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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봉사생활 (롬 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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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인의 봉사생활
본문 : 로마서 12:3~13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도미니끄 라피에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롤랑 조페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것인데
이 영화를 보면 처음엔 도저히 기쁨의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도시, 즉 슬픔이나 고난... 역경... 이런 것들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왜 기쁨의 도시라 부르는가 하면
비록 삶의 현실은 그렇게 힘들고 어렵지만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바로 거기에 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기에
이 도시가 기쁨의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란 버는 것이나 얻는데서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주는 것이나 봉사하는데... 더 큰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35절)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진리일 뿐 아니라... 아주 고차원적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임종하게 되면 대부분 마지막으로 뉘우치게 되는 것이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왜 나는 그때 더 참지 못했을까?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런 후회가 없을 터인데.... 하는 후회이고
둘째는 왜 나는 인생을 좀더 즐겁게 살지 못했는가?
    오늘이라고 하는 매일 매일을 다 놓치고 이렇게 죽어가야만 하는가... 하는 후회이며
셋째는 왜 나는 더 베풀지 못하고 살았나?
    아둥바둥 남 안주고 모아봐야... 이렇게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건데... 하면서
    가슴치며 한탄하는... 후회라는 것입니다.

봉사한다는 것이 즐겁고 기쁘며 의미있는 삶이라는 것을 언제쯤 깨닫게 되는가 하면...
이처럼... 맨 나중에!! 거의 죽을 때 가서야!!... 대부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일찍 깨닫는 것이 진정 축복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시 한번 더 본문 말씀 중 6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봉사에도 다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특별히 받은 은사나 혹은 나만이 받은 은사
바로 그것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봉사를 하려고 할 때에
그 면에 관심은 있으나 잘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으면 봉사가 되지 않기에
일단 그 방면에 은사가 있어야... 봉사가 기본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힘이 없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겨우 자신의 몸만 지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거운 돌을 옮기거나 물건을 운반하는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본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기는 치는데 겨우 도레미파 정도만 치면서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고 싶다고 우긴다면 그것이 되겠습니까? 이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봉사란... 내가 하고 싶다해서..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면에 은사가 있어야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있기에!!
먼저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난 후
그 은사를 중심으로 봉사를 해야만!!
그 봉사가 효과가 있으며 봉사하는 사람도 기쁨과 보람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봉사는 하겠지만 그 봉사가 아주 힘들고 죽을 맛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고린도전서 7:7).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 어떤 사람은 권위하는 은사,
어떤 사람은 구제의 은사, 어떤 사람은 다스리는 은사, 어떤 사람은 긍휼의 은사...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각자가 받은 은사는 다 같지 않으므로
이것은 서로 비교할 수 없고... 또 비교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받은 은사와 내가 받은 은사 중... 어느 은사가 더 좋고 더 귀한 은사냐?...
이러면서 은사들을 서로 비교하며 교만하거나 주눅들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은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은사로 봉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같은 품종의 꽃이 있는데 색깔이 서로 다른 꽃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하나는 빨간 꽃, 하나는 파란 꽃, 하나는 노란 꽃... 그러면 어느 꽃이 더 좋은 꽃입니까?
이렇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며 비교해도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비교할 수 없으며 그렇게 비교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무지개빛 7색갈이라고 하는 빨주노초파람보는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각각이 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색깔이기에
그것들은 그 색깔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냄으로서 창조주에게 봉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 봅시다.
여기 같은 꽃이 아닌 서로 다른 꽃이 있다고 합시다.
봄이 되면 피는 꽃인... 하나는 목련, 하나는 벚꽃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꽃이 더 우수한 꽃입니까?
이 두 꽃 나무를 놓고 서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온당한 것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각자가 다르게 받은 은사는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받은 그 은사를 최선을 다하여 더욱 계발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름답게 봉사해야만 하는 것이... 은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똑같이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은혜인데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든지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똑같이 구원이라는 은혜를 받은 것 위에
각자가 다르게 받은 은사가 있는데 그것은 봉사하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에바브로디도라는 한 남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봉사를 열심히 하다가 병들게 됩니다. 병들 정도로 열심히 봉사한 것입니다(25-27절).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한 여성인 도르가라 하는 다비다는
열심히 봉사하다가 그만 병들어 죽은 여성입니다(사도행전 9:36-43).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받은 은사를 최선을 다하여 봉사했다는데
그 공통점이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주위를 잘 섬겼습니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래서 그들은 다시 새 힘을 얻게 되고.. 죽었다가도 살아나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로 하나님도 감동 시켰지만 사람도 감동시겼습니다.
그들은 봉사하다가 받는 고난도 영광으로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에게는 이런 말이 따라 붙었습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봉사라고 하는 것, 이것은 내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봉사하는 것이지만
시기 장소 방법 등 이 모든 것을 적절하게 고려하여 봉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998년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북한에 선물로 소 500마리를 끌고 갔습니다.
가난한 북한을 돕겠다는 순수한 취지와 남북화해를 위한 봉사 차원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북한으로 간 소 500마리가 다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상당한 소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영국 Financial Times, 2003년 6월 26일자, 제6면, Andrew Ward)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 소들이 남쪽에 있을 때에는 좋은 환경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하다가 북한에 가보니 환경도 달라지고 먹는 것도 달라져...
그만 소들이 적응을 잘못하여 병들어 죽은 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남을 위한 봉사, 북한을 위한 봉사도 알맞어야 하고
그것이 받음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봉사가 가기는 갔으나
봉사의 열매는 이처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로마서 15:31)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가지고 무엇을 봉사하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봉사의 기본 자세입니다. 마가복음 10:43-45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간단하게 말하면 주장하는 자세로 봉사하지 말고...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다 다른 은사를 받아서
가정도 섬기고... 교회 공동체도 섬기고... 나라와 민족도 섬기며 봉사하는데...
그러다 보면 때로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 그러면서 다투는 일도 간혹 생기며
그러다보면 좋지 않은 말도 서로 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것이며..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로 봉사하는 것이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로마서 14:6-9).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사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생을 의미있게 살도록... 은사를 받아 봉사하며 살지만
이 은사를 받기 이전에 우리는... 죽은 존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이었고
약속의 언약들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외인(外人)이었기에(에베소서 2:12)...
영적으로 보면 죽은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의 은혜 속으로 인도하여
모두에게는 구원을 주시고 또 각자가 생을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가도록 은사를 주셨는데
이 봉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이 결국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 것인가 하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지향해야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읽어드렸던 로마서의 말씀에 보면 그 짧은 구절 안에 "위하여"라는 말이
무려 8번이나 나오고 있는데 이 "위하여" 라는 말은
의식의 변화... 목적의 전환을 의미하는 움직씨인... 동사(動詞)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다 나 중심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었고...
또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렇게!!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 다짐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봉사도 당연히 주를 위한 봉사,
주님을 지향하는 봉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거듭난 존재로서 우리의 봉사가 주님을 위하고 주님을 지향하려 할 때에
꼭 참고해야 할 말씀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다같이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7-11입니다. 신약성경 381쪽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오늘 설교의 결론이며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한 청지기 같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지기가 무엇입니까? 관리인입니다.
관리인처럼 봉사하되 그것도 선한 관리인... 성실한 관리인...
신실한 관리인처럼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뚱아리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우리가 가진 시간, 물질, 가정, 직장, 사업.. 다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관리인, 성실하고 신실한 관리인이 되어야 하는데
건강관리 시간관리 물질관리 은사관리.. 이런 관리들을 제대로 잘 하며 살아야
이 모든 것들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선한 관리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몸을 마구 혹사하는 사람도 있고 자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관리하여 계발하지 못하고
썩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신실한 관리인들이 아닙니다.
성실한 청지기... 신실한 청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선한 청지기이며 성실하고 신실한 청지기입니까?

