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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매일 기쁘게 /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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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기쁘게
본문 성경 : 빌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우리가 이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갈 때, 슬프고 괴로우며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것이 전부 기쁨으로 바뀌어져서 매일 매일 기쁘고 평안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왜 기쁨이 없을까요? 왜 평안이 없을까요? 그것은,

1)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집은 기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즐겁게 웃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병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해방을 이태 앞두고 저희 집에 큰 병이 들어와서 아버님과 저와 제 동생이 열병을 앓았습니다. 결국 아버님은 열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후 저와 동생은 회복되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저희 가정은 항상 먹구름이 낀 슬픈 가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혼자서 많은 자녀를 키우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남을 험담하고 못살게 하며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항상 기쁘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주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주님 밖에서 사는 삶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슬픈 일이고 괴로운 일이며 답답한 일입니다. 가난에서 해방되어 부하게 산다고 해서 기쁨이 오지 않고, 병들었던 사람이 건강해졌다고 해서 일생동안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니며,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고 해서 영원히 기쁜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 있을 때에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 밖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만족이나 행복만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는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주로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문명의 과도한 중압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호서대학교 총장인 정근모 박사는 병으로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께서 병에서 건져주셔서 주님 안으로 돌아오게 했으며, 자녀문제로 어려움이 있을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써 큰 기쁨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 분의 간증을 들으면 듣는 이에게 소망과 기쁨을 주고 삶의 방향을 다시금 찾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 진정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의하면 성전밖에 앉은뱅이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 거지는 성전 안에 들어가서 찬송을 부르거나 설교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앉은뱅이 거지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도록 사람들은 그를 성전 밖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 거지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항상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구시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이 거지를 만났습니다. 거지는 돈을 달라고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우리를 보라"하고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거지가 그들을 바로 보자,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하고 거지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전밖에 있던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습니다.

거지는 집으로 가거나 취직하러 가지 않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거지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성전 밖에서 남에게 부담을 주면서 구걸하던 거지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행 3:9~10)

이처럼 성전 밖에 있던 사람과 성전 안에 있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1) 주 안에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백부장의 하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가던 중 백부장은 그의 벗들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6~7)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눅 7:9)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니 벌써 병들었던 하인이 건강해졌습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2) 주 안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예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물론 오늘 등록한 분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교회에 온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온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살던 사람이 다른 것으로 살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결코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까지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갔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바다에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밖으로 나가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으나 사나 주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는 삶이 구원의 삶이요 영생의 삶입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 가오리이까"(요 6:68)



둘째, 모든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관용이란 무엇입니까? 관용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용을 베풀 때 기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정죄하는 사람은 기쁨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사람은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셋째,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염려가 가득 차 있으면 거기에 기쁨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6장 25~3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을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넷째, 기도와 간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병이 듭니다. 믿음이 병이 들면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으며 감사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면, 믿음이 꽉 자리를 잡게 되어서, 근심이 왔다가도 나가 버리고 마귀가 왔다가도 도망갑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던 것이 전부 나가게 됩니다.



다섯째,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부흥회 때 여러분에게 은혜가 들어가서, 신앙이 절정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큰아들 문제도 맡기고, 질병도 맡기고, 가난도 맡기고, 빚진 것도 전부 맡깁니다. 그러나 부흥회가 끝나면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해서 약 3개월만 지나면 믿음도 없어지고 감사도 사라지게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매일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기쁨이 영원토록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감(感)자는 다할 함(咸)에 마음 심(心)을 붙인 것이고 사(謝)자는 말씀 언(言)변에 몸 신(身)과 마디 촌(寸)을 붙인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란 마음을 다하고 말을 다하며 몸을 다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거지가 성전 밖에서 구걸할 때에는 만족이 없었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전 안에 들어오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안의 생활은 감사하는 생활 다시 말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47년간 목회하면서 한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목회입니다. 종종 사람들이 "감독님! 어떻게 그처럼 목회를 하셨습니까?"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목회한 것은 없어요. 전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제가 무식하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유식하게 만들어주고 제가 무능하니까 저를 능력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내려주신다고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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