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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누가 19:28-40

오늘 주신 본문, 누가복음 19장 28절을 보니, 우리 예수님,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그것도 우리 예수님, 무리 보다 먼저, 제자들보다도 앞서서,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부지런히 길을 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예수님의 활동 무대는 주로 갈릴리였습니다.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갈릴리에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또한 갈릴리에서 수많은 이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곳 역시 갈릴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가고 계십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은 누가 오라고 초청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가기만 하면 환영받을 그런 길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고 계십니다.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은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간다는 것은 기본이 적들과의 한판 전쟁을 전제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맨 손으로 그 길을 가고 계십니다. 잘 훈련된 군인들도 없습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일 만한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예수님 가는 길은 한 마디로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가는 이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길 끝에 놓여 있는 수난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주님도 마음이 착잡하시어, 가던 길을 멈추시고, 제자들에게 하소연을 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때마다 딴 생각만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하던 답답한 장면을 한 군데만 확인하고 갑니다. / 누가 18:31-34 / (읽기) / 거기 34절에 보니,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우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리는 종려주일입니다. 또한 오늘 이후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 주님, 지상에 머무셨던 마지막 일주일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하는 거룩한 주간입니다.

우리는 2004년도 고난주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연속 기도의 제단을 쌓으려고 합니다. 내일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오는 금요일 밤 기도회까지, 날마다 기도의 제단을 쌓을 터인데요, 하루 한 시간씩 토막을 내어, 각 시간마다 두 분 이상씩 짝을 지어, 기도의 제단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미 신청하신 분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직 신청하지 못하신 분, 오늘까지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함으로, 고난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다 참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연속기도를 통하여 이루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드리는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안타까이 말씀하시는데, 우리 제자들이 그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해서 주님 홀로 고난의 길을 앞서 가시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기도의 행진에 모두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 우리 주님,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19장 29절과 30절에 가서 보니, 우리 예수님, 예루살렘 가까이에 도착하시자, 갑자기 제자 둘을 뽑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며, 좀 엉뚱한 명령을 하십니다. 그 마을에 가면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을 터이니, 풀어 끌고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저 유명한 나귀새끼가 등장하는 장면인데요, 여기서 먼저 30절의 맨 마지막 대목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무슨 뜻입니까? 주님의 일에 쓰임받기 위해선 매여 있는 것을 풀어 버리고 주님께 나아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엉뚱한 일에 매여 있진 않습니까? 아직도 썩어져 갈 구습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옛 사람에 매여, 어둠의 거리를 방황하고 있진 않습니까? 여전히 세속의 유혹에 마음이 매여 갈지자로 휘청거리진 않습니까? 지금 나의 인생을 얽어매고 있는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 주님 아닌 것에 매여 있는 한, 결코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우리 주님, 매여 있는 것을 풀어 끌고 오라 하신 것입니다. 주님 아닌 것에 매여 있는 그 모든 것, 과감하게 다 풀어내시고, 이제로부터 오직 주님께만 매이시기 바랍니다.

