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 (고후 5:17)

  • 잡초 잡초
  • 264
  • 0

첨부 1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
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보신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나아온 이유는 달라져야겠다는 필요 때문일 것입니다. 변화되고 싶다는 필요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 싶다는 필요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 들어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깊은 욕구를 채워주시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들을 하나씩 살필 때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소개하시는 것은 우리는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존재이고 또 거룩하게 되어야만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자신을 그렇게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2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각기 다른 영적 순례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고자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50년도 넘게 주님을 신실하게 섬겨온 분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그 사이에 어딘가에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요즘 처음 나오신 분인지 아니면 예수를 상당히 믿고 세례를 받게 된 분이시든지, 또 신앙생활 하신지가 수 십 년을 헤아리는 분들인지 상관없이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가시려는 분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셨다면 여러분에게 변화의 사역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작업을 끝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새롭게 하시는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 나와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신앙생활하기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에 충분히 착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서서 설교하는 목사도 그렇고 나와서 대표기도 하는 장로님도 그렇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만큼 착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처음 나오신 여러분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한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시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변화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기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옛 삶은 지나갔습니다. 옛 삶이란 그리스도 없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적이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을 영접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 새로운 삶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관계를 맺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옮겨지는 삶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면 거룩케 하는 역사가 그 삶에 시작됩니다. 변화의 과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바울은 이 새로운 변화의 과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미 얻었다는 것도 아니며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상을 받으려고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빌3:12-14, 현대인성경)

여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새로운 삶을 경주에 비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더 장거리 경주의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새로운 여정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길 원하십니다. 불만을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오늘 주보에 박원일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어 보셨나요. “하늘 아버지의 기도” 그 분의 삶을 보면 하나도 감사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정말 환한 표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바꾸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안을 평강으로 변화시킵니다.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십니다. 우리의 욕망을 진정한 사랑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초라한 모습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조급증을 가진 인생을 느긋하게 인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변화시키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못된 성질을 온유한 성품으로 바꾸십니다. 통제 불능의 인간을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수정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성품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아직도 우리는 종착지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거기에 도착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을 볼 수는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품을 바꾸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킵니까? 어떻게 이 변화의 과정은 일어납니까? 대답을 하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 가운데는 친구가 변한 모습 때문에, 이웃의 변한 삶 때문에 오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상사가 변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를 믿게 된 식구들 가운데 삶이 변하는 것을 보고 나도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금 이 자리에 오신 분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다시금 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변화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이런 변화를 모두 하나님이 다 해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해 주실 부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 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것처럼, 모든 짐을 자기가 져야 될 것처럼 자신을 볶아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성경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이 변화에 대해서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이 하실 부분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원과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새 삶을 살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제는 새로운 행동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놀라운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변화의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은 영적인 삶이 하나의 여정임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시는 것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단번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긴 여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룻밤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응아!”하고 우는 순간에 태어나는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 아이가 사람 구실을 하는 데는 10년 가지고 되던가요. 20년 가지고 되던가요. 잘 안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든 만물 가운데서 사람만큼 빨리 제 구실 못하는 존재도 없는 것 같아요. 20살 되어서 철 다 들었다고 생각하면 왜 부모의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겠어요.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제 구실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부모들 속이 썩는 것 아니겠어요.

태어나는 것은 순간이라니깐요.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는 순간에 우리는 태어날 수 있습니다. 서로 손을 마주치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자라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0년, 20년, 30년도 필요하다니까요.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빌1:6, 현대인성경) 우리의 구원은 시작한 순간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완성될 순간이 있습니다. 구원의 과정, 성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그 과정은 긴 여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해 보셨습니까? 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이들이 더 기뻐합니다. 짐 챙기고 출발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흥분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막상 출발하고 나면 얼마 안가서 아이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멀었어요?” 한 번 묻기 시작하면 끈임 없이 질문을 합니다. 30분까지도 못 기다립니다. 또 묻고, 또 묻고. 왜 이런 질문이 계속 됩니까? 그것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숙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다가 어떤 때는 낙심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질문에 대한 답이 빨리 빨리 나오지 않으니까 그냥 신앙생활 하다가 완전히 주저앉아 버리기도 합니다. 교회 나오자 말자 처음부터 “짠!”하고 모든 것이 밝아져 오면 누가 신앙생활 하는 게 어렵겠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꿔 주시기를 원하지만 여러분이 이 일에 협력을 같이 해야 하는 겁니다. 주일날 와서 말씀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집에 가서 성경도 한번씩 펴 봐야 되는데 집에 가서 텔레비전부터 켜는 사람이 많아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도 안 된다니까요. 

