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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만드는 땔감 /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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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적을 만드는 땔감
본문 : 요한복음 2:1-11

성경은 기적의 책입니다.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토마스 제퍼슨이란 사람이 신약성경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다 잘라냈습니다. 그가 삭제한 것은 대부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부분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얇아졌겠습니까? 성경에서 기적을 삭제한다면 남아 있을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사전에 실린 성경의 정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공상적인 전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 공상적인 공산주의는 망했으나 성경은 살아있습니다.

어린아이들 눈에는 어른의 세계가 온통 신비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에게 기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인간에게는 모두 기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뿐입니다.

기적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과학 시대에는 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적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신비한 체험만 쫓아다닙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잘못된 태도입니다.

크리스천은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때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 하나님을 체험한 내용을 적은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믿습니까? 그러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도 같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12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예수님 자신이 표적입니다. 기적 가운데 예수님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 가운데 제일 처음 하신 일입니다.

갈릴리 가나 마을에 결혼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그만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잔치 음식이 손님 수를 미리 헤아려서 만들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오면 모자랍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더구나 잔치에서 포도주는 길흉을 점치는 음식이었습니다. 포도주의 충분한 양과 맛이 신랑신부의 밝은 앞날을 예고한다고 믿었습니다. 만약 포도주가 모자라거나 맛이 떨어지면 불길한 징조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칫집은 큰 문젯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은 모든 원망을 뒤집어쓰게 생겼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기적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포도주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부족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인생이 신비입니다. 부족한 것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기적을 가져오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된 것입니다.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 때문에 잘 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가였습니다. 그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지독한 근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완전히 암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아이다를 막 시작하려는데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단원 중에서 악보를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토스카니니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임시 지휘자로 단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게 된 계기입니다. 당시 그는 19 살이었습니다. 그는 20 세기의 가장 훌륭한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근시라는 약점을 축복의 기회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악보를 암기하면서 자기의 약점을 극복했습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군중 틈에 끼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바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변장된 축복입니다. 문제 속에는 해결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가 일어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은 문제가 생기니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도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기적 자체인 것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부족합니까? 그래서 문제가 됩니까? 그 부족함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족함이 다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함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은 수두룩합니다.

부족함이 축복이 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잔치집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부탁을 거절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4 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여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 표현은 사실 아주 정중한 표현입니다. ‘여자여’ 하는 것은 거칠고 무례한 표현이 아니라 존경의 표현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유명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부를 때 이 호칭을 썼습니다. 또 호머의 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이아를 부를 때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또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신 표현도 오해받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신학자 버클레이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걱정하시 마십시오. 어머니는 사건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제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제 방법으로 그것을 수습하겠습니다. 그러나 때가 아직 아닙니다. 조금 더 기다려보십시오.”

예수님이 기다리는 때는 어느 때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할 때입니다.

이 집이 포도주가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3 절에 보면 포도주가 모자랐다고 했습니다. 아직 버틸 힘이 있으면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교만입니다. 힘이 남은 사람에게 믿음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100% 주님만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항복하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만약 제 힘이 남았을 때 주님이 도우셔서 문제가 해결되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잘라서 된 거라고 합니다. 제 힘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떠듭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주님의 때가 되기까지는 기도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때는 누가 정합니까? 주님이 정하십니다. 그러나 그 때를 만드는 것은 우리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100% 순종하는 믿음이 준비되었나 보십니다. 그 믿음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드디어 포도주가 바닥이 났습니다. 문제가 터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명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의 절정은 하인들의 순종에서 나타났습니다. 순종이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해서 말씀을 의지해서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전적으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맟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배는 빈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그물을 거뒀습니다. 몹시 피곤합니다. 비전문가의 충고입니다. 그러나 그 때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다시 내렸습니다. 그는 자기 상식과 경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두 배에 실었는데 배가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너무 엉뚱합니다. 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항아리에 물은 손님들 발을 씻어 주는데 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풍습입니다. 유대인들은 건조한 기후에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우선 하인들이 손님 발부터 씻어드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잔치 때 손님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니까 격식을 차릴 여유가 없습니다. 하인들이 음식을 나르는데 동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은 더러운 손과 발로 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이 집은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급한 문제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례에 쓸 물이 떨어졌습니다.

어느 것부터 해결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급한 것부터 해결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끌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순종할 수 있습니까?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항아리 여섯이면 굉장히 많은 양입니다. 잔치에 포도주는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는 양입니다. 더구나 이 항아리는 결례 항아리입니다. 돌로 만들었습니다. 돌항아리에 포도주를 담아두지 못합니다. 포도주는 옹기 항아리에 담아야 합니다. 하인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불순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런 의문과 상식의 뛰어 넘는 것입니다. 무조건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을 채우라면 네! 하고 물을 길어다 붓는 것입니다. 그게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여기 하인들의 순종에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냥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릇의 크기는 믿음의 크기와도 비례합니다. 채우는 만큼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한 분량만큼 채워집니다.

여러분 얼마큼 받으시렵니까? 믿음의 분량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믿고 우리도 크고 놀라운 비전을 품으십시다.

예수님의 기적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면 놀라워합니다. 그 기적 자체에 관심을 갖습니다. 요한복음은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적 대신 표적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기적은 놀라운 일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적은 기적보다는 기적을 일으킨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놀라운 기적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보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11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제자들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기적 다음에는 반드시 거기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맛보는 기적은 모두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그 증거의 현장에 기적은 멈추지 않습니다. 날마다 기적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땔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항상 풍성함을 누리는 잔치집이 됩니다. 예수님은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 잔치집의 처음 포도주보다 나중에 나온 기적의 포도주가 좋은 것이라고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십시오. 주님을 모시면 모든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근심거리가 변하여 좋은 일, 기뻐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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