<풀어 끌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주로 나귀에게 집중했었습니다. 이 말은 나귀 주인에 대해선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나귀새끼만 사랑하신 것 아닙니다. 나귀새끼와 함께 나귀 임자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귀새끼 보다는 그 나귀 주인에게 더 깊은 관심을 쏟고 계셨는지 모릅니다. 해서 오늘은 나귀 임자를 다시 만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그러면 나귀 임자를 만나러 말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1. 나귀 임자는, 예수님이 잘 알고 계시던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3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 19:31 / (읽기) /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나귀 임자를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사실을 확인합니다. 나귀 임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임자가 나타나 어찌하여 나귀새끼를 풀어 가느냐고 말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그 때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십니다!”나귀 임자에게 주신 참으로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19장 32절을 보니, 이 말씀 받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이 가서 말씀하신대로 나귀새끼와 나귀 임자를 만납니다. 먼저 나귀새끼를 발견한 제자들, 나귀를 끌고 오려고 매인 것을 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나귀 임자가 나타나 어찌하여 나귀를 푸느냐고 화를 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남의 나귀새끼를 돈도 내지 않고 그냥 풀어가려고 하니, 그 어느 임자라서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런데 33절에서 34절을 거쳐 35절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상식과 통념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납니다. 한 바탕 싸움이라도 일어나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남의 나귀를 풀어 가느냐고 항의하는 임자에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십니다!”라고 말 한 마디 건네자, 그만 상황이 종료되고 만 것입니다. 나귀 임자가 순순히 나귀를 풀어주었던 까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그 나귀의 임자를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이름 정도 아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사람을 보내, 내가 쓰겠다고 전하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순순히 내 줄 사람이라는 믿음이 갈 정도로 잘 알고 계시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귀 임자가 오히려 부러워집니다. 왜? 주님이 그만큼 알아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만큼 믿어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주님이 알아주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님 편안한 마음으로, 나에게 무엇이나 요청하실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말씀 한 마디에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드린다는 것,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소중하고 복된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알아주시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늘 있을 역사적인 공동의회와 관련하여 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다섯 분의 장로님을 세우는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또한 이런 것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주께서 쓰시겠습니다! 라는 말씀 한 마디에,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두 말 없이 내어 드릴 수 있는 그런 분, 주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신 그런 분으로, 다섯 분의 장로님을 세워 주시옵소서! 아멘!”이렇게 기도하며, 예배 후 거룩한 마음으로 신성한 투표에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알아주시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날에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주님의 호통을 듣지 않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나귀 임자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34절과 35절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은, 나귀 임자가 자기 나귀를 쓰시겠다고 하시는 그 분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전혀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께서 쓰시려고 하신다는 말 한 마디에, 마치 약속했던 것을 내 드리는 것처럼, 순순히 내어 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귀 임자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쓰신다는 말 한 마디에 그렇다면 쓰셔야지요, 즉시 순종할 수 있을 만큼,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름답고 또한 은혜가 되는 장면입니다. 만약 나귀 임자가 “난 예수가 누군지 모르니 그 나귀 거기 도로 매 놓으시오!”라고 말했다면, 참으로 난감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을 잘 아는 주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만 들어도, 그 분의 속내를 헤아려 드릴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잘 알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면 잘 알게 됩니다. 사랑하면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다 드릴 수 있습니다. 부디, 꼭, 주님을 잘 아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미 주님을 잘 알고 계시는 그런 분으로, 다섯 분의 장로님을 세워 주십사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 주님을 잘 알고 있는 그런 분으로, 다섯 분의 우리 장로님을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분, 아니 주님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도 전에, 벌써 주님이 필요로 하시는 그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칠 수 있는 그런 분으로, 우리의 장로님들을 세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나귀 임자는, 이름 없는 제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나귀 임자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어디에도 그의 이름이 없습니다. 누가 선생님이야 생략법의 대가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더 놀라운 점은 나귀 임자 자신도 자기 이름을 밝히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내가 무언가를 내는 경우, 자기 이름도 함께 알려지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나귀 새끼 한 마리 냈으니, 최소한 자기 이름 정도는 알려지기를 원했을 법 합니다. 아마 우리네 현대인들 같았으면 나귀를 끌고 가는 제자들을 붙들고 신신당부했을 것입니다.

“저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입니다, 일년 전에 주님이 살려 주셨던 그 나사로가 여기 나귀새끼를 두 말도 하지 않고 보내드린다고 꼭 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이름은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입니다.”

“저는 벳바게에 사는 시몬입니다. 지난번에 문둥병을 고쳐 주셨던 바로 그 시몬이, 주님의 은혜 너무 고마워, 여기 나귀 새끼를 통째로 드린다고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직 아무도 태워보지 아니한 순결한 놈입니다. 저의 이름은 시몬, 벳바게 마을의 시몬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 나위 임자는 그런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33절에 기록된 그 임자들이라는 일견 애매한 표현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33절에서 임자들이란 복수를 사용하고 있는 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나귀 임자가 제자들의 눈으로 볼 때, 여러 동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그저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서서, 주께 드릴 것을 드리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 그는 이름 없는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주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그 길을 영화롭게 해 드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제자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굳이 내 이름을 나의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 주님은 내가 한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 이름을 주님의 이름 보다 앞세워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동광 가족들 가운데, 그런 분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우선 그런 분들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동광교회는 참으로 좋은 교회, 모범이 되는 교회, 해서 행복한 교회입니다. 이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그동안 오늘의 공동의회를 놓고 기도하면서, 자기 이름은 감추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묵묵히 일해 오신 분들이 우리의 장로님이 되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 엄청난 것을 바치면서도, 그저 조용한 가운데 바쳐온 참으로 귀한 분들, 그 분들을 들어 크게 써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분명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우리의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종려주일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알아주시는 그런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을 잘 아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종려주일에 새로운 장로님을 세우는 공동의회를 허락하신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귀한 역사에 세례교인은 모두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허락하신 결과에 기쁨과 감사로 아멘으로 순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는 신앙의 여정에 주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새기며, 잠시 명상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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