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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욘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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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교 : 강구원 목사 (갈보리교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2장 39-40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1장 29-30절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성경에 기록된 요나의 역사적 실제성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요나서의 기록 연대는 열왕기하 14장 25절을 보면 요나는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그는 앗수르에 포로가 되기 전에 요나서를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는 문구의 히브리어 '데바르 아도나이( )' 는 선지서들의 서두에 주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것은 그 말씀이 요나의 주관적 사상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4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책이지만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서 실제 역사에 기초하여 인간들의 편협된 민족적 배타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Ⅰ. 하나님의 주권적 소명계시입니다.

본문 1장 1-2절에『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이라고 했습니다.
『요나』( )는 '비둘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하나님의 진리(아멘)이라는 뜻을 가진 아밋대( )입니다. 요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얼마 멀지 않은 가드헤벨 성읍의 시민이며 스불론 지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소명하실 때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마치 그 사람 하나뿐인 것처럼 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소명함에 있어서 주권적이라는 사실은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는 10대가 흘렀습니다. 이 장구한 세월동안 성경에 기록될만한 신앙인들이 없었다는 사실은 아브라함가(家)에 매우 특이한 사실입니다.

다만 여호수아 24장 2절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한마디로 우상숭배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전통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치 못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가능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소명하실 때도 주권적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절에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나의 아버지 아밋대(아멘)라는 이름이 시사해주듯이 요나의 집은 신앙의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모든 소망과 기대를 담아 그의 아들의 이름을 비둘기라는 뜻을 가진 요나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요나를 방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지명하여 소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현재의 모습에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주권에 의해 소명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본문 1장 2절에 『너는 일어나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니느웨가 어떤 곳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성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손자 니므롯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입니다. 니느웨(Nineveh)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나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의 이란 내에 모슬(Mosul)로 불리우는 지역의 교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니느웨는 강력한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Shalmaneser) 1세와 투콜티 니눌타(Tukulti Ninulta) 1세의 지배하에 있을 때 크게 확장되었고 요새화 되었던 곳입니다. 사르곤 2세는 니느웨에 그들의 궁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B.C 744년에는 므나헴(Menahem)에게서(왕하 15:20), B.C 722년에는 사마리아에서(사 8:4) 공물을 니느웨로 가져왔습니다.

산헤립은 아버지 사르곤(Sargon)2세가 건축한 것에 맞설만한 거대한 규모의 수도로 니느웨를 건설했습니다. 산헤립은 스스로 대왕이라고 자처했습니다(왕하 18:28).
그의 오만함은 이사야 10장 13-14절에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산헤립의 교만은 가히 하늘에 사무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보내서 니느웨 성을 구원하고자 함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인종이나 민족, 그리고 계급과 신분, 빈부 격차에 차별이 없으십니다(롬 1:16; 고전 1:26-31).
요나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감정 때문에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을 싫어하고 오히려 멸망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멸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 성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Ⅲ.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계시입니다.

본문 1장 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니느웨 성은 각종 죄악을 상징하는 도시이며 이방세계를 대표하는 도성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성에 심판을 경고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요나에게 있어서 대단히 충격적인 계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를 포함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타적인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민족 우월주의에 빠져서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과는 상종하지 아니했습니다.

요나는 세계 만민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니느웨 거민이 또 악한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들이 망하지 않고 회개한다는 것이 요나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니느웨 성 거민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망시킬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보내서 그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니느웨 성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나훔 3장 1-4절에 『화 있을 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같은 창, 살육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니느웨를 큰 성읍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의 규모보다는 그 성의 많은 인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욘 4:11).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12만 명이라고 명시해서 기록한 것을 볼 때 어린이들이나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무지한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어린이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기록이 이 사실을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9절에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전체 인구에 대해 3-4세 아이들은 약 5분의 1정도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니느웨 성의 인구는 약 60만 명에 달합니다.
그 외에 육축도 많이 있다고 했으니 그 당시에는 큰 성읍이 분명합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큰 성읍 니느웨가 어디입니까?
세계 모든 지역과 종교 그리고 그곳에 인구 분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① 로마 카톨릭(남유럽, 동유럽, 크로아티아, 디투아니아, 아일랜드, 중남미) 약 9억입니다.
② 기독교(독일북부, 영국, 북유럽,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약 4억입니다.
③ 그리스 정교(구소련지구, 불가리아, 루마니아, 신유고 연방, 그리스, 에디오피아)약 1억 6천입니다.
④ 이슬람교는 두 종파가 있습니다.
수니파(중동지역, 구소련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보스니아) 약 8억입니다.
시아파(이란, 이라크남부, 아제르바이잔, 예멘) 약 1억입니다.
⑤ 불교에는 크게 3종파가 있습니다.
대승불교(일본, 한국, 기타 동아시아 지역) 1억 7천입니다.
소승불교(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기타 동남아시아 지역) 1억 3천입니다.
라마교(중국의 티벳지역, 몽골) 약 4천만입니다.
⑥ 유대교는 이스라엘에 약 2천만입니다.
⑦ 흰두교는 인도, 네팔에 약 7억입니다.
⑧ 유교, 도교등은 중국, 대만에 약 2억입니다.
⑨ 기타 이른바 신흥종교는 인도(시크교, 자이나교등), 이란(바하이교), 아메리카(몰몬교)등이 약 2억입니다.
⑩ 기타 민족종교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미, 러시아 북부등 약 1억입니다.

오늘의 큰 성읍 니느웨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지역, 모든 종족, 모든 문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컨데 남미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남미 브라질은 90% 이상이 로마 카톨릭이고 아르헨티나 역시 92%가 로마 카톨릭인 반면에 기독교는 2%에 지나지 않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지역은 큰 성읍입니다. 브라질은 남한의 90배가 훨씬 넘는 면적에 인구는 남한의 약 30배가 넘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남한의 3배의 면적에 인구는 남한의 4분의 3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무한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과 공간자원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선용되도록 해야 할 사명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구체적인 우리의 니느웨가 어디입니까? 우리의 골육 친지들입니다. 우리가문과 골육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온다고 가정할 때 그 힘은 대단할 것입니다.

21세기에 교회가 살아남는 방법은 본질적인 면에서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신학논쟁이 왕성해야 합니다.
둘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적 사명수행에 있습니다.
신학논쟁이 없이 모든 것이 혼재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바르게 할 수 없고 혹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최선의 것을 도출해 내지 못하면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상대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서양 속담에 "법은 거미줄이다 장수하늘소는 찟고 파리는 걸린다." 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필요에 따라 선택되는 참혹한 현실을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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