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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어머니 (막 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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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잊우표 목사 (한신교회)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할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시기에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시며 또한 우리의 어머니십니다. 마리아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협조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한 최고의 여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라 부르며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라 해서 지극한 공경과,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릅니다. 저들은 기도할 때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천주교처럼 경배는 못할지라도 그 성스러운 생애는 존경하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죄없이 예수님을 잉태했다고 예수님의 어머니의 무죄성을 교리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들은 마리아를 출산하기 전, 출산하는 동안, 그리고 출산 이후에 동정녀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몸과 영혼이 천국으로 올리움을 받았기에 승천했다고 믿으면서 육신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마리아는 신앙과 사랑의 전형적인 모범으로 찬사를 받으며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효성을 바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인간으로서 존경과 사랑은 보내지만 신격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는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낳았다는 의미에서 흠모하기는 하지만 그를 무죄한 사람으로는 생각하지않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모친과 그 형제들'이라고 했는데 천주교에서는 이 형제들을 예수님의 친형제로 보지 않고 사촌으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은 형이고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태어날 때 성령으로 잉태해서 태어났고 동생들은 그 몸에서 인간적으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 구원 계획에서 최초의 여인 하와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 여인 하와는 인류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세주를 낳으신 어머니이면서 우리의 어머니십니다. 최초의 여인 하와는 불순종의 여인으로 죄와 죽음을 가져왔고 마리아는 순종의 여인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와는 마귀의 심방을 받았으나 성모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심방을 받았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정욕을 좇았으나 성모 마리아는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와는 육안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영안이 열렸습니다. 하와는 결국 죄인의 어머니가 되었고 마리아는 의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구원의 역사 가운데 은혜를 받은 자로서 또는 여자 중에 복있는 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믿음의 여인으로 흠모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어머니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30년 전부터 어버이주일로 바꾸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주일이라 해서 교회에서 어머니들에게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아버지들에게는 카네이션을 안달아주니까 아버지들이 질투를 했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른 그 은혜는 같은데 왜 우리는 소외시키느냐' 하고 항의를 해서 어버이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원래 어머니주일은 미국에서부터 지켰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그 관례를 따라 지키기 시작했는데 어머니주일이 어버이주일로 바꾸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다 알 수 없지만 그 본성은 어머니 마음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어머니가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여자의 일생이 힘들고 어렵지만 단 한가지만은 큰 축복입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됨으로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본성 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신분의 귀천도 있고, 학력의 고하도 있고, 인격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도 하나님의 본성을 담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본성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속성에서 볼 때 어머니와 같이 하나님을 알지는 못합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 위대함이 인격이나 어떤 지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았다는 의미에서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세 되던 해에 집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유대땅을 다니시면서 친히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당시에 민중들은 이런 예수님의 뒤를 환호하면서 따랐습니다. 이와 반면에 예수님을 시기하는 율법주의자들이나 당시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비판하면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여기에 공감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나 동생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라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데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예수님에게 접근하지 못하니까 한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많은 무리들을 돌아보면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며, 자매인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모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친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이 말씀은 육신의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요, 육신의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른 어머니들도 마리아와 같이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누구에게든지 약속된 은총입니다. 누구든지 다 성모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독보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우리가 우러러 보고, 경배하고, 찬양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땅에서 잘나고, 성공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자기만이 모든 사람과 차별해서 대단한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동상을 만들고 또 자신을 포장해서 신적인 존재인양 우상화하려고 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홀로 경배를 받고 찬양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너희도 나처럼 위대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어머니들이 다 위대한 존재가 되고 모든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이 다 예수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내 모친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모친이지' 예수님은 모든 어머니들을 예수님의 모친으로 모시고 싶어 하십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나님 같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에머슨은 "사람들은 어머니가 만든 그대로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사람이 만든 것이며 사람은 어머니가 만든 것이기에 결국 이 세계는 어머니가 만든 그대로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에브라함 링컨은 "나의 모든 것과 내가 바라는 모든 것과 나의 존재 전부는 나의 천사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없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신비를 담은 어머니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신비를 담은 성모입니다.

덮는 사랑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덮는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이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 사랑은 덮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덮어주는 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이 우리를 안아서 덮어주는 가슴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인류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죄 짓고 숨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어머니 같으신 사랑이 우리를 살려놓은 것입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이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간의 악한 죄라도 예수의 피가 덮여 있으면 그 죄가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의 피로 덮여 있으면 불꽃같은 예수님의 공의로운 눈도 인간의 죄를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은 어머니의 덮는 사랑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살던 옛 집은 찬바람 휘몰아치는 차가운 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 덮어주느라고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문풍지 밤새 울 제 검불같은 이불이라도
            이내 자식 발 시려울라 덮고도 덮어주건만
            문틈 사이 파고드는 한겨울 추운 바람은
            어머니 손길을 더욱 시리게만 하였네.