우리는 지금 인스턴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밥 한번 지으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보리쌀 찧고 삶아야 겨우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위치만 눌러 놓으면 다 됩니다. 요즘은 밥 없다고 굶을 필요도 없습니다. 라면 끓이는데 3분이면 됩니다.

자판기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데는 동전을 집어넣고 3초가 넘어도 나오지 않으면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동네의 아파트에 엘리베이터 버턴을 살펴보신 적이 있습니까? 닫힘 버턴을 얼마나 눌렀는지 닳아서 아예 지워진 것도 있을 것입니다. 급해요.

이런 인스턴트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경륜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참나무 한 그루라도 쓰시기 위해서 50년-100년도 기다리신다니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람으로 되어져 가는데서 그렇게 초조해 하지 않습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셨으면 반드시 이뤄내고 맙니다.

하나님의 그런 성품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라고 말하고 보통 사람들 식의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님은 외고집장이다 라고 합니다. 한번 하나님 손에 잡혔으면 이제 하나님에 대해 학습하기로 결심했다면 제일 좋은 길은 빨리 빨리 코스 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먹고 우리를 당신 자녀로 빚어 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여러분이 고집 부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봐 주실 줄 압니까?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일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몫의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정해 두셨습니다. 아직도 거기 목표에 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공개하기가 부끄럽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아 가지고. 여러분보다는 한 주간 먼저 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우리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흠과 티와 주름 잡힐 것이 없이 하실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는 먼저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내 삶 속에서 당신을 닮아 가도록,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2. 다음으로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변화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시선을 최후 목표에다가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이 여행의 기본 에티켓입니다. 각 과정마다 에티켓이라는게 있잖아요? 어제 사랑의 음악회에 갔는데. 음악회에 갈 때의 에티켓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티켓을 지키려고 하루 종일 입지 않던 양복을 입고 갔는데 노래하는 사람들은 청중에 대한 에티켓을 잘 안 지키더라고요. 제가 보니깐 제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태리 말로 계속 노래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참고 기다리느라고.

요새는 모든 것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져 가고 있는데 나는 한날 우리 음악가들이 이런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수요자 중심으로,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모국어로 노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구원의 여정에 들어서면 이 구원의 여정에는 목적지를 바라봐야 하는 기본 에티켓이 있습니다. 최후 목적지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온전하신 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의 그 완벽한 모습을 장차 지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 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레20:7-8)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으로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지만 다르게 사는 것이 그게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돈 많이 벌고 자식 잘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바르게 살고 자녀를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신앙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삶의 목표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우리 속사람이 당신을 닮도록 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세상은 겉모습에만 관심을 가지잖아요. 무엇을 먹고, 입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지만 우리 하나님은 속사람에 대해서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는 것, 들으셨죠. 행동보다 우리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여러분의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까지는 하나님은 중간에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주님은 우리를 변화시켜 가십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바꿔 가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그 역사에 대해서 여러분 마음 주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데 신경 좀 끊으세요.

여러분이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바꿔 가시는,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그 일에 신경을 쓰라니까요. 그러면 그 다음일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관심 쓸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의 뜻.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거기에만 관심 쏟으시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심을 쏟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행동하는 양식이 달라야 합니다. 교회 나와 가지고는 사람들이 이러더라, 저러더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저 시골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편식을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생선을 안 먹어요. 옆에 사람들이 지켜보니깐 예수를 전하는 선생님이 고기를 안 먹거든,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부자 집 큰 아들이 자기 집에 가서 고기를 안 먹는 거예요. 왜 안 먹냐고 하니까 교회 선생님이 안 먹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또 찬송가를 부를 때 두 손으로 받치고 부르니까 그 교회가면 찬송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예배를 드린답니다. 왜? 본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 행동 양식을 닮는 게 아니라 신앙생활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그 결과로 우리 속사람이 바꿔져 가는 겁니다. 처음 교회 나가보면 찬송가 427장 하면 금방 찾아 부르죠,

