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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를 다스리는 사람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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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요즘 현대인들의 특징은 조급함입니다. 쉽게 분노하고 성내고 자기 감정을 들어내는 일에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른다든지! 칼로 찌른다든지!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든지 하는 이런 일탈의 행위들이 이 시대의 특징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과 사고 뒤에는 인간의 감정인 분노라는 감정이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 심리학자였던 에릭 프롬이란 사람은  "인간에게 있어서 분노라는 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이란 나쁜 것인가?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희노애락이라고 하는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빗나갈 경우에 그 감정은 악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사랑이라는 단어 또, 사랑과 관련된 단어가 350회쯤 나옵니다. 반대로 분노, 화, 성냄 등에 대한 단어는 450회 정도가 나옵니다. 이것은 인생들에게 있어서 분노의 감정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들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제는 이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 새 사람들에게 이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줍니다.

1.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볼 때에 마음에 일어나는 의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같은 의분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분노로 인하여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분노의 감정에 휩싸입니까?

첫째는 사람들이 시기심이나 질투심 때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성경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분노는 바로 가인의 분노였습니다. 그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분노는 살인을 불러 왔는데 그 원인은 동생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고 자기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자기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함으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자기 동생을 쳐죽이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자기 동생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본 형이 밭에서 돌아왔다가 이 사실을 보고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동생에게 잘해 주는 것에 대한 질투심과 시기심 때문에 노하여 집에 들어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사울이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사위이고 충신인데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질투와 시기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쳐부수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할 때에 예루살렘의 많은 여자들이 다윗과 사울의 입성을 축하하며 개선가를 불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이 소리를 들었던 사울 임금이 다윗을 평생토록 미워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분노를 잘못 표출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분노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요나가 니느웨 성이 멸망하기를 바랐는데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망하지 않고 도리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나가 생각하기에 저런 인간들은 벌을 받아 망해야 하는데 망하지 않고 은혜를 받아 잘되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입니다. 요나서 3장, 4장을 보면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도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대로 되진 않았어도 주님 뜻대로 되면 만족해 할 줄 아는 덕성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성격이 조급하기 때문에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넷째는 교만하기 때문에, 비교 당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이 노출되어 드러날 때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원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자기들의 조상들과 자기들의 죄가 드러났을 때 그들은 이를 갈며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가 결국 스데반을 때려죽이는 살인으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누구나 분노를 가지게 되고 분노에 휩싸이게도 됩니다. 그러나 이 분노의 감정이 분노의 감정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미움과 살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분노의 관리 방법입니다.

2.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2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렇습니다. 독사가 알을 품으면 독사 새끼가 나오듯이 사람이 분노를 품으면 이 분노가 엄청나고 무서운 것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분노의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출을 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보는데, 하나는 외적인 표출 방법이고 하나는 내적인 표출방법입니다. 여러분 외적인 표출방법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표현했다간 손해가 더 많기 때문에 잘 표출하지 못하고 마음에 꾹 눌러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많은 여인들이 이 분노들을 외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감추기 때문에 여인들의 가슴에는 한이 들어 있고 그것이 역기능적인 반사 작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단독 주택 같으면 강아지 새끼라도 발로 걷어차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겠는데 요즘은 그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예전 같으면 빨래터에 가서 미워하는 사람의 와이셔츠라든지 속내의가 뚫어지라고 때라면 좀 분이 풀리기도 하지만 오늘날은 그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실컷 흉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습니다.

