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일을 거룩히 지킵시다 (1) / 출 20:8 - 11

  • 잡초 잡초
  • 632
  • 0

첨부 1



주일을 거룩히 지킵시다 (1) 
출애굽기 20 : 8 - 11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부동의 신앙적 이데올로기는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생활원리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총체화 시키면 곧 교회중심의 생활원리가 됩니다. 교회중심 생활의 핵심은 바로 주일 성수에 있고 주일 성수는 일차적으로 주일예배로부터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될 것은 주일예배는 한 주간 동안에 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종류의 예배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 차원에서 모든 예배 중에 하나일 뿐 여타 예배와 차별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주중에 행해지는 모든 예배가 주일예배로 집중화 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주중에 드려지는 여러 종류의 예배와 주일예배는 철저한 우정관계를 견지해야만 합니다.

Ⅰ. 주일예배를 신앙생활의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 20장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룩』이란 말은 '구별시킨다'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께 행하는 예배로서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주일예배 참석은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이며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는 주일을 기다리고 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교회에 축복하신 모든 비밀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주일예배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 시키셨고(출20:8-11), 주일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고전15:4-5).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이고 순종이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의무적이고 수동적인 성도들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형성'(the establishment of a relationship)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견지함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예배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성도의 규칙적인 예배 생활은 흔들림이 없는 삶을 약속합니다.

혹 흔들릴지라도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규칙적인 예배생활입니다. 성도들이 자주 시험에 넘어지는 원인은 평상시 주일예배에 대한 소홀함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문제나 위험이 올 때는 주일을 더 가까이 하고 예배에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성도는 예배생활에 변함없이 꾸준한 성도입니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성도입니다.

시편 73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방황하는 신앙생활은 주일예배를 신앙생활의 영적 최우선(Spiritual Priorities)순위에 두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참으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주일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등록 교인이 곧 주일예배 참석 교인이 되는 날을 만드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주일예배를 통해 부흥을 이루는 교회를 만들어 등록 교인보다 주일 출석이 더 많은 교회가 되는 Vision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Ⅱ. 주일예배에 대한 실제적 행동강령입 니다.

본문 20장 10절에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주일예배를 억지로라도 행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5절에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여러 번 반복되고 강조된 명령입니다. 피곤하고 바쁘고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을 때 먼저 교회로 방향을 돌리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도 교회를 가까이 하고 힘이 드는 일이 있을 때는 교회를 붙잡으면 결코 낙심은 없습니다. 자율적인 예배자는 최고의 예배자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라도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복입니다.

2) 주일예배를 대용품이 없는 절대적인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절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는 하나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절대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을 모두 상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과 하나님의 유익, 나의 몫과 하나님의 몫, 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나 예배자는 하나님을 절대화시킬 때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상대화시켜 비교하는 시간보다 절대화시켜서 순종하는 시간을 더 높이 두어야 합니다.

3) 주일예배에 대해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것에 예배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양보는 좋은 행동이지만 예배까지는 양보하면 성도 자신은 무너집니다. 예배는 성도를 살게 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는 살아있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붙잡으십시오. 놓치지 마십시오. 누가 당신을 유혹할 때 예배의 자리만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등한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입니다.

4) 주일예배를 대용품이 없는 절대가치에 두는 것입 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배에는 얼마나 많은 은혜와 축복들이 숨겨져 있는지 그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축복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음성을 듣고 치유를 경험하고 능력을 받고 확신과 용기를 얻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들이 나타나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5) 주일예배는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행하는 행위에서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행위로 진보하는 성숙된 신앙을 필요로 합니다. 목사만이 예배의 봉사자가 아닙니다. 온 성도는 모두 예배를 돕고 예배를 위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무엇을 봉사할까 찾는 자세가 예배자의 바른 태도입니다. 이것은 보는 예배에서 참여의 예배로, 소극적인 예배에서 적극적인 예배로의 전환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전임 봉사자와 자원 봉사자가 많은 교회가 예배를 통한 폭발적인 성장을 보게 됩니다. (1) 봉사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출애굽기 30장 16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위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고 했습니다. (2) 봉사는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민수기 16장 9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라고 했습니다. (3) 봉사는 직분자의 본분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Ⅲ. 주일예배를 능동적으로 기대해야 합 니다.

본문 20장 9절에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① 네 문안에 있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10) ② 복되게 하여(20:11) ③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 출애굽기 23장 12절에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1절에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찌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찌며』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5장 2절에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5장 3절에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3장 3절에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10장 31절에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습니다. '예배를 기대한다'(expect)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배의 가치를 인정하고 예배로부터의 결과를 얻고자하는 열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14편 2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이라고 했습니다. 찾는다는 것이 바로 간절한 기대입니다. 예배를 즐거워하며, 예배를 기다리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에 희망을 갖는 예배자는 예배의 신비(mystical)와 예배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미지의 일들(the notyet-known)과의 만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자기 각성(self-awareness)이 필요하고 예배의 부흥이 시급하며 예배의 변화를 서둘러야 할 때 입니다. 기대는 예배하는 자의 최고의 꿈입니다. 꿈을 잃으면 사람은 약해집니다. 강한 성도는 예배를 드릴 때 간절한 희망을 품는 사람입니다.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역동성(dynamic)이 없는 이유는 나의 영적 기대감이 시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불을 붙이고 믿음의 꿈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의 모든 순서 하나하나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축복하시는 임마누엘 현장을 체험하게 됩니다.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말하기를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expect great thing from God"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것을 시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예배에 언제나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예배를 앙망하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이사야 33장 2절에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일예배는 곧 우리의 생활입니다. 예배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은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열정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의미 없는 예배에는 열정을 보일 수 없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예배는 무감각한 예배가 됩니다. 열정은 진정한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찬양을 할 때, 기도를 할 때, 설교를 들을 때 모든 순서에 제물이 되어야 열정이 살아있게 됩니다. 예배는 마음을 쏟아 붓는 헌신의 행위입니다. 시편 110편 3절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헌신은 젊음의 상징입니다. 예배 자체가 젊어야 합니다. 예배가 늙으면 안 됩니다. 갈보리교회를 역동적인(dynamic) 주일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는 영광과 은혜가 동시에 일하는 시간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은 예배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예배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쁨을 보게 됩니다.

시편 107편 9절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 욕구가 있습니다. 보다 나은 의식주의 욕구, 지식함양의 욕구, 안전의 욕구, 안정의 욕구, 공포탈강의 욕구, 사랑의 욕구, 성취의 욕구, 행복의 욕구, 소속의 욕구, 치료의 욕구 등이 있습니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 바로 교회이며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제공하신 최고의 축복된 자리입니다.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자리입니다. 평안과 기쁨을 원한다면 주일예배에 기대를 가지고 참석해 보십시오. 위로부터 오는 넉넉한 공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시편 84편 1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수사로도 설명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이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 속에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기대를 가지고 그 감추인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사야 4장 5-6절에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변화 없는 예배를 고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에 적지 않은 불행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성도들의 공급원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예배를 향한 도전이 바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사명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의 절대 필연성에서부터 예배대상, 예배목적이 정확하게 정립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갈보리교회는 새로운 예배 혁명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