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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복 / 시 7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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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복
(시편 73:27-28)


성도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까이했다가 멀어지는 사람도 있고, 아예 가까이하길 꺼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믿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거리감이 있다면 그건 문제 있는 부부입니다. 예의는 지켜야 하지만 거리는 두면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태도의 문제지 하나님이 멀리 계셔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은 멀리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가까이해야만 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런 신앙적 문제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멀리하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을 대비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하게 되고 가까이하면 복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왕에 신앙 생활하는데 복 받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듣다가 멀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젠 주님과의 거리를 단축하고 복까지 받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오늘 본문은 단 두 절입니다. 앞에 절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에 대한 기록이고, 뒤에 절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먼저 (27절)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어떤 면에서 결론부터 말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亡)하고 멸(滅)한다고 합니다.

좀 섬뜩하지만 결론부터 내린 이후에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멀리하는 행위가 낳을 결과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죄악은 항상 멀리 떨어진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여도 멀어진 마음은 그 실제적인 거리와 무관하게 죄를 낳습니다. 요셉이 형들이 세겜에서 양들을 칠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그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찾아 헤매다 세겜이 아닌 도단에서 형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요셉이 멀리 오는 것을 보고 형들은 그를 죽이기로 모의합니다.

(창37: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여기서 “가까이 오기 전에”라는 말과 “멀리서 보고”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가까이 이르면 그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항상 죄악은 멀리 있을 때 모의되고 성공합니다. 하나님과 멀면 이미 죄악이 여러분 가슴 속을 후벼 파고 지나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그것은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 끌려갈 때 멀리서 따라갔습니다. (눅22:54)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 이 때만 해도 베드로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궁금하긴 하고 가까이 가면 죽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한 계집종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누군데 이런 잘못된 고백이 나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 가까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멀리 떨어진 베드로는 이미 영력을 잃은 한 죄악 된 인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 이상 제자도 성도도 아닙니다. 아직 이름은 사도인데, 아직 이름은 성도인데, 그는 지금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자로 나타납니다. 이 모습이 당신의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멀리하면 그렇게 됩니다.

누가 멀리합니까?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라고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음녀는 돈으로 팔려 다니는 여인입니다. 음녀에게는 정조란 없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남자를 다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은 사람이 되면 그가 바로 음녀입니다. 세상을 좋아하다 보면 나도 무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멀어지게 됩니다. 동창회, 계모임, 결혼식에 가려다 보면 주일 예배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따라 전도하며 같이 사역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음을 서운해 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람을 떠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교회와 멀어집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 마음에는 교회가 안중에도 없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그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입니다. 음녀입니다.

다 알 듯이 음녀의 행동의 원인은 사랑이 아니라 오직 돈입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목적이 정상인과는 다릅니다. 혹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신앙생활의 목적이 하나님의 것과 다르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게 신앙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그 무엇을 구하는 것이라면 변질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혹 여러분 중 한 사람이라도 신앙의 목적이 변질되었다면, 변질된 신앙의 목적을 이 시간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음녀는 실은 그의 상대 남자를 섬기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녀는 돈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축복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영적 음녀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 우리의 생애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생명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에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복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이 말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말인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라는 말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아주 작은 강아지도 주인과 함께라면 지나가는 불덕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인이 곁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강아지에게는 주인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입니다. 혹 불덕이 물려고 들면 주인이 물리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두려울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축복을 그 주변 사람들에게 안겨다 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창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은 곧 요셉이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하여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합니다. 복을 받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을까요?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깨끗한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도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라도 똥을 묻히고 돌아다닌다면 사뿐히 안아보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내가 가까이하려고 한다고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 받길 원하십니까?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주님과 가까이하기만 하면 됩니다. 친구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정결하여 늘 축복으로 점철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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