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뽑힌 자와 버린 자 / 행 1:12~26

  • 잡초 잡초
  • 279
  • 0

첨부 1



뽑힌 자와 버린 자 (본문 성경 : 행 1:12~26)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 1:12)

예수님은 어부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고기 잡는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던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그리고 나서 그물을 내린 결과 엄청난 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배까지 동원해서 그물을 끌어올렸습니다.

주님은 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고락을 나누지 못하고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보다 돈에 더 큰 비중을 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유대관원과 제사장에게 팔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면서 충성을 다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부름을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선택함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버림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마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주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를 이탈했을 때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교인은 교인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철야기도를 하러 가시면서 열 두 제자 중에서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 제자는 예수께서 밤새 기도하는 동안 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

이처럼 제자들이 졸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탈자나 탈락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동산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

그런데 마귀가 여자에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2~3)

그러자 마귀는 여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여자가 나무를 보자 먹음직도 하도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 말씀대로 되었습니까? 아니면 마귀의 말대로 되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눈은 밝아졌지만 하나님처럼 되지 않고 불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때부터 범죄가 시작되었습니다. 니므롯은 당대의 영웅이었지만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누리려고 했기 때문에 바벨탑이 무너지고 언어가 혼잡케 되는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않을 때 엄청난 비극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보초를 세우는데 거기에는 동초와 입초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초는 반드시 부동자세로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만 합니다. 만약 입초가 자기의 자리를 이탈하면 직무를 감당치 않은 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도 반드시 지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만약 이 신앙의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서 목사답게 살아야 하고 교인은 교인의 자리에서 교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과욕 때문입니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버림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 1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욕심 때문에 생기는 비극은 참으로 엄청납니다.

가룟 유다와 아간은 이러한 욕심 때문에 비극적인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는 은 30냥만 가지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아간은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거기서 절대로 전리품을 갖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몰래 물건을 갖고 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유익하게 하려는 욕심은 전부 비극을 낳게 합니다.

사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면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그 가족이 돈에 욕심을 부려서 슬프고 비극적인 일을 초래하게 합니까? 이러한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셋째, 자기를 분명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솝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가  자신을 모른 채, 배만 부르게 하면 황소처럼 될 줄 알고 계속 배를 부르게 했습니다. 결국 그 개구리는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현실을 망각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면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나라처럼 왕권통치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원했기 때문에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선택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국권을 지켜나갈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범해서 위기에 놓여있을 때 소년 다윗이 적장 앞에 나가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왜냐하면 다윗은 칼이나 창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장군에게 달려가면서 물매로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이 골리앗 장군의 이마에 적중되었습니다. 골리앗 장군이 쓰러지자 그를 믿었던 블레셋 군대는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신하가 된 다윗은 전쟁을 할 때마다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29:5)하는 소리를 들은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 이튿날 악신이 사울에게 임하면서 사울은 야료(惹鬧)하게 되었습니다.(삼상 18:10) 여기서 말하는 야료란 시장바닥에서처럼 시끄럽게 떠든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 홍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뒤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떠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1~12)

그때 모세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그러므로 떠드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지만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곳에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하여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떠들던 사람들은 전부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8~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8~12)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시면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권세가 커지게 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자기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우리아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이 일을 아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나단은 우회적으로 다윗을 꾸짖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이 통치하는 나라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부자의 집에 손님이 오자, 부자는 가난한 자가 갖고 있는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다윗은 노발대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때 나단은 "왕이시여, 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당장 나단을 잡아서 사형에 처하라"하고 말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였노라"(삼하 12:13)하고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다윗은 침상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처럼 버림받지 않은 것은 그가 침상을 적시면서 회개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은 택함을 받은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틀림없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택함을 받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가룟 유다가  차라리 나지 않은 것이 더 좋을 뻔 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부름을 받아 버림을 받지 않고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얼마나 큰 기쁨이며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왕으로 부름 받은 다윗이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회개하고 참회함으로써 버림받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하고 고백하면서 산 것처럼 여러분도 욕심을 모두 끊어버리고 택함을 받아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