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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일군 (골1:24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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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골1:24 - 29절
제 목 : 성숙한 일군

<로버트 풀검>이란 사람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을 내었습니다. 그 책의 강조 점은 [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의 해답은
[ 고급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단순한 지식에 있다 ] 는 것입니다. " 밖에 나가서는 차 조심하라"는 말은 유치원에서 배웁니다. 무척 단순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말이 엄청난 고급 지식보다 더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박사 학위가 여러 개 있고 여러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국가 기관의 중요한 직책을 발령 받고 집에 가는 도중에
무단 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진리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쉽고 단순합니다. 그리고 명확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까?
이러한 질문에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23절에 [ 복음의 일군 ] 으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부상했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외형만큼이나 내적으로 충실하지 못한 것은
교회를 섬기는 바른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교회가 성숙한 일군들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의 저자 사도바울은 골1:23절에서
[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 고 하면서
복음의 일군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성숙한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복음의 일군(1:23), 교회의 일군(24절)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일군'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 라는 말인데
디아 - 통하여 와 코니아 - 먼지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일군'이라는 뜻은 [ 먼지 속을 통과하는 사람 ]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더러운 곳을 치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디아코노스'가 집사로 번역되어서
'섬기는 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머슴이란 말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일군이란 말 - 희랍어로 <휘폐레테스> 인데
이 말은 휘포-아래, 밑에 란 말과 에레테스-배 젖는 자 란 말의 합성어로서 일군은 배 밑 선실 아래에서 노 젖는 사공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니 일군은 궂은 일을 맡아 하고, 함께 수고하는 자입니다. <2>
어떻습니까? 나는 내일교회 일군입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내일교회 일군으로 불렀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일군이라고 하면서
복음의 일군 교회의 일군
또는 하나님의 일군,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세상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란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을
세상의 어느 직책보다도 더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문이나 그가 배운 학식이나
세상적인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일군이 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는 순간까지도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해보거나,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됨을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의 일군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성숙한 일군이 되어야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럼 성숙한 일군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24절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우선,24절은 두 문장입니다.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 ]는 한 문장이 있고,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 는 두 번 째 문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장 -여기에 너희가 누구입니까? 골로새 교회 교인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 때문에 받는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 ] 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말씀은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시기 전에 " 다 이루었다 "고 하셨습니다.
즉 범죄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다른 고난이나
무엇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무슨 고난이 부족하기에 <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불충분해서 바울이 보충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고난을
바울이 계승해서 자기도 고난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 같이 바울도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입니다.

영국 성경학자 바클레이의 주석에 보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원문에 [ 그리스도의 고난의 남은 것 ] 이란 말인데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에는 <일과 임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은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임무는 여전히 남았는데
이 그리스도의 임무가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떤 고난도 감수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럼 성숙한 일군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바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며
도리어 교회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똑 같은 사람인데 교회를 섬기면서
한쪽은 힘들어 죽겠는데 한 쪽은 기쁘고 신납니까?
그것은 우리의 관점이 어디에 있느냐? 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인 <르노아르>가 관절염을 앓을 때
그의 양손은 뒤틀리고 기형이 될 정도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붓을 쥐는 간단한 동작도 그에게는 고문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때로는 꼼짝도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그림을 포기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화가 친구인 <앙리 마티스>가 그를 찾아와
르노아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 끝으로 겨우 붓을 잡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모든 동작 하나, 하나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는 끈질기게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
마티스는 르노아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 자네 어떻게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지?]
르노아르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4>
[ 고통과 아픔은 지나가지만 그 아름다움은 남거든. ] 하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하여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들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성숙한 일군이 데는데 주저하지 맙시다.
이것이 성도의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며
그 고난을 자원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엇일 길래 바울은 교회의 일군 된 것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여기며 자원하여 고생길을 선택합니까?

18절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 고 하듯이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아니 바울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체가 다른 지체를 위하여 섬기는 것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기꺼이 섬기며 희생하며 나눕니다.
왜?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까? 사람구실 하려고 입니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하려면 온 교인들이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체의식만 가지면 섬기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전임 교역자들에게 근간에 베스트 셀러가 된 책
[ 총각네 야채가게 ] 라는 책을 구입해서 독후감을 나누었습니다.
그기서 느낀 공통점이 바로 주인의식 즉 지체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야채가게도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니 세계적으로 뜨는 가게가 되었어요.
특히 우리 직분자들 지체의식 가지고
내 자신이 내일교회가 되어 교회의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누가 교회의 성숙한 일군이 될 수 있습니까?

