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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교리로 무장한 주님의 교회 / 딤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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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리로 무장한 교회
딤전 1:3-11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오늘 나는 왜 여기로 보내졌는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여기에 남겨졌는가? 나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1.배경: 
1)목회서신
이 책은 디모데 후서,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으로 불려진다.
이 책은 바울의 생애 종말에 써진 것이다. 그 자신이 하던 임무를 후계자들에게 넘겨주려 하는 시점에서 주님의 일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뜻으로 써진 것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그의 후계 동역자들이 그 주어진 임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를 가르쳤다.

2)교회의 운영과 실행을 강조하는 책
그러나 이 책은 꼭 교회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직임자들 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함께 주님의 교회를 염려하고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거기에는 교회 안에서의 질서와 순결한 교회를 갈망하는 사도의 모습이 너무나 짙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딤전3:15)

이 책은 주님의 교회에서 어떤 몸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이 책은 교리적인 문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교리의 내용을 그렇게 많이 다루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교리를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행위로 입증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고자 할 때, 이 책을 탐구하는 일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3)목회자와 성도들 곧 교회에게 교훈을 주는 책
개인적으로, 젊은 목회자인 나로서는 자주 이 책을 읽어보게 된다. 왜냐하면 때때로 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디모데와 같다고 생각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도 안되어서 디모데 후서까지 읽을 수가 있다. 읽고 또 읽는 이유는 주님께서 나와 같은 젊은 목회자에게 충고하는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오늘 이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얼마나 그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고 계신가를 우리 모두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이다.

2.왜 오늘 읽은 본문의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인가?
주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


1)디모데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서 디모데가 해야만 하는 일을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다.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며 꾸며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1:3b-4a)

왜 이 명령이 주어졌는가? 사실 에베소서를 보낼 때만해도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신실하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엡1:1).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에베소 교회는 이상한 선생들이 들어와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꾸며낸 이야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끝없는 족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족보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그 당시로 돌아가기까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떤 분들의 의견에 의하면 자기가 어떤 혈통이냐를 추정해서 성경의 어떤 인물과 연결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는가로 보고 있다. 어쨌든 바울은 꾸며낸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을 염려했다. 다른 교리들을 가르치는 자들을 염려했다. 왜 그것을 염려했는가?

역사적으로 교리는 중요한 문제 거리가 되어 왔다.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 때문에 파당을 만들고 서로 대립해왔다.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면 "교리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도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교리이다. 건전한 교리는 건강한 성도를 만든다. 건전한 교리는 아주 상태가 좋은 신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네가 도달한 믿음의 말씀들과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리라"(딤전4:6)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는 선한 교리의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한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 사역을 한다 하더라도 바르지 않은 교리를 취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로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바른 교리를 취하지 않는 사역자는 주님의 교회를 부패시킬 것이며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바른 교리를 따르지 않는 교회는 건강할 수 없으며 최상의 상태를 이룰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자들의 모임인데, 여기에 다른 교리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 교회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들 자신만을 위한다든지, 아니면 허망한 것들을 위해 일하는 모임이 되고 말 것이다.

쉽게 말해 교리란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어라 말씀하시느냐?"를 정리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일을 한다 하여도 교리를 모른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지 찍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때로 주님을 기쁘게 하기 보다 주님을 대적하는 일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힘있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마다 반드시 교리적으로 그 자신이 바른 것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리를 모르고서는 결코 주님을 위한 일을 잘 감당할 수가 없다.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님을 위한 일보다 단순히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일로 끝날 수가 있다.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2)

하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열심은 무모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한다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이해하거나 바르게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모한 열심(熱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또한 혼에 지식이 없으면 선하지 못하며 발이 급한 사람은 죄를 짓느니라"(잠19:2)

지식이 없다면 발이 아무리 급해도 소용없다. 지식이 없는 혼은 선하지 않으며 급하기만 한 것은 죄를 지을 뿐이다. 무엇을 서둘러 행하기 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빨리 달려가기 전에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정확한 지식이 없을 때는 차라리 발을 옮기지 않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자기 길을 굽게 하고서 나중에 주를 향하여 안달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잠19:3).

