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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늦기 전에 기억하자 (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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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어떤 분이 "인생은 없고 없다가 없어진다"고 했는데 어려서는 철없고, 젊어서는 정신없고, 중년 때는 틈 없고, 늙어서는 형편없고, 그래서 결국 없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과자에 끌려 살고, 젊어서는 정에 끌려 살고, 장년에는 돈에 끌려 살고, 노년에는 병고에 끌려 시달리다 갑니다. 우리는 인생의 짧은 세월 속에서 종착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중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엄숙한 인생, 이 존귀한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며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뜻 있고 보람 있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미래를 먼저 알고 싶지 않습니까?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면 생에 대한 애착을 잃은 사람일 것입니다.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역사의 종점에서 오늘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삶의 길을 인도 받는 사람입니다. 삶의 종점, 즉 인생을 다 살아본 경험을 가진 지혜자 솔로몬이 삶의 종점에서 오늘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안내합니다. 믿으면 그의 교훈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으면 먼저 산 솔로몬의 종점이 나의 종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에서 오늘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생의 삶의 지도와 같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섭리하시고 인생의 결과를 심판하실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인생을 운행하라고 그려 놓은 지도인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면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들이 누구나 환상하고 소원하는 바를 다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경제성, 종교, 권력, 건강 모든 것을 마음껏 소유하고 누려 보았지만 이젠 이 모든 것들을 허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이 늙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 질 것이며 집을 지키는 자가 떤다”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서 집은 육체를 말합니다. 손발이 떨려 오고 육체는 구부러지고 맷돌은 치아를 말하는데 치아가 빠져 씹히지가 않아서 그냥 삼킬 수밖에 없습니다.

4절에는“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 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 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 질 것이며”라고 했는데 길거리의 문은 귀를 말하고 맷돌소리는 식욕을 말하고 새의 소리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이며 음악하는 여인은 목청을 의미합니다. 또한 5∼6절에도 마찬가지인데 늙기 전에, 끝이 오기 전에 전도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끝을 향하여 달려간다 할지라도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 대하여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마치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는데 솔로몬이 우리에게 당부한 삶은 더 늦기 전에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의지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가 하면 자기의 재능이나 가진 재물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이 필요한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이 홀로 살아갈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자들이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진취적이고 능력이 있고 성격이 좋아서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삶을 산다고 해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정의 아내나 자녀들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서 성공한 것인데 이것을 제대로 깨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을 의지하든 재물을 의지하든 자신에게 도움과 힘이 되는 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을 때는 더욱 의지할 데가 필요하게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그곳에서 헤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때를 대비하여 자기의 삶을 지탱해 줄 것들을 미리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재물을 부지런히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을 부지런히 사귀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힘이 있는 사람들을 사귀는 것은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그런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버팀목들이 어려운 때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어느 한계를 지나면 결국은 자기 홀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의지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고칠 수 없는 병,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알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의 존재입니다.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최후까지 의지할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인 신을 찾아 그 신을 의지하여 문제 해결을 받으며, 그에 대한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신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의지할 수 있는 신이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바로 우상입니다. 이런 우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신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인간을 오히려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의 우상은 바로 인간 자신

그러나 역사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머리가 깨이면서 이런 우상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상숭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오늘날에는 다른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발전하면서 기술 문명을 이룩하게 되자,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였고, 과거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가능성을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계속 개발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발명하고 발견하고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오늘 해결할 수 있으며, 오늘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라도 내일이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대하여 사람들은 큰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우상은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문명을 발전시켜 온 인간 존재야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뛰어난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고, 누군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나와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 위대한 사상가가 되어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우상입니다.

겉으로는 기술 문명이 하나의 우상처럼 나타나지만, 실상은 그것을 만들어 낸 인간 자신이 바로 그 우상입니다. 이런 신앙이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자신이 자기의 우상이었습니다. 다만 옛날에는 그것을 형상화시켰고, 오늘날에는 그런 형상을 기술 문명으로 대체했을 뿐입니다.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실상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자유롭게 어디든지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통신수단의 발달로 자유롭게 세계 어디에나 전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의학의 발달로 많은 질병들이 나을 수 있게 되었으며, 원자력 발전소로 말미암아 생활에 편리한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 기술 문명을 발전시킨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결국 옛날의 우상처럼 그 눈과 귀가 멀어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며 그가 창조하신 세계의 원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사실상 의지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의지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통하여 새삼 우리가 의지하여야 할 데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잃고, 일자리를 잃어버리며, 가졌던 재산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시며, 우리의 삶을 은혜로 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제 더 확실하게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나아가 기도하며 그를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만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면 우리는 능히 서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젠가 무너질 이 땅의 것들에 의지하여 우리의 삶을 지탱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우리의 삶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삶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땅과 하늘을 모두 흔들어 놓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흔들리는 모든 피조물들을 다 무너지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남겨 놓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히 12:26-27).

