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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직분을 맡은 사람의 자세 /고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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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을 맡은 사람의 자세

본문: 고린도전서 4:1- 5

아주 큰 교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바 가 있습니다. '교인들은 수천 명이 되지만 실제로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되요'
개신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아는 천주교의 어떤 평신도 회장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창조적인 소수"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임명된 재직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 하는 창조적인 소수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토인비는 일찍이 "인간의 역사는 많은 사람에 의해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의 신념과 용기에 의해 이룩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교훈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재직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살펴봅시다.

1. 직분을 맡은 자는 청지기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비밀을 맡은 자"라는 뜻은 원문에 보면 '관리자' '집사' '청지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청지기는 관리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청지기의 기본 자세는 '내 것이 아니라'는 태도입니다. 가정도, 일터도, 자녀도, 건강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또한 청지기의 자세는 주인의 뜻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내 계획대로가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지기가 가지는 자세입니다.
청지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꿈의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의 총명함을 보고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 외에는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기고 그가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임명하였습니다.(창39:4-6) 이렇듯 청지기의 위에는 주인이 있고, 그 밑에는 노예가 있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존재가 바로 청지기입니다. 타율적 존재인가 하면 자율적 존재입니다. 그에게는 상당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 착각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청지기는 주인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긍지와 창의성을 가지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자율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재직은 교회의 리더와 중간역할로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목사는 교회의 중요한 정책을 의논하고 함께 상의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뿐만 아니라 중요한 비밀들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뜻을 쫓아 믿음 안에서 교회를 세우고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세워주며 함께 고난의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安逸)과 영달(榮達)과 편안함만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들은 한 달란트를 숨겼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심판을 받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25:26,30)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몇 달란트이던 간에 달란트는 매우 귀중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귀히 여기셔서 맡기신 하늘나라의 거룩한 직분입니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늘나라의 귀한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영광의 잔치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은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다, 나는 그리스도의 청지기이다'라고 자신의 긍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긍지를 가지며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뜻이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는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청지기들이 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과 영광을 얻으시는 재직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직분을 맡은 자는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모 교회 김 권사님은 83세의 고령에도 교회 강단 청소를 사명으로 알고 매주일 예배 1시간 전에 오셔서 기쁨으로 찬송하며 닦고 계십니다. 한 번은 너무 힘드신 것 같아 그만 하시라고 하니“하나님의 사명은 은퇴가 없어요.”
하시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제가 어느 날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무슨 일로 들려 목사라고 했더니 사장이라는 사람이 "요새 교회 사업이 잘되는 것 같은데 목사가 되려면 얼마나 드느냐"고 물어 실소를 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직도 돈 드리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 투표를 했는데 떨어진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 "그렇게 헌금을 많이 했는데도 장로 투표에 떨어지면 얼마나 더 헌금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떨어져야 교회가 평안할 것입니다. 재직은 사명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재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일을 위해 고난도 멸시도 받을 줄 알아야 하고 우리의 것을 우리 것이라 하지 않고 드리는 헌신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성직을 맡은 직분 자들이 큰 긍지와 자랑을 가지고 일할 것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봉사자에게 있어서 긍지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일할 때에 보람을 얻을 수가 있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긍지에는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개인적인 적성과 그 적성에 따른 일을 은사 적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맡은 이 일은 내 적성에 꼭 맞는 일이요,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신 소중한 은혜의 선물이라고 여겨질 때에 참다운 긍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긍지를 말합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저분에게 있어 나는 대단히 소중한 사람이다 는 긍지와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다 소중하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자기 기능과 자기 역할을 소중하게 여길 때에 열심히 생기며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만족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만족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내 얼굴이 썩어 있으면서 누구를 위로하겠습니까? 내 마음이 울적한데 어떻게 남을 위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기뻐해야 하고, 내가 먼저 충만해 있어야 하고, 내 안에 자신감과 긍지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 긍지가 넘치는 사람은 역경이 와도 잘 대처합니다. 모든 일에 창의력을 발동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열고 삽니다. 이런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입니다.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직분을 맡은 자는 충성하는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충성이란 성실하다는 뜻인데 이 성실은 진실과 정성을 의미하며, 또한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충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을 맡기십니다. 둘째, 조건과 환경을 불문해야 합니다. 성도라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추운 겨울눈을 맞으면서도 항상 푸른 나무로 서 있을 수 있는 성도가 진짜 성도입니다. 셋째, 죽기까지 해야 합니다. 잠시 충성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 받는 충성이 어찌 몇 년 갖고 되겠습니까? 죽기까지 충성해야 칭찬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3절에 보면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비밀을 맡은 자는 충성을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만한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 충성 없고, 충성 없이 희생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통해 받는 직분이라는 것은 특수한 직분입니다. 첫째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직분. 둘째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직분. 셋째는 성령의 은사.(성령님을 철저히 의지) 넷째는 섬기는 직분. 다섯째 생명을 살리는 직분. 여섯째 하늘나라에 상급이 준비되는 직분.(면류관) 일곱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목적인 직분. 여덟째 죽도록 충성하는 직분. 아홉째 계급이 없는 직분. 열 째 믿음이 있어야 하는 직분. 세상에 많은 직업과 직분들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받는 직분보다 귀한 직분이 없고, 교회의 직분자가 하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직분자들이 충성하면 할수록 많은 생명이 살아납니다. 평화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여 보았습니까? 내가 먹을 것을 줄이고, 내가 입을 것을 줄이고, 내가 꼭 필요한 것을 쓰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희생제물을 드려보았습니까? 하나님은 희생제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쓰고 남는 것 가지고 드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희생이 있는 여기에 헌신이 있고 여기에 충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일군은 꾸준해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에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기뻐하시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중단한다면 사람 때문에 일하고,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불충한 일군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절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충성함에 있어서, 내가 긍지를 가지고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 못한다, 겸손하다, 교만하다, 성공했다, 실패했다......