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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히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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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방상훈 목사 (승동교회)

히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어느 중소기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직원이 20명 정도 되는 자그마한 회사였습니다. 그 회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실적이 매우 나빴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몹시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직원들을 다 모이게 했습니다. 직원들도 회사의 사정이 몹시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아무래도 무슨 감봉이나 감원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면서 모였습니다.
사장님은 입을 열더니 무거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회사의 사정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부득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사장인 내게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로서 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장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선언에 모두가 동요하는 눈치였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면서 흐느껴 우는 여직원들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장님은 다시금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사장의 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여러분의 곁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새로 오시는 하 사장님을 모시고 저도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제서야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 오시는 하 사장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장님은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 오시는 하 사장님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우리 회사의 사장님을 하나님으로 모십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힘차게 앞을 향해서 나아가십시다."
그제야 모두가 사장님의 말뜻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 모두는 뜨겁게 손뼉을 치면서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회사는 하나님을 사장님으로 모시고 아침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하루의 일과를 복되게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믿음 안에서 똘똘 뭉쳤습니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결과 그 회사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실패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지 이스라엘에 가면 사해가 있습니다. 염도가 매우 높습니다. 부력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도 몸이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뜨게 됩니다. 그런데 괜스레 자기의 수영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팔을 내밀어서 허우적거리다가는 아무래도 바닷물이 튀게 마련입니다. 잘못해서 바닷물이 눈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견딜 수 없이 쓰리고 아픕니다. 자기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해에서는 누구나 지켜야 할 한 가지 안전 수칙이 있습니다. 절대 수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몸의 힘을 빼고서 바닷물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눕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드러누워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기기만 하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은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괜스레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모세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장성해서 나이 4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을 의지하면서, 자기의 실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모세가 한 일이라고는 애굽 사람 하나를 쳐죽이고 그의 시체를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린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모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철저하게 모세의 자아를 깨뜨리셨습니다. 모세가 완전히 깨어졌을 때, 하나님은 능력으로 그를 붙드셨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더 이상 자기의 힘, 자기의 실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보잘것없는 내 힘, 내 노력, 내 재주를 의지하지 마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히11:27절은 모세의 삶 가운데서 제 2기의 삶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훈련을 받을 때 보여주었던 믿음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믿음은 애굽을 떠나는 것입니다. 죄악의 자리, 죄악 된 행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로,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애굽을 떠나는 일을 못하도록 막는 바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이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모든 환경을 참으며 극복해 냅니다. 그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든든함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우리들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믿음은 떠나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일 뿐입니다.

하루는 물오리들이 떼를 지어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마음에 꾀가 생겼습니다. 배도 고프고 날개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 몰래 슬그머니 농가의 지붕 위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그 농가의 마당에는 때마침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집오리들이 집주인인 농부가 주는 모이를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물오리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집오리들은 날지를 않습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오리는 집오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지붕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집오리들 틈 속에 섞였습니다. 마치 자기도 집오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몇 개월 동안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물오리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이제는 내 갈 길로 가야지.'
물오리는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몸이 비대해져 있었고, 몇 개월 동안 날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날개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뛰어오르다가 다시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농부는 그 물오리를 잡아다가 맛있게 요리를 해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낙이 그렇습니다. 잠시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저 잠시 잠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결말은 언제나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1977년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이 자그마치 2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을 해도 2조 4천억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는 방송, 영화, 항공, 여행, 관광, 카지노 등 50여 개의 기업들을 운영했습니다. 또 그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들과 이런저런 염문을 많이 뿌렸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돈과 명예, 여자 속에 파묻혀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10년 간, 그는 심한 결벽증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외부와 차단된 유리벽 안에서 고독하게 갇혀서 살았습니다. 그는 병이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울부짖었던 말이 있습니다.
"Nothing! Nothing!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객의 수는 불과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을 집례 할 목사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인근에 있는 목사님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목사님은 그저 짤막하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워드 휴즈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그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의 낙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떠나야 할 애굽은 무엇입니까?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을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내가 하던 일 마저 다 정리해 놓고 난 뒤에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그 즉시 그물과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 가라."

언덕에 머물지 말고 믿음으로 언덕을 떠나십시다. 창파에 우리 배를 띄워 보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마음껏 노 저어 가는 축복을 우리에게 안겨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 하고."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담대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 때 무서움과 두려운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그 무서운 감정을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
출2장에 나오는 내용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해서 4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족이 고역을 하고 있는 현장으로 나와 보았습니다. 때마침 애굽 사람 하나가 자기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압제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쳐죽이고 그의 시신을 모래 속에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모세가 또 그곳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말리면서 타일렀습니다.
"너희는 형제이거늘 어찌하여 서로 해하느냐?"
그러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법관으로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쳐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모세는 자기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운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 두렵고 떨리는 감정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애굽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바로가 군사들을 보내서 자기를 추격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광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무서운 감정을 극복하고 담대한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 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부모도 그러했습니다. 2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였던 존 낙스의 무덤에는 이러한 묘비가 써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자가 누워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담대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이었던 투르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은퇴 후에 그의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기념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그는 자주 그곳을 찾아가서 책을 읽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하루는 어린 아이 가운데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대통령 아저씨! 대통령 아저씨는 제 나이 만할 때 어떤 소년이었습니까? 학급에서 반장을 하셨나요?"
그때 투르먼은 그 어린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야, 나는 한 번도 반장을 못했어. 사실 나는 너만할 때 너보다 훨씬 더 볼품이 없는 소년이었단다. 나는 옆에 있는 친구들이 큰소리만 쳐도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의 약한 소년이었단다. 몸이 약해서 운동도 못했지. 그리고 안경을 끼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력도 나빴단다."
그 소리를 들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실 수 있었나요?"
투르먼은 빙그레 웃으면서 친절하게 일러주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었단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 등뒤를 힘있게 밀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지.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아갈 수가 있었단다. 그것이 바로 내가 대통령이 된 원동력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우리는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27:1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했던 모세의 믿음,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담대하게 외쳤던 다윗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가 애굽에서 살 때 40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했던 자였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모든 권세를 한 몸에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의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초라한 목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달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 모든 훈련을 어떻게 잘 참아냈습니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다!
모세에게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은 늘 오른손을 꼭 쥐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왜 항상 오른손을 꼭 쥐고 다니십니까?"
목사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예, 저는 제 오른손으로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가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이 찬송은 찬송가의 욥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찬송시를 쓴 스패포드 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법리학을 가르쳤던 분입니다. 변호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회계 집사로 헌신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때, 그의 집도 몽땅 타 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가족들과의 여행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구라파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화재에 대한 뒤처리 문제로 그 다음 배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사랑하는 네 딸을 태우고 가던 배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른 배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그 사고로 사랑하는 네 딸은 다 죽고, 그의 아내만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영국의 웨일즈에 도착한 아내로부터 짤막하게 전문이 왔습니다.
"혼자만 구조되었음."
그는 그 전문을 받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즉시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잃고서 혼자 정신없이 헤매고 있을 그의 아내가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선실에 있는데 선장실에서 차나 한잔 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선장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 그에게 이제 잠시 뒤면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시금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입니까? 새벽 세시쯤 되었을 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
그는 배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렇게 해서 찬송가 470장이 탄생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면서, 이런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그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존 칼빈 선생의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었지만,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가 우리의 삶이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광야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습니까? 광야는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크게, 더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광야의 삶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졌던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끝까지 잘 참아 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우리도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1)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2) 모세는 믿음으로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습니다.
3) 모세는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습니다.
이 모세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서 이 시대의 모세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2004년 5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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