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삶을 묶는 쇠사슬에서 자유하라 (행 12:1-12)

  • 잡초 잡초
  • 364
  • 0

첨부 1


삶을 묶는 쇠사슬에서 자유하라
젊은이 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사도행전 12 : 1-12

  누가 형무소와 직장을 이렇게 비교해 놓은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형무소 : 대부분의 시간을  2-3평의 방에서 보낸다
  직장 : 대부분의 시간을 2-3평의 칸막이 사무실에서 보낸다
  형무소 : 교도관이 모든 문을 열어주고 잠가준다
  직장 : 경비원이 모든 문을 열어주고 잠가준다
  형무소 : 가끔 갈구는 교도관들이 있다
  직장 : 가끔 갈구는 상사들이 있다
  형무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갑이라는 쇠사슬을 채운다
  직장: 언제나 스트레스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

  직장 생활이 쇠사슬처럼 우리의 삶을 묶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묶는 쇠사슬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장 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쇠사슬이 삶을 위협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쇠사슬이 무엇입니까?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큰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큰 일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큰 위험이 따라옵니다. 질병이 우리의 삶을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의 삶을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삶을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의 삶을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엇이 삶을 묶고 있습니까? 물질이 우리의 삶을 묶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쇠사슬이 삶을 조이고 묶어 있습니까?

  본문에는 베드로라는 사람이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이 쇠사슬은 감옥에서 묶인 쇠사슬로 꼼짝 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에서 결코 삶이 파멸되지 않고 자유 하게 됩니다.

  헤롯 아그립바 왕이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뒀습니다. 베드로는 이번이 세 번째 감옥입니다. 다음 날 유월절인데 이 때 유대인들 앞에 이끌어 내어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안 교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옥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군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잡니다. 이 때 홀연히 주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웁니다. 급히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 손에서 쇠사슬이 벗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이끌고 나오자 옥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천사는 떠납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정신이 들고나서 주의 천사가 도우신 것을 알고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보니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베드로가 쇠사슬을 끊고 자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 속에서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을까요?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에서 어떻게 자유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나를 묶고 있는 이 쇠사슬을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베드로의 상황을 보면서 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 나는 결코 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합니다.

  쇠사슬이 우리의 삶을 묶는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나는 결코 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결코 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에 묶일 때 스스로 포기하고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6절을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는 이런 위협 속에서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대단한 배짱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헤롯은 베드로를 꺼내어 모든 유대인들 앞에서 공개처형을 시킬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히 말입니다.

  잠을 어디서 자고 있습니까? 두 군사 틈에서 두 파수군들이 지키는 상황에서 잠을 잡니다. 참 안전하죠. 믿음은 이런 담대함을 낳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 요한복음 21장 19절에 베드로는 어떻게 죽을 것이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는 적어도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쇠사슬이 나를 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감회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하루를 온전히 기도함으로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도 죽을 때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 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사명이 다할 때까지 파멸 당하지 않습니다. 환경이란 쇠사슬이 나를 묶는다할지라도, 물질이란 쇠사슬이 나를 묶는다할지라도, 핍박이란 쇠사슬이 나를 묶는다할지라도, 스트레스란 쇠사슬이 나를 묶는다할지라도, 죄라는 쇠사슬이 나를 묶는다 할지라도, 사단이 쇠사슬로 나를 묶는다할지라도, 내가 결코 파멸 당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쓰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둘째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 모든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야합니다.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이 나를 꼼짝 못하게 묶고 있다할지라도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선한 결과로 이끌어 가신다. 이 절대주권을 믿으면 우리는 담대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과정과 결과를 선한 뜻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쇠사슬은 나의 몸을 내 생활을 내 삶을 묶을 수 있지만 내 믿음은 묶을 수 없습니다. 쇠사슬은 하나님을 묶을 만큼 크지도 않습니다. 쇠사슬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신앙을 가졌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베드로는 이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 절대주권 신앙은 쇠사슬을 녹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쇠사슬의 힘을 소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이렇게 베드로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그랬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후서 2장 9절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 날에 형벌 아래 두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쇠사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두려워할 것은 내 믿음이 떨어질까를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한 청년이 상담을 해 왔습니다. 그는 믿는 회사에 기도하고 준비하여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해왔습니다. 문제인즉 직장 상사는 믿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너무나 깊은 믿음에 빠지다보니 심지어 꿈을 꾸어도 이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나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혹 이런 경우를 체험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상사는 그것이 조금 지나칩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직원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상사는 그의 신앙 스타일이 매우 건전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의 패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꿈을 꾸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일을 계획하다가 그 꿈을 꾸면 그 꿈 방법대로 실행해 나갑니다. 믿음이 대단한 것이죠. 그런데 그 꿈을 모든 삶에 적용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 것입니다. 한 번은 그 상사의 꿈속에서 이 청년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이 청년이 상사를 보고 인사를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꿈을 가지고 상사가 이 형제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왜 인사를 하지 않고 갔냐? 회사에 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여 이 형제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관심법 비슷합니다. 이런 쇠사슬에 묶여 이 형제가 고통스러워합니다. 매사에 이런 식으로 상사는 형제를 관리합니다.

