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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톤을 높여라! /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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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7:11-19
제목 : “감사의 톤을 높여라!”

지난 2000년 3월 15일-16일 사이에 바하만 해변에서 16마리의 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해군과 국립수산어업국에서 고래의 떼죽음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대 잠수함 작전중이던 미국 해군 함정에서 쏘아 보낸 “수중 초음파 탐지기(SONAR)"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소나에 의해 고래들이 뇌와 귀에 치명상을 입어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해변으로 올라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은 해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현장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는 자아의 소리, 세상의 유혹하는 소리가 너무 강력하여 목적을 상실하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이 넣어주는 달콤한 소리 때문에 그것이 살길인 것처럼 따라 가다가 우리의 영혼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감사대신 불평을 토해 낼 때도 있습니다.

성도가 구원받은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하며 찬송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감사없이 마지못해 끌려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뜻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유롭게 뛰놀며 사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면 성도다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첫째,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은혜를 받았습니다(11-1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어떤 촌에 들르셨습니다. 거기서 열명의 나병(癩病)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들은 나병이 발병하자마자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행여 정상인들이 가까이 오면 “나는 나병에 걸렸으니 나를 떠나주세요!”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얼마나 비참한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았겠습니까?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의 방문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까이 오지를 못했기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13). 예수님은 구약율법에 따라 나병이 완치되었음을 판단해 줄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14절). 그것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이 ‘내가 너희 사연을 다 안다, 희망을 주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가는 동안 나병은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으나 단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은혜는 받았으나 눈이 감겨있을 뿐입니다.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과 사건이지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국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그는 참 국민이 됩니다. 배우자를 내 인생의 기쁨으로 감사하며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배우자로 거듭납니다. 자녀들도 부모의 은덕, 사랑, 보살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한 멤버로 속해 있다는 것이 정말로 감사로 느껴질 때 비로소 그 교회의 교인이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복음에 대한 감격이 인생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올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관점을 바꾸어 보십시오. 감사가 보입니다.

옷이 몸에 좀 낀다면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가,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모임을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나에게 불만을 토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도 그가 내게 친구로 가까이 있음이 아니던가요?
(낮은울타리)

둘째, 오직 한사람만이 감사드렸습니다. (15-19).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16절).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고침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응답 받은 사람은 많으나 감사로 열매 맺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습니다.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骨多孔症)으로 칼슘이 뼈속에서 빠져나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동일한 이치로 삶에서 감사가 빠져나간 것에 무감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각성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한 무명의 사마리아사람을 보면서 몇 가지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① 그는 자신이 병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감사를 드렸습니다(15절).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15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소리로 감사드렸습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를 받았다면, 숨어서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내 삶과 언어와 표정과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통해서 표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표가 날 정도로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기는 순수해야 하지만 순수한 동기가 결과로 표현되어 많은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나타낼 때도 필요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전심으로 큰소리로 감사를 드린 때가 언제였습니까?

② 그는 응답 받은 즉시 감사를 드렸습니다(15절).
열 명의 사람이 계속 자기 길을 가는 중에 한 사람이 돌아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쏠려 사는 것은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물을 역류하듯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도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께로 즉시 돌아섰습니다(turn back). 미루는 감사는 변질되기 쉽습니다.

③ 그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16절b).
그는 다수에 주눅 들지도, 기준이 흔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 사람들에게 경멸당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을 합리화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은혜의 힘이 환경을 이끌 때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섭니다.

④ 그는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를 드렸습니다(16절a).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16절). 그는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 감사했습니다. 그가 돈이 있었다면 돈을 드렸을 것이고, 명예가 있었다면 명예를 드렸을 것이고, 머리에 면류관이 쓰여져 있었다면 그 면류관을 드려서 주님께 벗어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를 할 때는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고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골로새서 2:7). 영적으로 메마르고 죽은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가 없으나(시편 115:7),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언제 어느 곳에든지 입술로, 물질로, 자기의 전존재를 드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가 참된 부자입니다.

셋째, 그는 감사함으로 참된 구원의 복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처음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을 선지자중 한사람 혹은 선을 베푸는 선생님정도로 알았을 겁니다(13절 참고). 그러나 인생을 고쳐 주심을 통하여 “아! 이분이 바로 메시야구나!”하는 본질적인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육체의 질병만을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차선에서 머물다가 최선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것이 다 인줄 생각하다가 그 다음의 단계에서 누리게 될 엄청난 복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사이에, 축복과 축복사이에는 감사의 금사다리가 놓여있습니다. 또 한번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마치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며 자라가듯 감사의 매듭을 만들며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가지 일 때문에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열 가지 감사의 제목을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를 통해서 자라납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건강, 경제, 인간관계, 자녀의 문제 등으로 남모르는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을 때 주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궁극적인 승리를 주께서 허락해 주신다는 미래의 소망을 앞당겨서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그 아름다운 감사를 받으시고, 반드시 주의 놀라운 은총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의 논리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의 논리를 따라 감사하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깨달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 감사의 눈을 가집시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내 삶과 언어와 표정과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통해 표현합시다. 한계를 짓지 말고 넘치도록 우리의 입술로, 물질로, 우리의 전존재를 드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톤(tone)을 높입시다. 감사로 우리의 삶을 매듭지으면서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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