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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평강 (요 2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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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사람마다 마음속에 원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쉼이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부요를 누리고 권세와 지위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다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평화롭게 사는 것은 최대의 축복입니다.

나폴레옹이 센트헤르나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한 사람이 찾아가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폐하여 지나온 날을 회상할 때 살아온 생에서 행복한 날이 얼마나 됩니까?" 그때 나폴레옹은 잠잠히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전 생애에 걸쳐서 행복한 날은 단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오대양에 넘실거리는 파도는 세상에 오고 간 사람들의 눈물이고 육대주에 부는 바람소리는 세상을 살아간 인생들의 한숨소리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평화롭게 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고서는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는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57:20-21)라고 말했습니다.

악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평강이 없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평강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이 세상이 끊임없는 갈등 속에 있습니다. 남북이 갈등하고 이 역사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받는 은혜 가운데 최고의 은혜가 평강입니다. "예수 믿은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큰 변화는 잘 모르지만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평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주는 평안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소유에서 옵니다. 돈이 있어야 편안합니다. 건강해야 평안합니다. 집이 있어야 평안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이 있다고, 지위가 높아졌다고, 건강하다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평생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평안은 시간적입니다. 일시적입니다. 오늘의 평안이 내일까지 보장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평안은 환경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상황적입니다.
세상적인 평안은 상대적입니다. 소유의 평안이 상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가도 더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욕구 충족에서 옵니다. 무엇인가 바라는 소원이 성취될 때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평안은 문제가 없을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평안을 상실해가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평화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로마식 평화(Pax Romana)입니다. 이것은 힘에 의한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 힘의 지배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둘째, 헬라식 평화(Eirene)입니다. 이것은 마음과 정신의 평안입니다. 철학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 얻는 평안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는 평안(Shalom)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시는 평안이며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평안입니다. 모든 것이 자유를 얻는 평안입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나 자신,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나와 자연의 관계 모두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나실 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님은 죽으실 때도 평화의 주님으로 죽으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줄 때도 그 속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줄 때도 고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줄 때도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네 눈에 숨기웠다"고 탄식하시면서 우셨습니다. 평화를 모르는 백성들을 탄식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나음을 입는 것이 평안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평강

예수님의 평안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믿음의 선물이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에 충만하신 것처럼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나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자는 평안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믿기 때문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카렌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근심과 싸워 승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
모든 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어떻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주님을 믿으면 됩니다.

영국에 화이트렉이라고 하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가 크롬웰의 특사로 스웨덴에 갔는데 당시에 영국의 정세가 불안하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믿음이 좋은 비서가 동행했는데 잠 못 자는 화이트렉 경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이시여, 왜 주무시지 못하시나요."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운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나" 그때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부터 하나님은 영국을 다스렸겠죠?"  "내가 이 세상에 나기 전부터 영국은 있었지"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영국은 존재하겠죠."  "그렇지 영국은 있겠지"  "지금도 영국은 선생님이 염려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고 믿으십니까?"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지."  "선생님 편안하게 주무시지요." 이 말을 한 후에 비서가 겸손하게 절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비서가 자리를 떠난 후에 '이 나라는 내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인 것을 내가 쓸데없이 걱정했구나'
오래 전에 큰 교회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 나라가 잘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라 잘 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구대로 되는 것이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안되었어도 마음에 평안을 얻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 나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평안을 얻습니다.


사랑으로 얻는 평강

평강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사랑으로 얻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화평해야 되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화평해야 됩니다. 누구든지 화목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평하는 것입니다. 자식 공부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평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1등 하더라도 아버지와 평화가 깨지면 원수가 됩니다. 부부는 일생에 한 번 살다 갑니다. 전무후무한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화평해야 합니다.

아내 생일날 카드 한 장 써 주지 못하고 생일 선물 한번 사주지 못하는 남편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아내 생일날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만나 살아온 것이 너무 고맙소. 부족한 나를 만나 살아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소.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 내가 되었기에 하늘을 보아도 당신, 땅을 보아도 당신, 온통 세상을 보아도 당신 생각에 젖어 있지. 건강하게 살아주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오." 하고 카드를 써서 금일봉과 함께 화장대 위에 올려놓으면 아내가 그것을 보고 얼마나 행복해 하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부자간에 평화, 부부간에 평화, 고부간에 평화를 누리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시어머니 미워하는 며느리에게 주는 병이 위장병입니다. 구세대라 잘 맞지 않죠. 평안을 못누리면 병이 오는 것입니다. 신반포에 사는 여자 하나가 위장병이 들어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데 알고 보니까 시어머니 미워하다가 병들었어요. 병원에 왔다 갔다 하다가 대학 동창을 만났습니다. 친구 따라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에도 사납게 생긴 시어머니가 있는데 그 친구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요. 시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면 "예,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들어보니까 이치에도 안맞고, 논리에도 안맞고, 상식에도 안맞는데 시어머니 말에 "예 예" 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시어머니 비위를 잘 맞추니"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맞춘다."  "그게 무슨 말이니?"  "주 안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순종하고 맞춘다." 음식 만들 때 시어머니가 옛날 식으로 "팍 삶아라" 그러면 영양가가 파괴되지만 시어머니 드실 것은 팍 삶고 내가 먹을 것은 살짝 삶아서 먹으면 될 것 아닙니까 똑순이는 똑똑해서 시어머니 말만 떨어지면 탁탁 받아내니까 평화가 없고 덕순이는 시어머니 말에 순종하니까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는 사랑으로 얻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얻는 평강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강을 온 세상에 나누며 살도록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십니다.
중국 성현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의를 의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요, 의를 침묵으로 말하는 것은 덕이다." 덕을 가진 자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평화롭게 살고 안락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똑똑한 체 말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셔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 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잃는 것 욕심 때문입니다.

자기를 많이 죽여야 평화가 옵니다. 자기를 많이 죽여야 곁에 있는 가족도 편하고 주위 사람들이 편합니다. 끊임없이 사랑을 담고 남의 허물을 덮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격려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평화의 사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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