  저는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해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도록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얼마 후 결국 그 상사는 운영의 실패로 물러나고 말았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방법대로 인도하시지 사람의 꿈으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현실의 여러 쇠사슬이 삶을 위협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쇠사슬이 우리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베드로보다는 그래도 낳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내일 아침이면 공개처형 되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당당하잖아요. 우리는 그 형편보다 훨씬 낳지 않습니까? 나를 얽매는 쇠사슬을 두려워하지 말로 주님을 향한 절대주권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믿습니까? <아멘>

  셋째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이 나를 억압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사람들도 염려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한계를 느끼면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손을 쇠사슬로 묶고, 발을 쇠사슬로 채워도 우리의 입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입을 재갈먹인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만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하늘을 향해서 열려 있지 않습니까? 쇠사슬이 아무리 두꺼워도 내 기도는 막을 수 없습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중보기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이 때 성도들은 사도 베드로가 헤롯의 작당들에게 잡혀 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5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의 쇠사슬을 자유롭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7절에서 10절까지 보면, 베드로가 이 와중에도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내려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급히 일어나라 깨웁니다. 쇠사슬이 벗겨집니다. 천사가 신발을 들라하고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고 합니다. 파수군들이 지키고 있는데 파수문을 지납니다. 하나님이 파수군들의 눈을 못 보게 한 것인지 파수군들이 이 사실을 모릅니다. 성의 쇠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천사는 베드로를 석방시키고 떠납니다. 베드로는 이 때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자기를 구원해주신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집에 가보니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중보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천사들을 사용하여 베드로의 쇠사슬을 벗겨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교회에 제지공장에 다니는 김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주일날이면 한 달에 두 번은 일을 나가야 합니다. 교대근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일을 나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일을 대신 해야 합니다. 누가 일을 하지 않고 기계를 쉬면 한 번 쉬고 다시 운전하는 데는 막대한 손실을 봅니다. 그러기에 기계를 특별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일년 내내 쉴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쉰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닙니다. 김 집사님은 항상 주일에 일하는 문제가 쇠사슬처럼 자신의 신앙을 묶습니다. 고민입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일을 해야하는 주일이면 새벽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1년을 지났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다음 해에 노조위원장에 선출되었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찾고 구하는 자에게 선하신 뜻으로 인도해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아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해야하지만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자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니 쇠사슬에 묶여 있는 우리의 형제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더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쇠사슬도 우리의 기도의 마음과 기도의 입술을 묶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결코 묵인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쇠사슬을 능히 벗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묶인 쇠사슬을 끊을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쇠사슬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맺는 말

  세상은 우리를 파괴시키기 위해 우리를 쇠사슬로 묶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활동을 막기 위해 우리를 쇠사슬로 묶습니다. 환경이라는 쇠사슬로 우리를 묶습니다. 물질이라는 쇠사슬로 무리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직장의 업무와 사람들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쇠사슬로 꼭꼭 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매임을 당할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었고,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 힘 앞에서도 자유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혹 지금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까? 이 기회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바꾸십시오.

  내 삶을 위협하는 쇠사슬에 묶인 현장에서 오직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쇠사슬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면 모든 것을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십시오. 당신은 담대함을 얻을 것입니다. 쇠사슬이 쇳줄로 보이지 않고 종이조각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쇠사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쇠사슬에 묶여 있는 성도들의 신앙을 보고 있습니다. 그 신앙을 보고 쇠사슬을 종이조각처럼 사라지게 하는 기적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가 조금 기도하기 힘든 자리여도 기도의 입술을 닫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닫지 마십시오. 전혀 기도할 힘이 없습니까? 주위에 여러분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도 어여삐 여기십시오.

  기도는 천사를 움직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든, 자연을 통해서든, 사람을 통해서든, 역사를 바꾸어서든 쇠사슬을 끊고 마실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길입니다. 삶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있습니까? 이 쇠사슬의 현실에 속지 마십시오. 현실은 마귀의 장난입니다. 쇠사슬이 현실이 아닙니다. 쇠사슬이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현실을 다스리고 만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