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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부활의 증인이요 (행 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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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4월18일 말씀 
제목 : 나는 부활의 증인이요 
본문 : 사도행전 5:27~32   

농부가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몰고 시장에 가고 있었다. 이 때 그 길을 가던 누군가가 혼잣말로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군. 당나귀를 타고 가면 훨씬 편한 것을"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다. 잠시 후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는데 그중 한 노인이 말하기를 "저런 불효자식이 있나 늙은 아비는 걸어가는데 젊은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는 구먼 그래."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아들을 걷게 하고 자신이 당나귀에 올라탔다. 계속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두 여인을 만났다. 여자들이 하는 말이 농부의 귀에 들렸다. "어머 저 게으른 사람 좀 봐. 자기만 편하자고 가엾은 아이를 걷게 하는군." 이제 농부는 머릿 속에 복잡해 졌다. "내 아들아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농부는 아들과 함께 당나귀 등에 타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부끄럽지도 않소. 저 늙은 당나귀가 땀을 흘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요.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어찌 그리 몰인정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들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농부와 아들은 이번에는 긴 장대에 당나귀의 네 발을 묶었다. 그리고 장대를 어깨에 둘러매고 잘 모시고 걸어갔다. 이 모습을 본 동네사람들이 껄껄데고 웃는다. 드디어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구나. 마침내 시장으로 가는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당나귀의 발이 밧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농부와 아들은 장대를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당나귀가 강물에 "풍덩"하고 빠졌다. 허탈한 농부는 다리 한복판에 앉아 아들에게 말했다. "이 일을 통해 한 가지 배운게 있다." 그게 뭔데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 하다보면 결국 한 사람도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
누구의 말을 들으며, 누구에게 즐겁게 해 주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다. 우리의 삶에는 초점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뚜렷한 삶의 기초가 없으면 우리는 흔들리게 되어 있다. 당나귀를 몰고가는 노인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은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서운 처형을 당하셨다. 모진 고통을 당하셨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한다. 예수님을 고소하고 잡아 죽게 했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였다. 마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면 예수님처럼 고문을 받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불러 놓고 심문을 한다.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하게 금하였는데 왜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느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에 우리 삶의 초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요즈음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가정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다가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보다 식구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에 누에고치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누에가 누에고치 안에 갇혀있듯이, 가정을 너무 소중하게 여긴 나머지 오로지 자기의 가정만을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누에고치 현상이 우리 속에 팽배해 있기 때문에 식구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정을 소홀히 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가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생각의 순서가 뒤바뀌면 안 된다.

주5일제가 진행 중에 있다. 주 5일제가 되면 가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그러기에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이 흔들리면 안 된다. 식구들을 즐겁게 해 주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식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앞서면 주일 성수하지 않고 놀러가기 바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먼저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가치관이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정도 소중하지만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초점이 흘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집안을 꾸미는 것도 그렇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삶의 초점이 흐려지면 안 된다.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게 되었다. 아름다운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천국이 어떤 곳이고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구경에 나섰다. 한참 구경을 하는 중에 유난히 멋지고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부자의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 집은 누구의 집이기에 이토록 멋집니까?” 천사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이 집은 당신이 생전에 거느리던 하인의 집이랍니다.” 부자가 놀라서 묻기를, “어떻게 하인 주제에 이런 멋진 집을 가질 수 있습니까?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천사의 대답이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절대 실수가 없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천국에 걸맞지 않는 낡고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가 있었다. 부자가 놀라서 어떻게 천국에 이렇게 초라한 집이 있느냐고 물으니, “여기는 바로 당신의 집이라”고 대답한다. 부자가 놀라서 다시 물으니 천사가 단호하게 대답하기를, “천국에는 잘못도, 오류도, 실수도 없습니다. 이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이 집은 당신이 보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천국에서는 지상에 있을 때에 주를 위하여 베푼 것을 재료로 집을 짓습니다.”
내 가정을 행복하게 돌보는 일도 소중하지만 너무 지나쳐서 누에고치 현상으로 막혀 있으면 안 된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의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윗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윗 사람을 즐겁게 해 줘야 한다. 위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물론 이것도 소중하다. 이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역시 여기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초점이 있어야 한다. 성경의 말씀에도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윗 사람에게 공손하게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뚜렷한 순서가 있다. 초점이 있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막았다.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잡아서 죽였다. 그러기에 증인이 된다 함은 곧 순교를 의미했다. 증인은 곧 순교라는 말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베드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러나 예수는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리고 가롯유다 대신 12제자 중 한 사람을 선출하는 일에 그 후보자격은 주님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다른 제자들 주변에 있던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역목적은 “예수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오늘날 사역자의 근본목적이 이 ‘증인’이 되는 것임을 확인 시켜 준다.

이같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부활의 증인이 되는 길이요, 주님께 순종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길이다. 당시에 부활의 증인이 된다함은 곧 순교를 의미할 정도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내가 좀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 자체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추지는 않는가? 내가 좀더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좀더 출세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을 감추고 있지는 않는가?

지난 4월 초에 경찰청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러 갔다. 예배를 드리고 차를 마시는데 군대의 계급으로 말하자면 스타급에 해당하는 경무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집사님이 경찰 서장으로 지방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 지방에는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온 지방의 종교행사로 치러졌다. 군의 기관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이었다고 한다. 향교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책임자가 서장님을 찾아와서 꼭 제사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 집사님은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지 아무데나 가서 넙쭉 넙쭉 절하고 숭배하면 되겠는가? 하고 결국은 요청을 거절했다. 옆에 있는 군수님이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우리 지방의 큰 행사인 제사지내는 데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같이 가서 마을 사람들을 좀 즐겁게 해 주자고 이야기 했다. 서장은 내가 집사인데 신앙인의 양심으로 도저히 갈 수 없으니 군수님이나 혼자 가시라고 대답하자. 군수가 서장 앞에서 고개를 떨구며 “내가 장로인데 지금까지 그것을 감추고 그곳에 갔노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회개 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제사를 지내는 그 행사가 원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행사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군수는 자기의 표를 의식해서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마을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요즈음에 회사의 입사 원서를 쓸 때에 종교를 쓰는 난이 있는데 그곳에 기독교라고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취직하는데 불이익을 당할까봐서 그렇다고 한다. 자신의 취업을 위해서 교회 다니는 것 조차도 숨긴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시겠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삶의 초점을 갖고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신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이 벌어졌다. 골리앗이 일대 일로 싸우자고 한다. 아무도 싸움터에 나갈 사람이 없다. 사울 왕은 조건을 내걸었다. 그를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을 주고, 왕의 사위가 되게 하고, 세금도 면제해 준다. 신분상승의 좋은 기회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것에 관심이 없었다. 다윗의 관심은 단지 “누가 나의 하나님을 모욕하느냐?” 다윗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에게 맞춰져 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우리에게도 삶의 분명한 초점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그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주님께 상급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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