무슨 소리를 하든지 내게 다른 사람의 판단은 작은 것이다, 개의치 않는다, 내 긍지가 그것들을 다 포용하고도 남는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갈1: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의 판단과 비난을 너무 의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사람의 마음에 맞는 종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에 맞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경건하게 그리고 정결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되었다고도 하지말고, 안되었다고도 하지 맙시다. 누구 칭찬 좀 한다고 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만하지 말 것이요, 누가 좀 섭섭히 한다 고해서 또한 섭섭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처럼 절망하지도 말 것입니다. 잘 됐는지, 못됐는지는 그리고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는 그 날에 가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 대해서나, 나에 대해서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구할 것은 다만 충성뿐입니다. 그저 주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충성,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한 직분과 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고, 사도 바울 처럼 높은 긍지를 새롭게 느끼면서, 오늘도 내일도 충성하고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는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충성'이란 말의 성경적인 뜻은 '믿음'이란 말과 통합니다. 영어로 'faithful'이란 말을 씁니다. '신실하다, 성실하다, 신의가 있다. 믿을 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미쁘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믿을 만 하고, 의지할 만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21장 4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녀된 우리도 다를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아무리 지식이 많고, 아무리 재간이 많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이 충성의 요소가 결여되면 그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면서 '예수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6절에 "그리스도는 그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맡았던지 맡은 사람의 자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4. 직분을 맡은 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책임과 방관의 자세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방관은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무책임한 구경꾼의 자세입니다. 방관은 책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방관은 손님의 입장에서는 것이요, 구경꾼의 자세요, 제3자의 위치에서는 것입니다.
책임이 무엇입니까? 내가 맡아서 해야할 일입니다. 어떤 결과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느끼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기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둘러서서 구경만 합니다. 그러나 그 집주인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뛰어들어 불을 끄고, 물건을 꺼내고, 집안 식구의 생명을 구출합니다. 방관과 책임이 이렇게 다릅니다.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는데, 대답한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르면 대답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에게는 부름의 원리와 대답의 원리가 있습니다. 아들이 나를 부르고, 아내가 나를 부르고, 이웃이 나를 부릅니다. 민족이 나를 부르고, 조국이 나를 부르고, 정의가 나를 부르고, 사명이 나를 부르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다. 왜 나를 부릅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부르는 것입니다. 청년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하나님을 뵈었음이로다" 그때 스랍 중에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핀 숯을 손에 가지고 그에게 날아와서 그의 입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이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 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했습니다. 이일이 있은 후에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청년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대답해야 합니다. 부르시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맡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르면 대답해야 합니다. 12사도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의 부름에 대답하고 나섰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진리의 부르심에 대답했습니다. 나이팅게일 사랑의 부르심에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부르면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해서 나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용감하게 대답하는 것이 책임감입니다. 책임은 인격의 엄숙한 응답입니다. 응답하려면 성실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실과 용기의 덕이 없는 사람은 불러도 응답할 줄 몰고, 책임을 느낄 줄을 모릅니다. 책임은 인격의 척도요 표준입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다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임사회의 책임적인 인간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모여야 책임 사회가 됩니다. 무책임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책임하다는 것은 사람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맡은 사람의 자세는 책임정신입니다. 주인은 강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영국 속담에 '하인 열 사람의 눈보다 주인 한 사람의 눈이 밝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의 시력은 1.2고 하인의 시력은 0.2가 되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책임의식 문제입니다. 책임을 느끼면서 보는 것과, 책임의식 없이 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요,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못한다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직위에 따르는 책임을 우리는 직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직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한 나라에는 국민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국민 각자에 책임이 있습니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배는 선배를 원망하고, 국민은 대통령을 원망한다면 그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나라가 바로 서라면 국민 하나 하나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주인의 눈으로 보고, 주인의 귀로 듣고, 주인의 머리를 생각하고, 주인의 가슴으로 느끼고, 주인의 손으로 일해야 합니다. 방심상태로 보면 보아도 안보이고, 들어도 안 들리고, 머리가 있어도 생각이 안나오고, 가슴이 있어도 느낌이 없습니다. 우리는 방관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방관자는 스스로 책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의미 없이 온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심부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적 존재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각각 책임이 잇는 것입니다. 책임을 안다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시작이요, 책임을 행한다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끝입니다. 스스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은 스스로 사람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맡긴 심부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인의 마음으로 살아야지, 손님으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 하나 한가 가정을 책임지면 가정이 서고, 교회를 책임지면 교회가 제구실을 하고, 나라를 책임지면 대한민국이 부강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삼천리 금수강산을 주인처럼 섬겨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이룩하는데 우리 하나 하나가 책임을 바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직분을 맡은 자는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다만 오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이 시간 교부 익나시우스의 기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 우리에게 참된 관대함과 고결함을 가르쳐주옵소서. 상처 입은 일에 구애됨이 없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휴식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대가를 구하지 않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옵소서. 우리의 대가를 구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 있기에 그처럼 피곤에 지쳐있는 것입니다. 주님, 대가를 구하는 마음이 없이 희생하는 법을 가르쳐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평가받고, 관심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판단하는 사람의 그 판단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판단을 하는 사람의 기준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일꾼은 변하는 사람의 판단을 의식하지 말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며 살아야 칭찬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판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귀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일꾼들입니다.
이제 일을 통해서 칭찬 받고, 인정받고, 높임 받는 재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청지기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긍지심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변하지 않는 충성하는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를 의식하며 일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재직들이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임을 알게 하시고 저들의 수고 위에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가 함께 하도록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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