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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요구 / 창 1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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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나님의 요구
                  창세기 12장 1-20절

( 서 론 )
  오늘부터 25장까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노아가 타락한 세상 속에서 택함을 받은 것, 아브라함이 셈족 중에서 택함을 받은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들은 그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도 제자들이 어떤 행동을 보고 택하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제자들은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택하심이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 속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이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사도 바울도 (갈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 고 하였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아브라함이 어떤 가운데서 택하심을 받았습니까 ?
  아비 데라가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서 살고 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먼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나를 따르라"는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까 ?
  하나님의 택하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순종과 인내와 시련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 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어 가시고
  우리를 축복된 자로 만들어 가신 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첫 번째 : 순종과 언약입니다.

(창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

  택함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먼저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자가 철저히 먼저 해야 할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있을 때 하나님과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이 어떻게 언약이 이루어지겠습니까 ?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 평생에 다섯 번 언약을 하셨는데 그
  언약의 공통점은 자손과 땅과 복입니다.
  자손은 땅의 티끌과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땅은 네 자손에게 이 땅 가나안을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복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약속하셨습니다.
  (창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에 대해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2.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즉 "떠나라"는 것과 "가라"는 것입니다.
  떠나라는 것은 지금 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는 "너 자신을 위하여 떠나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떠나고" "가는" 순종이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다섯 가지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
  2.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3.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4. 너를 지켜주리라.
  5.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케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50장 가운데서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은 무려 14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많은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로마서 4장 전체와 갈라디아서 3장 전체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12구절이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종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삼상15:22)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정든 고향과 정든 형제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 곳에는 아브라함의 재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가나안 땅을 하나님 말씀만 그대로 믿고 간다는
  것은 순종 속에 나타난 믿음의 결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나간 곳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히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떠나라고 했습니까 ?
  그 곳은 우상을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왜 형제 친척을 떠나라는 것입니까 ?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
  우리도 떠나는 순종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떠나야 합니까 ?
  세상 속에서 떠나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 거한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못된 짓들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에 거하며 살지만 세상을 떠나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세상을 떠나서 살아
  가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그런 자는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입니까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갔던 것처럼 우리 또한
  약속의 가나안 땅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4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 믿음으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전세계 145개 국가에 8천2백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의 가정과 생활을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은 역사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 비하면 우리는 더욱 복을 받은 자들 아닙니까 ?
  75세에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보다는 우리는 젊습니다.
  일찍 깨닫게 하여 주시고 부르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하실 일이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이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는 약속의 말씀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 인내와 예배입니다.

(창12:5-9)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신앙은 인내와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무작정 떠났습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무작정 떠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그 땅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함 자손인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곳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
  "하나님 어떻게 이런 곳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라는 것입니까 ?" 하고
  따졌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
  가나안 땅을 돌아서서 나와 세겜 땅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확인을 시켜주는데 바로 이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세겜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두 번 나오는데 이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겠다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가까운 장래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고 그 마음에 의문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
  그러나 그 흔들거리는 마음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의 각오를 가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의
  헌신을 하나님께 약속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거리는 약480Km 되는 먼 거리입니다.
  약1200리 되는 길을 찾아왔는데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벧엘 동편 산에다가 장막을 친 아브라함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는 유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천국은 이미 약속된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가는 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듯이 
  우리 또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이러한 인내를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이루어 갔습니까 ?
  바로 예배를 통해서 인내를 배워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
  예배는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약속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흔들거릴 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신을 얻고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고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에 소망이 넘쳐야 하고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점점 남방으로 옮기면서 유리하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 땅에서 나그네 같은 인생살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그네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진 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약속된 메시야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드린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도 밧모섬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러한 요한에게 하나님은 어느 주의 날에 하늘 문이 열리는 영광을 보게 하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예배를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때가 차기까지 나사렛에서 30살 될 때까지 인내하면 기다리셨
  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할 것이라고
  (딤후3:4)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조급한지 모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느긋한 마음을 가지며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10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될 것인데
  왜 아브라함이 이렇게 참지 못하고 경솔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요 ?
  예배를 소중하게 여겼던 아브라함이 이 곳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겪고 난 후 13장에 가서 다시 아브라함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모르고 자신의 방법과
  수단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
  예배를 통해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시며 6시간 동안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나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갖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자신의 뜻을 포기했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지만 예배를 소홀히 할 때 인간의 방법과 수단이 앞서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 더욱 인내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그 인내로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 시련과 동행입니다.