우리가 이제까지 의지하여 온 이 땅의 모든 것들은 결국은 다 무너지고 말 것들입니다. 만세반석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이 그 때에 남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흔들리는 경험을 통해서 이제까지 우리가 의지하고 있던 것들이 우리를 이 흔들림에서 지켜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깨닫고,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그를 우리의 삶 한복판에 모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며 그 자손을 번성케 하여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그만을 의지하며 그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그만을 섬기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회복합시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말은 ‘기억하라’ 잊지 말라 는 말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너를 낯추시고 너를 시험하시고 너를 주리게도 하시고 네 열조도 먹어보지 못한 만나도 먹이신 것은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고 함이라.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했는데 그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화재당한 현장이 있었는데 낮잠을 자던 어린아이가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니까 정신없이 3층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3층 옥상에 섰습니다. 불길은 밑에 있고 연기는 자욱한데 소방서사람들이 와서 커다란 보자기를 네 귀를 붙들고 그 아이보고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받아 줄 테니까 안심하고 뛰어내리라”. 옥상에 서 있는 애는 그냥 소리를 지르고 울기만 합니다. “우리가 받아 줄 테니까 뛰어내리라. 우리가 받아 줄 테니 내려와, 내려와”하여도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밖에 있던 어머니가 와가지고 큰소리로 “얘야, 엄마 여기 있다”“엄마가 여기 있다”하니까 이 아이가“엄마!”하고 탁 뛰어내리더란 것입니다. 3층에서 뛰어내리는 용기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엄마의 음성이 들려올 때 그와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그로 하여금 이 같은 큰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세상이 고달프고 또 모든 것이 부조리하지만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소원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현실의 변화를 이루기 전에 먼저 내 믿음을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내 소원이 무엇인가? 내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바른 소원 그것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은 말씀하실 겁니다.“네 믿음대로 되리라, 네 소원대로 되리라”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아름다운 소원, 주님만 믿는 아름다운 믿음을 다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선으로 바꾸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치유했다는 시실을 기억합시다. 지난 날 우리가 더러운 일을 행했을지라도 이러한 나를 선으로 바꾸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시켜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하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자

우리의 기억 속에는 항상 아름다운 영상들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때가 언제입니까? 20대와 30대입니까? 아닙니다. 지금이 청년의 때입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는 20대보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때는 다 청년의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나의 사명을 인식하고 살면 우리는 언제나 청년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면 얼마나 많은 은혜 체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머릿속에 그리며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으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이 필요하고, 학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운도 따라야 합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옥토 밭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마음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고, 축복도 달라지고, 행복도 달라집니다. 실패는 환경 탓도 아니고, 건강 탓도 아니고, 사람 탓도 아니고, 내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비전이 회복되고, 말씀에 열린 마음이 되면 길은 열립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많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것을 더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1순위에 두기보다, 돈, 자녀, 출세에 밀려 4-5순위쯤에 두지는 않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자녀의 앞날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며 항상 하나님을 삶의 1순위에 두고 사는 분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자에게 축복의 길을 여시고 좋은 사람도 붙여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인도의 고든 맥스웰 선교사가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를 아는 수도승에게 언어를 가르쳐달라니까 수도승은 전도하려고 접근하는 줄 알고 응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가 "절대 전도하지 않을 테니까 꼭 가르쳐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과 가까이 지내며 믿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말입니까? 모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데에는 많은 숨은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지만, 어떤 분은 힘써 청소하며 예배를 준비했고 찬양을 연습하며 준비했고 교회학교, 새가족부, 차량부, 봉사부 등 모든 부서에서 오늘 주일을 위해 예배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중보기도실에서는 영암교회 교인들이 예배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말씀 전하는 목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고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예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은 저절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수고해야 그 비전이 성취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손길도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주인의 손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는 대접받는 손님도 필요하지만 손님보다는 주인이 되기를 더욱 힘쓰십시오. 우리가 주는 삶보다 받는 삶에 익숙하다는 것은 가장 큰 반성 제목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받는 삶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그 삶이 달라집니다. 은혜 받은 삶이란 받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주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왜 교회가 중요합니까? 주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삶을 실천하면 우리의 삶에는 주고받는 삶의 균형이 생길 것입니다. 익숙했던 받는 삶을 줄이고, 낯선 주는 삶을 늘리면 삶의 지평은 반드시 넓어집니다. 교회는 주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주는 삶, 섬기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나눠주고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 역할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교회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상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영적 순례자들로 가득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내가 힘이 없을 때 지치고 힘들 때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육체가 피곤한 것 또한 문제이겠지만 정신적으로 나의 영혼이 힘이 들고 피곤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힘을 주십니다. 지친 육체에 새 힘을 불어넣어 새롭게 일어서도록 힘을 주시고 영혼이 지치고 힘들 때 하나님은 따뜻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에 새 힘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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