25절 [ 내가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
바로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자입니다. <5>
하나님의 경륜 - 경륜이 뭡니까?
경륜이란 오이코노미아(oiknomia) - 가정,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와 법, 관리, 분배라는 뜻의 <노모스>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
즉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가정관리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또한 청지기로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로 해석합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은 자가 교회의 성숙한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하나님의 경륜을 <the economy of God> 이라 번역합니다.
하나님의 경영이라는 말이지요.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경영하시는지 바로 알아야
성숙한 교회의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교회의 일군으로 삼아
세상을 온전케 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바울은 여기에 눈이 뜨여졌기 때문에 교회의 일군이 된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대다수가 교회 안에서 봉사를 회피하고 있다.
성경에 초대교회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힘들게 예수님을 믿는 것을 원치 않는 교회사의 돌연변이들이다.
이들은 교회에 숨어 들어온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교회의 가장 구석진 곳,
자신을 가릴만한 기둥 뒤에 앉아 있다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어떻게 보실까? 이다.
교회의 봉사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요,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을 제대로 하기를 원한다면
한 가지 이상의 교회 일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로 세움 받기를 원한다면
목사님을 졸라서라도 교회 일을 시켜달라고 매달려라.
내가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한번도 교회에서 봉사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내 아내가 내대신 일할 수 없으며, 내 남편이 내 대신 일할 수 없습니다.
내 부모가 내대신 일할 수 없으며, 내 자식이 내대신 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꼭해야만 하는 일을 예정해두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에 꼭 눈이 뜨여져 성숙한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숙한 일군이 꼭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6>
이것은 바로 깨닫지 못하면
실큰 일하고도 일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 일군이 아니라 삯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숙한 일군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6, 27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4:2절에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
즉 이 말은 그리스도의 일군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즉 하나님의 프로젝트의 코드 번호를 아는 자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27절에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비밀이란 게 그렇습니다.
비밀을 아는 것하고 박사하고 상관없습니다.
비밀은 비밀을 쥐고 있는 자가 가르쳐 줄 때만이 내가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은 본래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비밀이 무엇인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오
그의 몸된 교회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먼저 이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까?
왜 우리가 성숙한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까?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멋있는 설교제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축복을 유통하는 사람들 - 멋있지 않아요?
왜?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성숙한 교회의 일군이 되어야 합니까?
축복을 유통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골2:2-3절 보세요 의역하자면
왜 우리가 성숙한 일군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왜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까?
골2:3절에 [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감취었느니라 ]
롬11:33절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안에는
구원을 얻는 지혜가 있습니다. 강건한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부귀와 존귀가 그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보화를 발견하고부터는 <7>
세상의 최고 학문까지도 배설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만이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성숙한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중요한 교통 수단은 마차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차가 작기는 하지만 좌석이 3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길이 험하고 멀어서
달리다 보면 바퀴가 빠지거나 해서 고장 나는 일이 있게 되는데,
이런 경우 1등석 손님은 고장이 나도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2등석 손님은 일단 내려서 밖에서 마차가 다 고쳐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3등석 손님은 마부를 도와서 같이 땀을 흘리면서 마차를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1등석이나 2등석 손님들은 마차를 타기 전에,
3등석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탔다고 합니다.
3등석에 일을 잘하는 사람이 타야
목적지까지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3등석에 앉아 있는 교회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마차를 타고 가, 말어> 하며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믿음직한 위로를 주는 교회의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비밀코드를 아는 자가 되어
축복을 유통하는 교회의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숙한 교회의 일군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일군의 제 일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일군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교회의 일군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군이란 마음이 내키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주인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뿐인 것입니다.
교회의 일군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파하는 자입니다..

직업과 나이와 재산의 많고 적음, 남녀노소, 건강이 좋고 나쁘고 관계없이 예수 믿는 우리의 관심은 영혼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친구나 가족이 있을 때 속으로
[이 사람이 예수 믿어야 하는데! ] 라는 안타까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 신문 광고에 점술인들이 <8>
엄청나게 비싼 신문광고를 5단 기사로 매주 4~5번씩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 하나님 이 땅을 고쳐주세요.
이렇게 우상과 미신에 빠진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 예수 믿는 우리가 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총을 주옵소서 ] 이런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마약을 복용하는 연예인 스캔들이 나올 때
정치인들의 로비 사건이 터져나올 때
그러면 그렇지 다 썩어서 ! 라고 하는 비판 이전에
[저 사람들도 예수 믿어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숙한 일군입니다.
그런데 성숙한 교회 일군은 여기서 그쳐서 안됩니다.
28절에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즉 전도하여 양육하고 교회의 성숙한 일군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교육의 목적이고 훈련의 목적이요
성숙한 교회의 일군이 할 일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내일교회 앞장선 직분자 여러분들
진심으로 교회 일군으로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명의 원리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리고 그 열매 속에서 자신과 같은 나무가 나오고
짐승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자라서 어미가 되고
사람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부모가 되고
자연적인 성장입니다.
부모의 바람이 있다면 나보다 더 훌륭한 자식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장로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권사님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고의 열매는 나보다 더 훌륭한 장로를 세우고
나보다 더 신실한 권사를 세워야 하고
나 보다 더 유능한 순장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할 일인 것입니다.
더 균형있고 건강한 교회로 전진해 나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는
전도하여 양육하고 일군 세우는
자연적 성장이 이뤄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에 헌신된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일군이 되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고치고 사람을 세우는 생명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9>
바울은 이 일을 자기 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29절을 보세요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그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감당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성장하는 것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복음의 일군이 감당하는 것은 심고, 물을 주고, 환경을 가꾸는 일입니다.
바울은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적당히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을 적당히 살지 않았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충성하여
영광스러운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복음의 일군으로서 자세와 철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기 [ 힘을 다하여 ] 는
[ 애써 ] 라는 뜻으로 최선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마치 경주자가 목표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의 힘을 입어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군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방법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봉사해야 합니다.
여기 [ 수고하노라 ] 는 말도 기진 할 때까지 노력함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은 교회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즉 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성숙한 일군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교회를 위해 고난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숙한 일군이 되자면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비밀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세우는 생명 사역에
힘을 다하는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유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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