신발이 헤어지지 아니하도록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춥지 않도록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성경 어느 한 구석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거나 감사를 한 흔적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도전 받고 깨달아야 영적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타락한 심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회개를 하지 못한 심령은 무엇에도 감사가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살지 않는 심령은 절대로 그 마음에 만족함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들의 차이는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로 만난 체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누구나 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예포입니다.

그 목적의 둘째는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시험입니까?
본문 2절에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시험하여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낮추셨던 이유를 알라는 것입니다. 만나를 왜 먹은 것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이 이유의 핵심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은 떡으로 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와 논쟁할 때에 마귀가 예수님께서 시장 하신 것을 알고 돌덩이를 명하여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고 했을 때 주님은 마귀를 향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강론하실 때 마태복음 6;25-34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일이 있으십니다.

마 6: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
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8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의 중요 골자는 공중의 새나 들에 자라고 있는 백합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저것들은 .자기들이 살아가는데 에 대하여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새는 새대로 백합화는 백합화대로 자기들의 목적만을 위하여 살고 있으면 살아가는 것은 조물주가 책임을 져 주신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바라며 얻기 위해 행동하고 계십니까?

나의 배부름과 안일과 영화로움만을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그 분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나의 영광과 꿈을 위하여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이 기본인데 우리들은 그 기본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만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노라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신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의 핵심인 것입니다.

Ⅱ.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케 하기 위하여

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 두셔서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요?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
광야라고 하는 곳은 자기의 무기력을 느끼는 곳입니다., 물이 없어요. 잠잘 데가 없어요.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밤에는 혹독한 추위가 그리고 무서운 맹수와 독사 전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광야입니다..여기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없어요. 인간의 지식이라든지, 똑똑함, 선한 생활, 강한 의지,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엄청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이것은 모두다 무능한 거예요.

박사학위 있는 들 무슨 소용이 있고, 병원 있는 들 무슨 소용 있어요? 아무짝도 쓸데없는 거예요. 그게 광야예요. 오로지 하나님만 이렇게 보고 있어야만 하루 하루를 살아요, 광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한가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일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구름기둥이 서면 같이 서고. 그거예요. 그러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세상방법으로 저와 여러분을 키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만드세요.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음식 먹으면 안돼요, 하나님의 음식 먹어야 되요. 이게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주신 것 먹을 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떡이라고 하는 말은 자기 노력으로 사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자기 방법, 자기 지혜, 자기 경험으로 사는 게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시 18:1절에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 이 시요 나의 요새 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 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 시로다."

부유해도, 가난해도 ,높은 자리에 갔어도, 낮은 자리에 갔어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세요, 한 순간도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매달리며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아요!"하며 매 순간을 묻고 매어 달리는 사람은 하나님은 가장 예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어느 때나 어느 형편에서나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이게 광야의 훈련입니다. 광야의 훈련


Ⅲ.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기 위하여

오늘 신명기에는 없지만 요한계시록 12장 6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광야는 성도를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한 곳이요, 훈련받는 곳이요, 변화 받는 곳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변화 받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는 것. 무슨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심령 적으로 변화를 받는 거예요.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님을 느끼게 해야 되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천국의 평화를 느끼게 해야 되요 늘찬양교회 누구누구 집사님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아 --- 그렇게 삶이 힘들고 폭풍이 몰아치고 바람이 불고 수난이 있고 고난이 있고 역경이 있는데도 그 집사님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웃음이 떠나지를 않아 아마 하늘의 평화가 저 사람에게는 있는가봐! ......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저 사람이 저런 형편에서 어떻게 저런 얼굴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속에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평화,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찬양을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풍요로움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로 우리를 만들고자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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