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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날 [고전 1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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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날 <고전 15:20-26><2004년 4월 11일>
 
□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날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
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
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
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20-26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좌절과 굴욕과 패배와 절망의 밤은 지나고,
기쁨과 감격과 희망찬 새 아침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 소식은 두려움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다시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저들에게 부활의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순식
간에 모여들게 하였고, 아직도 유대인들을 두려워 문을 안으로 잠그고 있는 자
리에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 보여줌으로써 사실 확인으로 전환되게 되었습니
다.
죽음이 끝장인 줄 알았던 절망에서 새로운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아침 우리는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첫째,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사느냐?'
이 질문은 인류의 오래된 숙제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질문은 두고두고 되물어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부활에 대하여 사람들은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부활을 믿고 부
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후자에 속한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
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관하여 잘못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말할 때, 언제나 육체적인 죽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즉 숨이 끊어진 상태만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육체적 죽음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그것이 절망(絶望)입니다.
절망한 사람은 실상은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몸만 살아있을 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봄이 온들 무엇하며, 꽃이 핀들 무엇하랴, 한번 간 님은 돌아오지 않는데...' 라
는 절망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육체는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죽음은 언제나 미래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현재적(現在的)입니다.
죽음은 나이 많아서만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가장 현재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뿐입니다.
이 점에서는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다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죽음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무덤이 인생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또 다른 삶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활의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생각해
야 합니다.
① 즉 과거의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고,
② 또 현재의 삶에서 날마다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고,
③ 미래의 삶에서 내가 살 것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총체적으로 부활은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둘째, 그래서 부활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의 죄(罪)로 부터 나를 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죄로 부터의 용서입니다.
내가 어떤 죄를 지었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감격이 과거에 대한 죽음에서의 부활입니다.
평생을 과거의 죄책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해결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은 현재의 삶에서 나를 날마다 살려냅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무결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모두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처럼 현장에서 짓고 있는 죄들이 있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자리에서 나를 살려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오늘도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게 주는 의미는 주님은 날마다 나를 위해 죽고, 날마다 나
를 위해 살아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39절에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
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
다.
내게 오는 자는 마지막 날에 다 구원 얻게 하려한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미래의 소망으로 나를 살려냅니다.
현실에서 절망하고 있는 나를 부활 신앙은 다시 나를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의미를 주
고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 끝으로 <온전한 부활 신앙>은 <몸>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몸(Body)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스 철학에서는 특히 플라톤의 인간 삼분설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영, 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설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창세기 1:26절에 보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몸>의 바른 이해입니다.
몸이란 총체적인 인간 존재의 양태(樣態)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희브리
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헬라문화의 영향권에서 형성된 몸에 이해에서는 영과 육으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영(靈)은 선하고 육(肉)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 후 부터 이 몸이 죄로 인하여 사망 권세 아래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제 사망이 생명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몸의 부활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몸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
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Natural Human
Body)으로 심고, 신령한 몸(Spiritual Changed Body)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신령한 몸이 어떤 몸이겠습니까?
오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몸일 것입니다.
부활 전에 그리스도의 몸은 시간과 공간 안에 머물러 있던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 그리스도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하는 것은 타락한 죄 중에 있는 인간 이성으로는 설
명되지 않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이 부활 사건을 은폐하려고 별별 이단들이 나타났습니다.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지탱해 나갔겠습니까?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주님의 부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
에게 돈을 많이 주어 입을 다물도록 하였고, 거짓말을 유포시키도록 하라는 기
록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8:12절-15절에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
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 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
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
데 두루 퍼지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란 말입니다.
우리 모두 과거의 죽음, 현재의 죽음, 미래의 죽음에서 해방되어 날마다 현재
적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와 죄로 인하여 죽었던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여, 이제 영원히 다
시 살아나신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과 나라의 불의한 죄된 세력들의 억압으로 부터 부활의 권능
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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