레위기 17장 몇 절하면 그것도 빨리 잘 찾죠. 처음 와서 보는 사람 눈에는 대단히 신통하게 보일 겁니다. 그런데 진짜 놀란게 무엇인지 압니까? 목사생활하면서 보니까 다른 것이 더 놀랍게 보이는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신앙생활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데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어 신기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참 놀랍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목회의 목표가 교회당을 크게 짓는다든가 하는 목표는 가지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 한국에서 목회를 가장 잘한 분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한경직 목사가 꼽힙니다. 그런데 그 분 곁에 계셨던 장로님 한분은 정말 독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 한분이 나와 함께 신앙 생활한 것 때문에 정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는 향기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정말 바울이 에베소서 장로들과 헤어질 때 목을 어긋 맡겨 가지고 통곡했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서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는 일에 도와가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은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의 얼굴에서 주님 사랑하는 모습이, 주님 사랑하는 분위기가 나타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적인 지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리적인 해박함이 있을 때 이단들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지식은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드리고 싶은 소원과 함께 갈 때 참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된 삶을 추구하십시오. 마음에 기쁨이 있고 입술에 감사가 있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자녀에게 하는 말이나 배우자에게 하는 행동이 본이 되게 하십시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죄악 된 욕망을 따라서 행동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는 울산교회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 감정, 여러분의 시간,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신앙생활 연조가 깊어 갈수록 더 강해져야 합니다. 옛날 내가 총각 때 하나님 처음 믿었을 그때에 하나님을 알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고 말하지 말고, 그때에 찬송가 부를 때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불렀다는 과거를 얘기하지 말고, ‘그때보다는 지금 내 중심에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더 알고 싶은 거룩한 소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신자들이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3. 길 가다보면 난관을 만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길은 원래 그래요. 올라가는 길도 있고, 내려가는 길도 있습니다. 출발할 때처럼 언제나 그렇게 상큼하게 가는 것은 아닙니다. 난관에 부딪히면 속도가 떨어지죠. 하지만 그것은 예상 했던 일이고 가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를 향해서 걸어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받았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 가운데서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고후7:1, 표준새번역) 여러분의 성품을 더럽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항목을 기록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두 기록해 보면 볼만할 것입니다. 정말 추한 목록이 될 것입니다. 한 번 기록들 해보시면 어떨까요?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어떤 분들은 자만심, 저는 그런 분들 때문에 참 안타까와요.

거의 폭력 수준을 넘어선 전화들도 가끔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 영적 교만 때문입니다.

입에는 불평이 떠나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영적으로 제일 성숙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울산교회 것들 하고는 같이 못 지내겠다고 하면서 우리 교회를 나간 사람이 있어요. 영적교만은 걸림돌입니다.

탐욕, 돈 버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딴 생각이 없어요. 과소비, 퍽퍽 써야 잘 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누가 봐 주길 바라는 이 병에 사람들은 푹 빠져 있습니다.

다른 것은 멀쩡한데 성질이 지랄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가 하면 좋은 것만 보면 훔치는 사람도 있어요. 부적절한 이성관계를 갖는 것 때문에 영적 성장이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성경은 벗어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옛날 교회 나오기 전의 생활 방식은 그것으로 끝내고 나오면 이때부터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지 마십시오.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의 나쁜 습성에 젖어 있지 마십시오. 성경은 여러분을 향해서 벗어버리라고 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그렇게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명하셨어요. 명하실 때는 여러분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행로로 갈수 있습니다.


4. 재충전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차를 가지고 여행 할 때는 어디에 주유소가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가도 계기판의 바늘을 보면서 연료가 얼마쯤 남았는지 보고 연료가 부족하면 채워 넣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접속해서 재충전이 되지 않는 삶은 피폐해 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접속하는 시간을 정규적으로 가지십시오.

매일 재충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 3,4월호가 나왔습니다. 다윗은 재충전의 필요를 잘 알았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시23:3)

꺼져 가는 불에다가 기름을 다시 붓는 것처럼 소생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자주 하나님께 접속해야 합니다. 재충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접속되어 있을 때 가장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삼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사흘 연달아 말씀을 읽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알고 사는 여러분의 삶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복음이 이 땅을 변화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매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 그래서 필요합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24시간 가지고도 무릎 꿇는 5분이 안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 읽는 반시간도 못 만드는 겁니다. 몇 번 말씀드렸듯이 저는 요즈음 반신욕 덕분에 매일 성경통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합니다. 하루에 보통 12장씩을 읽습니다. 처음에는 1월 중순에 시작하면서 올해는 1독이 목표였는데 읽다보니까 진도가 빨리 나가요. 그래서 2독해야지 했는데 3독도 가능할 것 같아 목표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주님 만날 때까지 열심히 읽을 겁니다. 그래서 그 동안 못 읽었던 것, 내 나이만큼은 읽고 주님 만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몇 번이나 읽고 왔느냐고 주님 물으시면 ‘옛날에는 제대로 못했지만 제가 56살 되던 해부터는 한해 성경 3독씩 하면서 주님 말씀 사랑하다가 왔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충전의 필요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제 신앙생활 첫 걸음 시작하시는 분들. 아니면 50년 넘게 신앙 생활하시던 분이든지 재충전의 필요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주일날 오셔서 말씀 듣는 것, 참 중요합니다. 비가 오는데도 오신 것, 참 잘하셨습니다. 가뭄을 적시는 단비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듣기만 하고 일주일 살아가려면 힘들어요. 주일날 와서 설교 한번 듣고도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 집에 가셔서 반찬 잘해서 밥 많이 드세요. 진수성찬을 드셔도 됩니다. 그러나 한 끼만 딱 드시고 일주일을 살아 보세요. 일주일 사시라니깐요. 저녁밥 먹어도 안 되고 내일도, 모레도 굶으세요. 버틸 만 한지.

