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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예수 부활의 증인들 (행 1:21~26 (사 32:15~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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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 성령을 기다리라고... 성령이 오실 것 같으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며, 그 권능을 가지고 그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자세로 그 성령을 기다렸습니까?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습니까? 우리도 성령 충만해야 하기 때문에 묻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충만한 권능을 받아야만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증인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때 그들의 준비 자세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이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매우 위태로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들이 묵고 있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의 기도는 모인 무리가 함께 드린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은밀한 가운데 드리는 개인의 기도도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드리는 기도를 더 잘 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또한 그들의 기도는 모인 무리가 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였습니다. 같은 목적을 놓고 합심하여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약속하신 바 성령이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그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 그들 모두의 한결같은 소원이었습니다. 얼마 전 노회원 친목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종목은 줄다리기 뿐이었는데 누가 봐도 우리 편이 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 편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에 있어서도 우리 편이 상대에 비해서 열 명 정도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편이 내리 두 판을 이겨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상대는 다만 힘으로 밀어부쳤지만 우리 편은 주장의 구호에 맞춰 모두 함께 힘을 줬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기도는 모인 무리가 오로지 기도에만 힘쓴 기도였습니다. 꾸준히 기도를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경학자 로버트슨 같은 이는 그들이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에만 매어달렸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남는 시간에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저것 하는 가운데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여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또한 기뻐하십니다. 아울러 우리가 전적으로 기도에 매어달리는 것을 그 무엇보다 기뻐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또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여간 이렇게 기도하던 도중에 베드로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모인 무리를 향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한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나 또 가룟 유다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이 이미 성경에 다 예고되어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매우 난처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롯 유다를 죄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관계된 질문과 더불어 가장 자주 대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처음부터 타락할 수밖에 없도록 지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까닭은 인간과 더불어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요 그런 가운데 기쁨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간의 자발적인 사랑이 요구되고, 그러기 위해서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바로 이 자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락도 허용되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또 스스로 주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이미 그의 맘 속에 스승인 예수님를 배신할 생각을 넣어 준 것을 아시고 여러 차례 그로 하여금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랑의 경고를 끝까지 외면했습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은 그가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하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큰 잘못은 죄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였습니다. 똑같이 죄를 범했지만 베드로는 회개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가룟 유다는 죄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이 왜 문제입니까? 더 이상 용서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스스로 멸망의 구렁텅이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가룟 유다에 관한 문제를 정리한 후, 이제 그 대신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도의 직무를 맡길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의 자격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사도의 자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래야 비로소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사도들과도 협력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사람의 후보를 추천하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맛디아로 결정했습니다.

  제비뽑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즐겨 쓰던 방식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매우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언 18장 18절 말씀처럼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시비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그러나 제비뽑기만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택하였다는 것은 본래 손을 들어 투표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투표에 의한 선출 방법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일꾼을 선출할 때 진짜 중요한 것은 선출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이 더 잘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결코 인간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운영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준비를 완벽하게 다 갖추자 성령이 오셨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은 먼저 제자들로 하여금 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하게 한 후 오셨습니다. 인간의 준비가 성령을 오시도록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준비가 없을 것 같으면 성령이 오시지도 않습니다.

  하여간 오늘 말씀을 살피면서 못내 아쉬운 것은 가룟 유다의 어리석은 처신입니다. 질그릇과 같이 깨어지기 쉬운 존재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으로서 그가 죄를 회개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새 시대의 주역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고든 맥도날드가 얼마 전 도덕적인 실수로 인해서 복음 사역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 년 동안 스스로 깊이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낸 후 그는 전보다 더 강한 전도자로·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뼈아픈 반성을 토대로 해서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실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램프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세라믹으로 된 몸체에 그만 금이 가고 말았다. 마침 나 혼자 있었기에 나는 램프를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금간 데가 보이지 않게 슬쩍 돌려놓았다. 램프는 며칠 동안 그대로 놓여 있었는데, 그 분들이 램프에 가까이 가실 때마다 내 몸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어머니가 램프의 먼지를 털다가 램프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하고 ‘네가 그랬냐?’고 물으셨다. 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네!’하고 대답하고 정직하게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램프를 부엌으로 가지고 가서 갈라진 부분을 접착제로 붙이셨다. 얼마 후 램프는 다시 단단히 붙었다. 그리고 테이블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금간 자국은 항상 보였으나 분명 램프는 다시 회복된 것이다. 무너진 세계는 언제나 금간 자국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그 자국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어머니가 램프에 사용하셨던 접착제 같은 것이어서 때로는 다시 붙은 부분을 원래보다 더 견고하게 붙여 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신앙이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칠전팔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넘어졌을찌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그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우리와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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