그것은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간에... 받은 은사를 가지고 주신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며 창조적이고 진취적으로 일을 잘 감당해 나가면서
그 모든 일들을 정직하게 감당해 나가는 자가 선한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요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보고싶지 않고 듣고싶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 제일 더러운 일은.... 구린 돈, 더러운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청지기입니다.
나라 일을 하라고.. 백성들을 잘 살도록 보살피라고 국민들이 뽑아준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얼마만의 사람이 과연 이런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나랏일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존직분자들이 어떤 직분입니까?
항존직분자들이란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공동의회에서 뽑아준 대표들이기에
그들은 다 이러한 청지기 의식... 선한 청지기 의식이 충만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자세도 바르게 하여 봉사하고... 지혜롭게 봉사하며
또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여 결과가 30배 60배 100배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만 하겠는가 하는...
봉사 그 이후의 마지막 처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누가복음 17:7-10)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우리는 이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디 우리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구원이란 은혜도 본디 없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은사도 본디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했습니다.
이웃을 위하여 봉사했으며.. 가족을 위해 봉사했고...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달라... 이렇게 나오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만 있으라는 것입니다!!

봉사란 자기를 나타내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기의 직분을 드러내는 장(場)도 아닙니다.
항존직 투표를 대비하여 미리미리 표 얻기 위한 발판 구축의 장(場)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봉사는 봉사 그 자체로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은사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구별한 다음...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사라고 확인만 된다면!!...
남달리 나에게 주신 그 은사는 반드시!! 봉사로 나타나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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