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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 되기 위하여 (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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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자기 고향에 작은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이것은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아도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하며 오히려 걱정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헨리 포드는,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 말로 가장위대한 집이지요!」했답니다.

영어로 가정의 주인공이되 가족을 Family라고 하는데,
그 뜻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신의」입니다.

가족이든 부부이든 이웃이든 사람의 관계에서 신의가 없이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사랑도 견고치 못합니다.

미국 코넬대학의 연구결과 남녀가 만나서 애정을 지속하는 기간이 18개월에서 30개월 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약 3년 정도인 셈입니다.

이 얘기는 누구든지 이 때가 지나면 설렘은 사라지고 서로가 덤덤해 진다는 얘기입니다.

결혼 후 왜 3-4년 사이에 파경이 많이 생깁니까?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뢰가 앞섰다면 이 사랑의 관계는 위기를 극복하여 한 층 지속되고 발전될 것입니다.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 행복과 평안을 원하지만,
정반대의 불행을 겪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피차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며,
반대로 없어야 할 다툼과 허영으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다툼은 교만의 모습이고,
허영은 과시의 모습입니다.
일종의 과신된 모양이고,
죄에서 비롯된 악행입니다.

신뢰 없이 다툼과 허영 속의 각종 약속과 조약들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에 대한 신의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 부부의 경우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가장 이상적 배필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보이게 되고 인내를 발휘하여 속사랑으로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크리스천 부부가 아이를 낳고 보니 큰 장애가 있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오직 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부부로 하나님께 지목받았음을 감사하며 기쁘게 키우고 있습니다.

♡ 국가의 경우
큰 국가가 작은 국가를 침공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국가로 인정하여 평화를 연대해 갑니다.

이 신뢰가 있을 경우
저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하는 돕는 배필의 역할을 찾지,
저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해줄까? 하는 바라는 배필이 되지 않습니다.

◦ 내가 저와 함께 살아준다 식의 선심이 아닌 저가 나와 함께 살아준다 식의 인식 변화가 옵니다.

이 모습은,
내가 밑지고 있다.
내가 참고 산다는 다툼과 허영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2) 성경과 역사의 부부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썩 좋은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도 아래서 자신들을 위해 아내를 왕께 진상했던 위인들이고,
자식 없다는 이유로 첩을 들였던 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부인들은,
사라의 경우 아브라함을 「주」라 하면서 공경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역사상 3대 악처를 꼽으라면 욥, 소크라테스, 존 웨슬리 부인 등을 꼽습니다.
이 남편들의 공통점은 부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부인들처럼
부인에 대한 신의를 갖았기에 부인들로 말미암는 부정적 요건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 욥의 경우
아내에게서는 위로 받지 못하였지만,
그 일로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의 깊음을 터득했고,

◦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학대에 쫓겨 생각하는 세계에 들어갔고,

◦ 웨슬리는 성공적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부간에 좋던 나쁘던
부모 자식간에 좋던 나쁘던
이웃간에 좋던 나쁘던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배필이나 자식이구나! 이웃이구나! 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면서 맞추어 살 때 행복자가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 좋은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병을 하나님이 자신을 겸손케 하시는 찌르는 가시로 믿었습니다.
병은 떠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믿음 안에서 행복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부에게 주시는 말씀이 또 있습니다.

  고전 7:12~ “만일 어떤 형제에게 맞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3) 겸손의 자세입니다.

◦ 달리 얘기하면 남을 낫게 여기는 자세입니다.

◦ 또 달리 얘기하면
불행의 근본이유가 되는 다툼과 허영을 이길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합니다.

겸손의 자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 천성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입니다.
5.16때 혁명에 반대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른 정대령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면
오랜 감옥에서의 사형수생활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중, 사형수는 수갑을 찬 체 생활을 한 덕에 지금도 언제나 어디서나 두 손이 함께 움직이게 되었답니다.

또 다른 겸손은 선천적 성품을 갖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동물의 경우
맹수보다는 가축들이 비교적 이 성품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성품의 소유자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떨까요?
◦ 거듭남으로
◦ 성령 받으므로 이 성품을 지닙니다.

왜 화평케 하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일컫는지 아십니까?
겸손만이 전쟁을, 다툼을 멈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복음화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으며
부부와 가족의 복음화가 절실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 나 죽었습니다. 할 때 평화는 옵니다.

요즘 가정 폭력이 심각합니다.
아내 폭력, 아동 폭력 뿐 아니라 부인이 남편을. 자식이 부모를 폭력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때 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은 없고 오직 예방하거나 대처 하는 훈련법을 배우도록 합니다만,
불쌍하게도 그때뿐입니다.
근본치료는
예수님 마음 같아야 합니다.

  빌 2:6-8 “~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즉 권리주장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실제적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겸손의 최고의 모습입니다.

속담 중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합니다.
실제적으로 겸손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반면 이 어려운 겸손이 이루어질수록 평화는 오고 평안 되고 행복을 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필이나 나훈아와 같은 가수들이 노래 잘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이승엽이 홈런 치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이 그 뒤편에서 얼마나 노력하는 공을 들이는지는 모릅니다.

신뢰 있는 부부가 되어서 하나가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족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어 평화 있는 이웃과 국가 그리고 교회가 거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끊임없는 분열을 조장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하나 될 때만이 강력한 힘을 구사하기 때문입니다.

  빌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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