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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딤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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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설교자 :강성찬 목사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소유문제로 인하여 서로 전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에 영국에서는 여왕이 퇴직을 하루 앞둔 장군을 불러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군대를 지휘라는 사령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장군은 여왕 앞에서 쾌히 승락하고 떠날 준비를 차렸습니다. 장군은 집에서 짐을 챙기는데 포켓용 성경책과 세익스피어 집을 준비하여 윗주머니에 먼저 넣고 다음에 권총과 장비를 챙겼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장군님 이번 정쟁은 영국이 이겼습니다." 장군은 놀라며 그 영문을 물었습니다. 장군의 아내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준비했으니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풀어 이번 전쟁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장군은 전지로 떠낫습니다. 전쟁은 과연 영국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악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이 전쟁은 영국이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이었습니다.(노 장군의 무기-예화 뱅크)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딤전 4:6)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서 받아 온 믿음으로 양육 받아 신실한 하나님의 선한 일꾼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며 양육할 것을 권고하며 믿음을 말씀과 연결 시켜 믿음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참된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8)고 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교훈하기도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합니다.

제사적 죽음의 효능으로 사람들의 영적 영원적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 6:50-57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고 합니다.

영적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우리 가운데 오심을 물을 마시는 것으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음식에 견주어 설명 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 23:12).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며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하자는 실천 방안에 따라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사모 하며 말씀을 음식에 견주어 가르친 바에 따라 살피고자 합니다.


1. 순전하고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순수하고 신령한 젖'은 가감이 없는 순수 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말씀을 갈망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시 119:20)라고 고백 합니다.

영적인 신생의 상태에서 점차 자라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신령한 젖, 곧 말씀을 사모하라고 권고합니다.

아기는 갓 태어났을 때부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머니의 젖을 찾아 먹을 줄 압니다. 어머니의 젖은 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양분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이 아기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의 성숙에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겔 2:8)고 합니다.

말씀으로 양육 받는 성도는 치우침이나 구부러짐 없이 영과 육이 모두 강건하게 성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항상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상고하며 보다 갚고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자 애쓰는 성도는 구원을 확신하는 보다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영적인 미성숙의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완전히 갈아 만든 부드러운 음식이나 젖과 같은 종류만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소화 기능이 약하고 단단한 음식을 씹을 만한 이가 나지 않은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않은 초 신자들에게는 가장 평범하고 쉬운 방법으로 진리를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이 연약하고 신앙의 연륜이 짧았던 고린도 교인들을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고전 3:2)한다고 했습니다.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라는 말씀은 그 신앙의 수준에 맞게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을 세상에 가르치실 때에 비유와 표적 등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요하는 제자 도를 강론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의 3 년 동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고 믿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말씀으로, 각색 병든 자들의 치유로, 죄 사함으로, 귀신을 축출하심으로, 풍랑을 잔잔케 하심으로,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 줄을 먼저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로 드디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신앙 고백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서야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또한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 희생의 삶, 섬기는 삶, 증인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하되 순수하고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으로 양육하고 앙육 받는 모두가 됩시다.


2. 단단한 식물과 같은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

'젖'과 '단단한 식물'은 비유로서 아직 기초단계에 있는 자들을 '우유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 비유하며 성숙한 단계에 이른 자들을 밥 곧 단단한 음식을 즐기는 어른에 비유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1)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2)고 합니다.

젖만 먹고사는 어린아이는 음식의 참맛을 모릅니다. 산해진미가 있어도 그것을 먹을 줄 모릅니다. 따라서 기초적인 영양만을 공급받을 뿐 다양하고 고르게 영양을 섭취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12절)라고 했습니다.

운전 초보자가 날자만 지나면 능숙한 운전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운전을 해야 되듯이 성도도 시간 시간 집회에 참석하며 연단하므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어린아이는 때가 되면 장성하게 되고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때가 되면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분별할 수 있도록 양육하여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은 선악의 분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결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신 1:39)

어린아이는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모릅니다.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사 7:16)

장성한 사람은 선악의 판별력을 가집니다. 어떤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을 배척해야 하는지 압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상태는 영적인 위기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비록 앞에 환란과 곤고함이 있을 지라도 어린아이가 걷고 뛰기 위해 연습하는 것처럼 연단을 쌓아 양육 받고 양육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단단한 음식을 잘 씹어서 먹고 소화해 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초목이 뿌리를 통해 힘차게 자양분과 수분을 흡입함으로써 성장하듯이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빈 영혼에 가득 채움 받아 알찬 믿음의 성장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사역을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온갖 죄의 더러움을 씻음 받고 거룩한 성령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마음 중심 가운데 모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되어지고 양육하여야 합니다.


3. 송이 꿀과 같은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9,10).

'송이 꿀'이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덩어리 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꿀은 산지에 있는 것입니다. 꿀은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시인이 꿀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이 그에게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외면적으로는 모든 재산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내면적으로는 달콤한 행복이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 은총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 꿀 같이 달고 맛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03)라고 합니다.

말씀의 단맛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은 금방 싫증이 나게 되고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즐거움을 공급하여 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19:105, 133).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경고의 말씀으로, 때로는 책망과 도전의 말씀으로, 때로는 위로와 평강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능등적으로 잘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는 자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가장 귀한 자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하되 순전하고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 단단한 식물과 같은 말씀 꿀과 송이 꿀과 같은 말씀으로 양육 받고 양육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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