사람이 무조건 분노를 참으면 엄청난 부작용이 결국은 오고 맙니다. 마치 공기의 압을 더 압축시키면 폭발력이 강해지는 것처럼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를 억압시키면 언제인가는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서 엄청난 사건과 사고를 저지르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실 자식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부모들도 많이 있지만 부모 때문에 분노의 감정을 안고 사는 자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외부적인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굉장히 많은 분노를 심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가 성장했을 때 엄청난 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부모들로부터 분노의 감정을 물려받은 사람이 또 성장해서 부모가 되면 자기 자녀에게 그 분노의 감정을 대물림하게 되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온 집안이 온통 분노로 가득한, 잘못된 가정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런 분이 혹 계신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그 분노에서 해방되셔서 어두웠던 여러분들의 과거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집사님 부부가 부부싸움을 대판으로 했습니다. 서로 감정이 상해서 막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내가 이 여자와 이혼해야 되겠다, 내가 이 남자와 이혼해야 되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남자가 그렇게 쫀쫀하냐, 무슨 여자가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고집이 세냐" 그러면서 냉전상태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동안 부인은 남편 밥도 안 해주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나가서 밥 사먹고 다니고 직장에나 왔다갔다하면서 정말 "깨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내가 집사인데..."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아, 우리 집사람이 부부싸움을 하면서 나보고 쫀쫀하다고 그랬는데 정말 내가 쫀쫀한 남편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좀 쫀쫀했던 것 같아요, 아내는 아내대로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끙끙거리면서도 또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생각하기를 "오늘 집에 돌아가 우리 아내에게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지,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진짜 이기는 사람이라던데, 내가 먼저 사과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딩동'하고 눌렸을 때 자기 아이들이 문을 열어줄 줄 알았는데 자기 부인이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주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보 해가 넘어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아주 센스가 있는 남편이었는지 "그래, 해가 넘어가고 있어" 그 두 사람이 주고받은 "해가 넘어가고 있다"는 한 마디가 며칠 동안 쌓인 분노의 감정을 다 사라지게 하고 다시 사랑의 가정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분노의 감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분노의 감정을 관리함에 있어서 두 번째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래 분을 품고 있으면 그것이 독이 되어서 나와 너를 해치고 우리 공동체를 해롭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3.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7절을 읽겠습니다. "마귀로 하여금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인간이 마음에 분노의 감정을 오래 품다 보면 이 마귀란 놈은 교활하고 간교하기 때문에 점점 불붙고 있는 우리 마음에 기름을 끼얹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마음이 미움의 감정으로 바뀝니다. 서로 사랑하자고 만나서 이 분노의 감정을 잘못 관리해서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여자를 만나서 한평생 고생을 하다 마나...내가 어쩌다 이런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나..."  이렇게 생각이 점점 발전을 하다보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감정이 미움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고 미움의 감정이 더 격해지면 아주 부정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야, 잘한다. 그래 더 세게! 더 세게! 더 세게! 한판 붙어! 기득권을 잡아야돼! 초장에 콱 눌러야 돼!" 그러면서 머리에 더 새로운 아이디어로 상대방의 약점을 더 생각나게 하는데 거기에 말려 들어가면 사소한 일에 화를 벌컥 낸 것이 나중에는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이 분노의 잘못된 관리가 부모와 자식으로 하여금 원수 맺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정말 내가 조금만 이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고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지혜만 있었으면 오늘처럼 내가 이렇게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때늦은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나 우리 가슴속에 아직도 분노를 품고 세월을 보내시는 분이 있습니까? 분노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쪽으로 해결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인자하게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관리 방법이 무엇입니까? 32절입니다.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여기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여러분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마음의 고통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 분노를 다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미워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정말 내 마음속에 분을 품었던 사람에 대해서 용서를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요셉을 잘 아시지요! 요셉은 자기 형들에 의해서 엄청난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아마 그 상처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수 같은 형들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 잘 만났다 이 원수들아 한번 맛좀 봐라"그랬습니까? 그 형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분노대신에 그 형제들에게 용서하는 마음으로 갚아 주었습니다. 아마 요셉이 그 형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수십년 동안 괴로워했더라면 요셉은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부디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혹시라도 자리 잡고 있는 분노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혹시 생길 수 있는 분노의 감정들을 잘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서로 인자하게 여기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들이 행복하시고! 우리 대선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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