오늘 우리가 함께 본 하나님의 말씀은 두 종류의 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는 건전한 교리이다(딤전1:10). 여기서 "건전하다"라는 말은 "아주 상태가 좋은"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그것은  "건강하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건전한 교리는 그것을 취한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건강하게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거기에는 "참되다"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결국 건전한 교리란, 진실된 교리, 혹은 참된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건전한 교리를 거스리는 것"이다. "거스린다"는 말은 "대항한다. 반대한다. 정반대"라는 말의 의미가 있다. 음식으로 따진다면 싱싱한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한 것을 주는 것이다. 순수한 상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누룩이 낀 것을 주는 것과 같다. 건전한 교리를 거스리는 것이 바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3절).

"교리"란 "주님께서 바울에게 맡긴 복음에 근거한 것이다." "교리"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다(딤전1:11). 그 복음에 근거하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은 다른 교리이다. 복음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다른 교리이다. 복음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경험에 따라 말하는 것은 다른 교리이다. 복음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기 직관을 신뢰해서 말하는 것은 다른 교리이다. 천성적으로 통찰력이 있고 직관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은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2)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은 무엇인가?

"그렇게 행하라"(4절)
행하라는 것은 명령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렇게 하도록 명령을 주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이 명령은 다름아니라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누군가 "건전한 교리를 거스리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야만 했다. 그는 거기에 놀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휴양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자기 개인의 어떤 목적과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거기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구경하기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교회에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위해서였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책임감 있는 직임자로서 그 교회를 바로 잡아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미 그 훌륭했던 에베소 교회는 조금씩 올바르지 않은 것들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틈만 있으면 치고 들어오는 것이 마귀다. 마치 그것은 뱀이 조그만 틈을 이용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디모데는 그 곳에서 마귀에 의해 사용중인 어떤 사역자들이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디모데는 거기서 사랑을 실천해야만 했다. 그가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이 명령의 목적은" 이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그것은 이 명령을 실행하고 끝에서 만나게 될 결말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위해 주어진 명령이었다.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참된 사랑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참된 사랑은 선한 양심에서 나온다. 참된 사랑은 참된 믿음에서 나온다. 이 사랑을 위해서 이 명령이 실행되어야만 했다. 이 명령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어진 명령이었다. 이 명령은 주님의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다.

3)디모데가 제재해야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다른 교리를 가르쳤다. 어떤 사람들은 건전한 교리에 관심 갖기보다 엉뚱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세워주기 보다 도리어 논쟁을 일으키는 일을 했다. 교회 안에서의 논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리적인 입장이 갈라진다는 소리이다. 교회 안에서의 논쟁이 있다는 것은 가르침에 통일성이 없다는 뜻이다. 질문(questions)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논쟁이라는 의미로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헛된 말다툼에 빠져 자기들의 옳음을 주장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다툼에 빠져"(딤전1:5)

오래 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불렀을 때에만 해도 거기에는 이미 많은 장로들이 있었다(행20:17-20). 그들은 바울의 체류기간 동안 바울에게 배우면서 에베소 교회를 감독(overseers-직분의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모습)하고 가르치는 일을 명령받았다. 바울이 그 곳을 떠나 올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는 내가 알거니와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임이요, 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임이라. 그러므로 깨어 있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행20:29-31).