설교 말씀 듣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듣고 와서 그것만 가지고 신앙생활 하려고 하면 안 자랍니다. 간신히 간신히 버틸 뿐입니다. 다음 주일까지. 그러시지 말고 여러분이 예수님 닮아 가려고 하면 무럭무럭 봄비에 자라가려면 여러분이 스스로 하나님과 접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재충전하는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그런 일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코스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통독반입니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성경대학도 있고 제자훈련반도 있습니다. 저녁에 시간이 되는 분들을 위해서는 평신도신학원도 있습니다. 

바쁘시다고요? 예, 우리 모두는 바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우리는 바쁘게 살다가 끝날 것입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그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일은 끝나지를 않고 인생은 끝난다.” 한번 보세요. 일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를 않습니다. 저도요, 아침부터 열심히 생활해 보지만 일이 그렇게 끝나지를 않네요.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일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올 들어 세 차례나 지금 감기가 왔다 갔다 하는데 쉬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지만 쉴 여가가 없어요. 그렇지만 바쁜 가운데서도 재충전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빠도 정말 중요한 것은 해야 된다니까요. 여러분이 아무리 바빠도 숨 쉬는 것은 하지요. 세끼 밥 먹는 것도 하죠.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은 해야 된다니까요. 그래야 신앙이 자랍니다.

신앙은 예수 믿은 연조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시간과 비례합니다.


5. 가끔 멈추어 서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되돌아 볼 필요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인이라면 여러분이 인정하든 말든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역사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왔는지 가끔 되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 여정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행하신 일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부터도 제가 몇 년 동안 신앙생활 했습니다. 하고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만 그래도 이전하고 비교해 보면 하나님께서 날 변화시켰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5-6세 때부터 벌써 집에서 인정받는 한 성질 하던 사람입니다. 별명이 불칼이었습니다. 지금은 옛날보다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안 달라지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제 얘기를 좀 했더니 어떤 남편께서 우리 집 사람만나서는 정말 정목사님께서 집에서 그렇게 하느냐고 묻더랍니다. 저도 그렇게 못할 때 있어요. 그렇지만 못하는 것은 제가 선전할 필요가 없잖아요. 잘할 때 것만 선전하는 거니깐 양해하시고 들어주세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40:5)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도 부족하지만 첫 발 디뎠을 때 보다 여러분은 많이 발전했습니다. 구체적인 실례들을 살펴볼까요? 작년 만해도 누가 당신이 운전하는 차 앞에 갑자기 끼어들면 손가락 한 개를 가지고 가리키면서 비난을 하다가 올해는 두 손가락을 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축하할만한 일입니다.

화를 내지 않고 지난 한 주간을 보냈다면 진보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거짓말과 더러운 말을 하지 않고 한 달이나 보냈다면 축하할만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늘 과소비를 하면서 살다가 지난달에는 예산범위 내에서 살았다면 자축할만한 일입니다.

이전엔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아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밀고 나갔는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두 주간이나 살았다면 축하할만한 진보를 한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여러분의 삶 속에 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업차 출장을 가서 모텔에 묵으면서 성인채널을 보는 대신 성경을 읽기로 하셨다면 여러분은 정말 진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주셨고 여러분은 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면 여러분의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 . .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는 것입니다.”(갈5:22-23, 표준새번역)

여러분이 누구든지 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보다 더 친절하도록, 특히 자녀들에게, 그리고 배우자에게 노력하십시오. 감사해서 10주년, 20주년, 30주년 결혼기념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작년보다 더 착한 남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겁니다. 그러면 변하는 겁니다.

내 아내로 하여금 세상 살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내가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렇게 결심하면서 사는 사람과 되는대로 사는 사람은 세월과 함께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보면 자식이든지, 아내이든지 속이 상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마땅히 그렇게 안해야 되는데 하기도 하고, 나 하고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주차를 해도 내가 했으면 하는 자리에 주차하지 않더라도 어쩔겁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다르게 만드신 것을 여러분이 짜증을 내서 어떻게 할 겁니까? ‘하나님 나에게 다른 사람을 붙여 주셨네요. 나하고는 다른 아들을 주셨네요.’ 그러고서 감사하셔야죠.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울산교회는 하나님을 닮아서 날마다 거룩한 삶을 향해서 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고후5:17, 현대어성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성화의 여정 어디에 까지 왔던지 상관없습니다. 어제처럼 사십시오. 아니 아침에 예배 나올 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뭔가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얼굴에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뤄가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