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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Buffet, just for God! (17) / 롬 11:1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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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et, just for God! (17)
롬 11: 1 - 12.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이 매우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다 드디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게 됩니다.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자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 환난과 핍박의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부흥을 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 천 명씩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날마다 구원 얻는 사람의 수가 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생명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교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가지고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그로 인해 교회와 교인이 부흥하고 성장하게 될 때 언제나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초대교회에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자마자 핍박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교회의 핍박이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가해지기 시작하자 성도들을 그 핍박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핍박을 통하여 교인들을 흩으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붙기 시작한 성령의 불을 끄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계산 착오였습니다. 사탄이 초대교회와 교인들을 너무 우습게 보았습니다. 저들은 사탄의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졌으나 전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뭉쳐있을 때에도 강했지만 흩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강했습니다. 때문에 흩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들이 흩어져 가는 곳 마다 성령의 불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흩어지지 말고 모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오히려 모여 있는 것 보다 흩어지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에 모여 있게 하셨고, 막상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저들을 흩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흩음을 통하여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이와 같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음은 남한보다 북한 쪽으로 먼저 들어 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북한이 남한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크고 빨랐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옛날 평양과 정주와 선천은 80% 이상이 교인이었으며 그와 같은 곳들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불리었던 곳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부흥과 똑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 함을 받은 후 일어났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도 우리한국교회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1907년 대 회개운동 이후 일어났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길선주 목사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일어나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죽은 친구의 재산을 정리해 주면서 그 중 얼마를 떼어 먹었다는 사실을 울면서 자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인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죄를 울며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저녁에 시작한 부흥회는 새벽까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회개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전국의 교회가 똑같은 회개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때 우리 한국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1907년 대 회개운동이라고 부릅니다. 1907년 대 회개운동 이후 우리 한국 교회는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와 똑같이 날마다 구원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어 1907년 대 부흥운동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참된 모습을 갖게 될 때 교회는 언제나 부흥하고 성장하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였을 때에도 계속해서 성령 충만 함이 계속되어져야만 하는데, 성장이 가져온 열매에 급급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는 부패하게 되어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하여 부흥과 성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결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과 결론입니다. 문제는 부흥과 성장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계속적인 성령충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회의 사이즈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이즈와 관계없이 늘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교회의 건강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사이즈가 작으면 건강할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사이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에서와 우리 한국교회에서 보여 진 바와 같이 성령충만함을 통하여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을 때 언제나 부흥과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통하여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있었듯이 우리 한국교회도 1907년 대 부흥운동이 있은 후 그에 못지않은 핍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후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통하여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하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교회에 대한 핍박을 끝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평양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점령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정시대 때 신사참배보다 더 심한 박해가 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이북의 많은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 올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은 그냥 자유를 찾아 내려온 것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그 자유는 그냥 자유가 아니라 신앙의 자유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예루살렘 핍박 이후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던 것과 똑같은 일이 우리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섬긴지 불과 반세기 만에 남한의 교회는 세계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남한이 복음화 되면서부터 남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예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언제나 보면 기독교신앙을 가진 개인과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중심이 북한에 있었을 때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 보다 월등하다시피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북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옮겨오게 되었을 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남한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성함이 남한 교회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남한이 격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 우리 남한 교회의 타락과 부패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남한과 남한교회는 북한과 특히 북한의 교회에 대하여 큰 빚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식으로는 공산화를 통한 핍박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이루어졌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식과 생각은 사도행전 초대교회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성령 충만 함을 받은 교회와 교인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저들을 통하여 영육간의 복을 세상으로 펼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의 사명과 축복은 자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고생과 핍박을 감수하면서라도 남을 잘 살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명을 위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은 비록 잠시 동안이라고는 하여도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한의 복음화를 위하여 북한을 영영히 버리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하여 답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핍박을 가하시고 이스라엘을 영영히 버리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바울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롬 1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그 땅에 의인 7천명을 남겨 놓으셨으며, 이방의 부흥과 성장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건강한 영적 시기가 일어나게 되어 드디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회복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 되는 날 세상은 예루살렘의 핍박을 통하여 받은 세상은 그 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 리요> (롬 11: 11 - 12)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남한 교회를 통하여 다시 북한과 북한 교회를 살리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북한과 북한 교회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히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북한에 북한과 북한을 살릴 의인 7천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에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의인 7천을 하나님은 남겨 두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들이 북한 교회 회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과 남한 교회의 풍성함이 저들로 하여금 건강한 영적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저들이 전보다 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결국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우리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의 덕을 보게 될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틀림없이 북한은 우리 보다 더 예수를 잘 믿는 나라가 다시 될 것입니다. 우리 남한 교회가 조금만 도와주면 (사실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것) 저들은 신속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일어날 뿐 아니라 오늘 성경의 표현대로 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남한 교회는 다시 북한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들을 통하여 다시 예수 믿는 것과 교회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 교회를 통하여 우리 남한 교회가 새로워 질 것입니다. 건강해 질 것입니다.

북한 교회는 우리 남한 교회를 통하여 살아나고, 우리 남한 교회는 북한 교회를 통하여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가 하나 되어 세상과 세계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같았던 평양을 치신 이유입니다. 잠시 사랑하는 평양을 치심으로 복음이 남한으로 흩어지게 되고 남한이 풍성해짐을 통해 다시 평양을 회복하시고, 평양의 회복을 통하여 남한 교회를 다시 한번 거듭나게 하시고, 남한과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세계와 세상을 축복하시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과 같이 예루살렘과 같은 평양이 핍박을 받지 않았다면 북한은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남한으로 내려 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 계속 되어야 할 축복의 순환은 우리 남한 교회의 몫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육적 축복의 빚을 갚아야만 합니다. 북한과 북한 교회에 갚아야만 합니다.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몫을 나누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선교가 있지만 그 중에 우선순위를 두고 우리가 하여야 선교가 저는 바로 북한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빚을 갚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몫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오래 전에 북한 선교에 헌신하고 계시는 남서울 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이 통일이 되려면 우리 재산의 1/3은 내 놓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수치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만큼의 희생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역설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나름대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것을 원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할 마음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후면 2007년이 되는데, 2007년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우리 땅의 오순절 사건이었던 1907년 대 회개운동과 대 부흥운동이 있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입니다.
2007년에 다시 평양에서 대 회개와 대 부흥의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1907년의 역사는 길선주 목사님에 의하여 촉발이 되었으나, 2007년의 역사는 우리 남한 교회가 촉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양은 예루살렘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버리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평양을 찾으실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염려와 회의를 버리고 북한에 투자하고 북한에 선교 해야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위한 뷔페의 메뉴는 ‘북한 선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 북한선교를 위한 모임이 결성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활발하게 북한선교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북한선교의 대와 맥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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