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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삼상 16:4-13, 약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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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성경본문 : 삼상 16:4-13, 약2:1-5

요사히 최고로 유행하는 말은 짱이라는 말입니다. 얼짱, 몸짱, 인기짱, 돈짱, 반짱, 맞짱, 맛도짱, 가격도짱, 정치얼짱, 운동얼짱, 장군얼짱, 박사얼짱 등 짱으로 끝나는 말들입니다. 짱 신드롬은 디지털카메라로 예쁜 얼굴을 인터넷에 올려 얼굴이 짱이라는 뜻인 얼짱이 등장하면서 발전했습니다.

한 여고생이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들의 사진을 모아 인터넷에 올린 것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얼짱 카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짱 아줌마는 날씬한 몸매를 잘 유지하여 CF를 찍고 방송계에 진출했습니다. 실력이 없어도 얼굴만 예쁘면 스타가 되고, 사람의 죄질이 어떻든 얼굴만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수배전단에 실린 한 예쁜 여성강도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게시판에 올리자 강도 얼짱이 됐고, 급기야 인터넷에 크고 작은 팬클럽들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범죄자의 팬클럽에 대한 저항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덕적으로 어떻든 예쁘고, 잘 생기고, 멋지기만 하면 모든게 통한다는 외모지상주의에 푹 빠져있습니다.

안양대학 추태화교수는 청소년들 사이의 은어였던 얼짱, 몸짱이 이제는 기성세대로까지 번져 무분별한 다이어트 열풍을 낳고, 급기야 강도짱이 등장하는 등 심각한 외모중심주의로 흘렀으며 가치관마저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헬스클럽이 만원이고, 헬스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의 아버지 여 불위는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6가지 이론을 말했습니다. 첫째 사람이 즐거울때 그 즐거움에 얼마나 빠져 드는가를 보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때 만족하게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즐거운 일이 있을때 즐거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다 즐거워하고 있는데 혼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다 기뻐하는 일에 옆에서 이상한 말을 해서 초를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즐거운 일이 있을때 즐겁지 않았던 일을 생각해 내어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됨의 기본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쁠때 얼마나 그 기쁨을 자제 할 수 있느냐를 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기쁘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자기의 기쁜 마음을 억제하기도 해야 합니다. 학생들 입학할 때 볼 수 있는 일인데 우리 아들은 합격을 했는데 이웃집 아들은 떨어졌으면 우리아들 합격했다는 말을 못합니다. 기뻐도 기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기쁜 마음을 억제 할 줄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기쁘다고 촐랑거리는 사람은 경망스러운 사람입니다. 셋째 괴로울때 얼마나 참아 내는가를 보라고 했습니다. 괴롭고 아프고 할 때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그 괴로움과 그 아픔을 스스로 참아냅니다. 병원에 갔을때 쉽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입원해서 치료 받다보면 심하게 아플때가 있고 수술을 하기도하고 실밥을 빼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꽤 아프겠는데도 불구하고 잘 참아냅니다. 분명히 굉장히 아프겠는데 어떻게 저리도 잘 참는가 보는 사람이 그 인격을 높이 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아프다고 얼마나 야단인지 주변 사람까지 견디기 어렵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인격적으로 대우 받기가 어렵습니다. 괴로울때 스스로 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넷째 두려울때 얼마나 내색을 하지 아니하는가를 보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랄 일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신중히 생각을 하고 잘 견딥니다. 이런 사람이 바람직한 사람입니다. 다섯째 슬플때 그 슬픔을 얼마나 스스로 삭일수 있느냐를 보라고 했습니다. 슬픈 마음을 스스로 삭일줄 알아야합니다. 내가 스스로 삭여야지 누가도와 줄 수 없습니다. 나의 슬픈 마음은 내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픈 마음을 삼키고 잘 삭여 낼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여섯째 성이 났을때나 화가 났을때 얼마나 잘 참느냐를 보라고 했습니다. 불 같이 화가 나지만 잘 다스립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쓸만한 사람입니다. 화가 났을때 이것을 억누르지 못하고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덜된 사람입니다. 이 여섯가지 이론에 입각하여 사람을 평가하라고 했습니다.
성공학자중의 대가라고 하는 지그지글러가 말하기를 인생의 고도를 결정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고 했습니다. 재능이 그 사람의 값을 높혀 주는게 아니고 그 사람의 값은 그 사람의 삶의 자세로 매겨집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사무엘선지자가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집에 찾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울이 겸손할 때 왕으로 세웠지만 이제는 교만하므로 내가 버렸노라 그러므로 다음 왕이 될 사람을 네가 찾아가서 기름을 부어라고 해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이새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너의 아들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신 다음 차례 왕이 있으므로 내가 기름을 준비하였노라 너의 아들들을 내게 보이라고 했습니다. 맏아들 엘리압을 보니 잘 생겼고, 키가 크고, 모든 것이 좋아 보여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더니 하나님은 그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7절에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깜짝 놀랬습니다. 그리고 둘째아들 아비나답, 셋째 삼마에게도 하나님은 허락지 않고 결국 집안에 있는 일곱아들을 다 지나게 했는데도 하나님의 기름을 부을 자는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기를 너의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그때에 이새는 들에서 말째가 양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을 데려오라고해서 데려왔는데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됨이 다른 형들과 달랐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 왕이 될 사람이 있어서 사무엘선지가가  기름을 붓기 위해서 오셨는데 아버지가 오라고 하니까 형들은 다 갈것이니 막내 너는 여기서 양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왕이 선택되는 참으로 중요한 시간인데 다윗은 나도 가겠다고 나서지 아니하고 형들이 시키는대로 들에 남아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사람됨이 어릴때부터 특별했습니다. 성경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995회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 중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7절을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릴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중심은 원어로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에 보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는다고 했고, 로마서 2장 11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9절에 하나님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다고 했고, 골로새서 3장 25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6절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고,