그리고 바울의 그 예견한 대로 에베소 교회는 현재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들어와 있었다. 참된 교리를 거슬리는 자들이 있었다. 꾸며낸 이야기를 가르치는 자들이 생겨났다.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세워주기보다는 오히려 논쟁을 일으키는 어떤 사람들이 생겨났다. 헛된 말다툼에 빠져 율법선생이 되려하는 자들이 일어났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이 된다(딤전1:8). 사실 율법은 잘 하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잘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때때로 성도들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 잘못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 정확히 가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
법 없는 경기를 상상해 보라. 난장판이 될 것이다. 법 없는 이 땅을 생각해 보라. 주먹 센 사람이 한가닥 하게 될 것이다. 법 없는 교회를 생각해 보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될 것이다. 법 없는 도로를 생각해 보라. 하루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을 것이며 폐차되는 자동차만 늘어나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며 넘어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이라면 법은 필요한 것이다. 건전한 교리를 거스리기 때문에 이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곧 복음을 위해서 이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의 헌법 내지 규약, 약속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선생들의 유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에베소 교회는 계시록 2장에서 니골라 당의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계2:6). 물론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으며 인정하지 않았다. 니골라 당의 행위란 어떤 법칙이나 원리, 꾸며낸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떤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묶어 두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빌미로 해서 스스로를 너무 높이고 신성시 하며 아무데도 매이지 않으려 하면서 성도들은 엉뚱한 것에 매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이 법이라는 것을 그런 형태로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 한 예가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딤전4:3)는 교리였다. 바울은 이것이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딤전4:3)라고 지적했다. 성직자들이 혼인을 금하므로서 그들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려고 했다. 그것이 니골라 당의 행위이며 다른 교리이다.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삼아 가르치는 것(마15:9)은 결국 쓸모없는 헛된 경배를 낳게 된다.

4)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에베소 교회를 다른 교리, 참된 교리를 거스리는 것으로부터 구해내라는 특별한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교회 안에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논쟁을 막고 건전한 교리를 따라 가는 교회가 되도록 목양하라고 보낸 것이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힘쓰라는 것이었다.
행여 그렇지 않는 자들이 여전히 있다면 떠나라는 것이 바울의 말이었다.

"만일 누가 다른 식으로 가르치고 온전한 말씀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동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논쟁과 말다툼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서 시기와 다툼과 욕설과 악한 추측이 생기며 또한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가 없어 이득을 경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딤전6:3-5)


3.그러면 이 본문의 내용은 오늘 우리 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인가?

디모데와 같이 여러분들을 이 교회에 남겨두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그것은 이 주님의 교회를 바른 교리로 지켜가라는 것이다. 이 교회에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건전한 교리를 거스리는 행위들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에 조그만 틈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약속한 그 교리의 틀을 넘어서 엉뚱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며, 그것이 바로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교회를 향한 사랑이다.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성도들을 향한 사랑인 것이다.

두 번째로 교리를 배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도 그 일들을 하기 전에 그 일들이 주님이 말씀한 바와 일치하는 지를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열심을 나타내기 전에 그 일이 교리적으로 바른가를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한 일군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성경을 통해 말해지는 주님의 뜻, 곧 교리에 정확해야만 한다.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들 가운데 거하라. 이는 네가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임이라"(딤전4:16)

세 번째로 외적으로 영혼구원에 관심을 갖는다면 내적으로 바른 교리로 확고히 해야 한다.
많은 들소들을 모아 넣고 싶으면 외양간부터 튼튼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들소들을 모아 놓는다해도 외양간이 허술하다면 얼마 못가서 허물어질 것이며 들소들은 다 도망가고 말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소용이 없다. 복음 전하는 일을 하려면 할수록 내적으로 바른 교리를 갖도록 힘써야 한다.
어떤 면에서 아무리 전도해도 사람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아무리 벽돌들을 구하러 다닌다 하더라도 뼈대와 같은 건물의 틀을 잡기 전에는 그 벽돌 한 장도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뼈대 공사없이 벽돌만 잔뜩 모아지는 것이다. 바른 교리없이 많은 사람이 교회에 몰려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는 일에 힘쓰려 한다면 또한 내적으로 바른 교리를 통해 단단한 기초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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