(창12:10-2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신앙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갔지만 그만 그 땅에 기근이
  있자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진 것을 봅니다.
  그리고 참으로 아브라함 인생에 부끄럽고 비겁한 모습을 남기고 마는데 이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시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 저기 유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러한 시련 속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이 함께 하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실족하고 말았습니까 ?
  그 땅에 기근 때문이었습니다.
  10절 끝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기발한 인간의 생각으로 애굽에서 살고자 한 것입니다.
  그 방법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애굽에서 살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사래는 애굽의 바로 왕의 마음에 들어서 바로의 궁에 들어갔고 아브라함은
  그 일로 인해 바로에게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
  여자의 후손이 다시 한번 끝나게 되려는 순간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아브라함의 약한 믿음을 다시 일으켜 새워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택한 자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때로는 시련이 찾아오고 우리가 그 시련을 이겨 나가기를
  하나님을 원하고 계십니다.         
  9절에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갔다는 그 지역은 네게브라는 지역인데
  사막의 황무지 같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미 시련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신앙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은 기근이었습니다.
  이 때도 아브라함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예배를
  드렸다면 기근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회개하고
  창13:1-4절에 보면 다시 남방으로 즉 황량한 사막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5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음식과 물 그리고 의복하고 주택과 생명과 건강입니다.   
  기근은 이 모든 것이 위협받는 환경입니다.
  우리도 이런 5가지가 위협받을 때 아브라함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실을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5가지 중에 하나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자신의 방법과 수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이러한 극심한 기근이 찾아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버리시지 아니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사43:1-2)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
    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요10:28)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어떤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말고
  예배를 소중하게 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비싼 고가구의 재료는 주로 느티나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나무의 특징과 장점으로는 단단한 강도와 아름다운무늬라고 합니다.  - 9 -
  특히 아름다운 자연무늬로 된 가구는 비싼 가격에 매매되는데 같은 재료라도
  느티나무의 무늬가 없는 것은 몇 달이 지나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느티나무의 가치가 곧 무늬에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외형상 보기에 아주 잘 빠진 나무들 중에는 아무 고통 없이 커서 무늬가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바람과 태풍으로 상처투성이인 나무를 지켜보면 가지가 있던 곳에
  태풍으로 부러진 부분마다 상상도 못 할만큼 아름다운 무늬가 수 놓여진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위해 조금도 고난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 인생을 가꿔온 사람을 가구의 주인인 예수께서 좋아하실리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가온 시련과 핍박과 희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싸워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에서 고난을 빼어버린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냇물에서 돌을 치워 버리면 시냇물은 곧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시련이 계속된 인생이었습니다.
  그 시련 속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자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시련은 믿음의 조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련은 꼭 슬프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결코 슬프지
  만은 않습니다. 
  (요16: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브라함의 큰 실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큰 기근만을 바라
  보았기 때문에 실족하고 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고 다윗은 고백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사자굴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은 우리하고도 함께 하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불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심을 믿고 힘찬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결 론 )
  튤립으로 유명한 네델란들에는 "세 쌍둥이 튤립 뿌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답니다.
  튤립의 세 뿌리의 이름은 "아니"와 "혹시" 그리고 "순종"이었는데 세 뿌리는 함께
  상자 바닥에 살았습니다.
  가을이 왔을 때 셋은 각자 자기들의 운명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먼저 "아니" 뿌리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이처럼 편안 곳은 없을 거야 다른 곳에 가면 죽을 지도
  몰라. 나는 여기에서 평생토록 살 거야"
 
  이번에는 "혹시"라는 뿌리가 말했습니다.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몰라. 그 곳에서 혹시 나의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몰라 그렇지만 난 두려워"

  마지막으로 "순종" 뿌리가 말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리는 창조하신 분의 능력에 맡기면
  그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신다는 걸 날 믿어" 하였습니다.

  어느 날 커다란 손이 튤립 뿌리 상자 안으로 내려 왔습니다.
  "순종"은 그 큰 손안에 얼른 안겼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 속에 묻혔습니다.
  "아니"와 "혹시"는 상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런데 흙 속에 묻혀버린 줄로만 알았던 "순종"은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곧 믿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진정한 순종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순종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름다운 신앙은 12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여기에는 노아의 인내도 있었고 시련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에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곧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곧 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버림을 당하였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그 순종에 응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순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순종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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