오늘 읽은 야고보서 2장 1절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고, 야고보서 2장 9절에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장 17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재판 할 때 외모를 보지 말라고 했고, 신명기 16장 19절에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6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였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르게 사람을 외모로만 보고 외모로만 취하고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위대한일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외모가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눈은 작고 툭 튀어나오고 키는 작달막하고 아주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칼빈은 몸과 얼굴이 빼빼 마른데다 눈에는 늘 진물이 있는 볼품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링컨은 몸과 얼굴이 짜임새 없이 깡마르고 다리는 길어서 별명이 고릴라였습니다. 사도바울도 키가 작고 시력도 나쁘고 전설에 따르면 간질병까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미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이 쓰시고저 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쓰십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에 하나인 스텐포드대학을 창립하게 된 유래에 의하면 어느 노부부가 생의 마지막을 의식하면서 자기의 재산전부를 교육사업에 헌납할 생각으로 어느 날 명문대로 알려진 하바드대학을 방문하였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니까 허수룩하게 입은 노인 부부를 본 수위가 상당히 불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이때 노인부부가 총장님을 만나려왔습니다 하니까 수위가 아주 경멸하는 태도로 괄시를 했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은 노인부부는 이런 대학 하나 설립하려면 얼마나 듭니까? 하고 물었더니 수위는 들은 척도 안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대학이 미국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스텐포드대학입니다. 이런 사연을 후에 알게 된 하바드대학에서는 크게 아쉬워하였고, 그 뒤로부터 하바드대학 정문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이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새겨야하겠습니다.

다윗은 믿음이 있고, 신앙적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확실하고, 그 믿음이 생활 속에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에서 36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믿음이 있었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실수가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서 책에 써놓은 것을 보면 성경에 만도 스무군데 이상 씻을 수 없는 실수와 죄상이 다윗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겸손하여 즉시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정직함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회개에서 중요한 점은 절대로 변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법이 없습니다. 책임을 여건에 돌리지 아니하고 흔히 말하는 사람인고로 하는 따위의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와의 관계를 보면 성경에는 밧세바가 다윗을 유혹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죄를 회개할 때 다윗은 한번도 밧세바를 들먹이지 않았습니다. 실수였다고도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책임을 집니다. 그것은 내 잘못입니다. 아무 변명도 없고 책임 전가의식도 없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아파 죽어 갈 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고 사흘동안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습니다. 왕이 저렇게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죽을까봐 걱정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이렇게 죽었으니 왕에게 어떻게 죽었다는 보고를 할까 하고 신하들이 크게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자리에서 일어나서 온몸을 씻고 음식을 먹고, 천연히 나가 왕의 일을 했습니다. 신하들이 놀래 왕에게 물어보기를 아들을 위해서 그다지도 슬퍼하시더니 죽고나니 어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왕이 대답하기를 그 아이가 죽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혹시나 용서하실까 함이요 이제 죽었으니 하나님께서 데려 가신 것이므로 그 아이는 내게로 올수 없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믿고 아주 깨끗하게 과거로부터 벗어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할 일을 했습니다. 시편 23편 6절에 보면 다윗이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만 순종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십여년 동안 쫓아 다닐때에 다윗은 얼마든지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굴 안에서도 있었고, 광야에 있을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에게 손을 대지 않고 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장인되는 사울왕이 사위인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지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절대로 대항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끝까지 사울왕을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 섬겼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고 겸손입니다.

시편 131편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 하나이다 나는 겸손하고 나는 큰일을 바라지 않고 이적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2절에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겸손하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키가 작고 세리장으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고 세리마태의 중심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18년 동안 귀신이 들린 여자의 중심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니엘의 중심을 보시고 이는 참 이스라엘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사울의 중심을 보시고 택하여 사도 바울이 되게 했습니다. 일곱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의 중심을 보시고 선택하였고, 베다니에 살았던 나사로 삼남매의 중심을 보시고 그 가족을 사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센씨병자의 중심을 보시고 손을 데어 낫게 하여 주셨고, 시각장애인의 중심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사람을 외모로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중심을 보아야 하고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처럼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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