지금 이 세상은 어머니의 마음을 찾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남의 허물을 덮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만 덕스러운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습니다. 진짜 큰 사람은 남의 허물을 보지 않습니다.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남의 흉을 보면 의가 상하지만 남의 허물을 감싸주면 사랑이 돌아온다."(잠 17:9, 공동번역)
"허물을 덮어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잠 17:9, 새번역)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

허물을 덮는 사랑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줍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허물을 덮어주므로 의롭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덮으셨습니다. 남의 허물을 덮는 사랑의 마음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한 집사님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을 나왔습니다. 얼마 후에 큰 아들이 결혼을 해서 분가했습니다. 큰 아들을 분가시키고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집을 방문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까 아들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너 오늘 출근 안했니?"  "예, 하루 휴가 냈습니다."  "무슨 일이 있니?"  "제 아내가 몸살 나서 누워 있기에 좀 돌봐주려고 휴가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아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나온 것입니다. 이 분이 상당히 자기의식이 분명한 분인데 거실에 앉아 있다가 '고생해서 자식 공부시켜 놓으니까 마누라 시중든다고 휴가 내서 일이나 하고 있어 내가 이런 자식 낳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휴 속상해' 하고는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장모님이 왔습니다. 딸이 감기 들었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왔는데 사위가 집에 있는 것입니다. "자네 웬일로 집에 있는가"  "예, 아내가 아파서 휴가냈습니다."  "자네 참 착하네. 그래야지" 너무 기분이 좋아서 훌륭한 사위라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한쪽은 입이 이만큼 나오고 한쪽은 입이 벌어지고 아주 대조적입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휴가 내서 제 아내 돌보는 것을 허물로 보았고 장모님은 사랑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교회에서도 서로 사랑하면서 모두 좋게 보면 천국입니다. 허물을 보고 사는 곳이 지옥이요, 허물이 안보이는 곳이 천국입니다. 허물이 안보이면 가정이요, 허물이 보이면 하숙집입니다.

돕는 사랑

어머니의 사랑은 격려해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보혜사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인데 '곁에서 돕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파라크레토스'(곁에서 도와준다) 어머니는 곁을 떠나지 않고 돌봐줍니다. 우리 곁에서 위로하고, 도와주고, 가르치고, 자비를 베풉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7-8)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보호하고 길러줍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아픔을 대신하려고 힘씁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죽으면서도 자녀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어머니의 이런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대신 어머니를 보냈노라. 나는 등이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서 등으로 너희들을 업어 길렀노라. 나는 가슴이 없으므로 어머니 가슴으로 품에 안게 했노라. 내가 생명의 젖줄이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 젖가슴으로 아이들을 길렀노라. 내가 따뜻한 손으로 저들을 보살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어 그 손으로 저들을 길렀노라."

세 살까지 우리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최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혜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어머니가 곁에서 붙잡아 주지 않으면 생명을 잃습니다.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 못하며, 잠재우지 아니하면 잠을 자지 못하며,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엉덩이가 다 상합니다. 그래서 세 살까지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 살 이후에는 어머니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 손으로 밥을 먹고, 제가 누워 잘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사랑으로 나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살리는 사랑

어머니는 자녀들을 살려줍니다. 살려주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살림의 천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어머니는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표현할 때 산모, 유모, 양모, 식모, 사모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산모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 유모는 젖을 먹여 길러준 어머니, 양모는 돌봐서 자라게 한 어머니, 식모는 밥 먹여 살려준 어머니, 사모는 가르치는 어머니, 사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또 하나의 사모가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죽는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어머니 마음에 담아주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식이 될 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담아 자식을 기를 때 위대한 어머니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사람과 위대한 사람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남을 이긴 사람,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해서 자기를 죽이고, 자기와 싸워 이기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산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큰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머니가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큰 마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25사변 때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는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가는 어머니들도 있었습니다. 피난 도중에도 여기저기에서 총탄이 날아왔습니다. 그때 어머니들은 아이가 총에 맞을세라 등에 업은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한 어머니가 총탄에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엎드렸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젖줄에 목을 메고 그 속에서 살아있었습니다. 죽은 시체를 검사하다가 어머니 품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 아이를 고아원에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6.25사변 때 자신을 살리고 죽은 어머니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네 어머니는 6.25사변 때 피난 행렬에서 너를 살리기 위해서 총탄에 맞아 죽었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는 어머니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옷을 벗어서 덮어주고 울면서 "어머니, 이 자식을 사랑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는가?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누가 성모 마리아를 대변할 수 있는가? 어머니 마음을 가진 그가 바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 예수님처럼 만들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 따로 우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별세의 신앙은 예수와 함께 내가 죽고 예수와 함께 내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높이 우러러 경배받으려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별세 신앙을 가진 자만이 자기 어머니를 하나님처럼 모실 수 있으며 예수를 낳는 심정으로 자기 아들을 길러놓을 때 내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것이요, 내 아들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기르는 것이요, 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게 됩니다.

이 눈을 가지고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영광, 성모 마리아의 위대한 은혜가 그 속에 풍성하게 임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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