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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 (시 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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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
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장 1절-5절)
 
심리학자들이 만든 스트레스 저울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스트레스 지수가 도합 200점에 도달하면 사람이 쓰러진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사망하면 100점,
병들면 53점, 해고당하면 50점,
이혼하면 73점, 별거하면 65점,
가족이 사망하면 63점 등등....
이런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 몸에서 해로운 분비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인체의 조직들이 서서히 죽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잘하면 스트레스를 비교적 잘 관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외과 의사들도 하는 말입니다.
수술 환자들도 보면 신앙이 있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회복 속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역사 하심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웬만한 스트레스는 이겨낼 수 있다했습니다.

우리는 이 보화를 마음속에 소유하고 사는 사람  들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으면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도전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후 4: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강한 압력을 받아도(hard pressed)  산산이 깨지지 않는다(not crushed)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사방에서 내려 눌러도 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해도 성령 님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도전들을 감당하려고 하면 질그릇인데 안 깨질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깨지는 사람들이 많습니
다.
터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문제를 잘 말씀으로 다져놓아야 하겠습니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살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믿는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혼자 방황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헤맬 때가 어렵지 주님과 더불어 고민하고, 주님과 함께 가면 고난의 길을 능히 헤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즉 마음 고생을 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뚜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뚜기를 던지면 마구 돌고 흔들리다가도 딱 섭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한번은 하도 궁금해서 깨뜨려 보았더니, 그 안에 납덩어리가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뚜기를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에 따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 가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떤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1. 현대인의 만연된 병중에 하나는 <우울증>입니다.

문명의 발달은 도리어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약함의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 현상입니다.
우울증은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어쩌면 배운 사람들이 더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생활에서 지식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를 입증해 줍니다.
모든 정신질환의 시작이 우울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어떤 일에서든지 의욕과 흥미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고, 현실의 절망감으로 때로는 자살의 충동까지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이 우울증은 도리어 경제가 성장한 단계에서 더욱 많이 느끼는 증세라고 합니다.
예전에 육체노동으로 살아갈 때, 즉 농경사회에서는 거의 없었던 병이 오늘날 문화생활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이런 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더욱이 경쟁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들이 많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우울증의 원인은 기대심리의 불 충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성경적으로 보면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기 때문이고, 어떤 경우에서든지 자족할 줄 모르는 욕심과 탐심의 결과라고 봅니다.

2. 그런데 큰 문제는 신앙 생활에서도 우울증은 나타나기 쉽습니다.
내가 지금 신앙 생활에 우울증이 걸리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① 신앙 생활에 우울증이 걸리면 우선 교회생활에서 무기력해 집니다.
교회에 대하여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교제에서도 아무런 의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복음 사역을 위해, 주님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신앙 생활이 재미가 없습니다.
큰 감격스러움도 없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웃과 싸움도 잘합니다.
요즘 믿는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②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습니다.
설교 시간에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인들간에서 사랑보다 비판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만 생깁니다.
결국 자기로 인하여 남들까지 우울하게 만듭니다.
이쯤 되면 신앙 생활에 {중증 환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시험에 넘어가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시험에 드는 것을 보면,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드는 시험입니다.
초신자들 에게는 시험 드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야 탕자처럼 돌아옵니다.
성령과 악령의 차이는 우울증에 걸렸을 때 현격한 차이로 나타납니다.
성령은 사람을 살리는 영이지만, 악령은 사람을 죽이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로 이겨내야 합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자신의 내면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로움이요 능력입니다.
우울증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의 힘뿐입니다.

3. 그러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① 속 사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겉 사람만 보면서 살아온 삶인지도 모릅니다.
신앙 생활도 속 사람보다는 겉 사람을 위해 믿는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속 사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앙망(仰望)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앙망> 이란 바라보면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현대 의학의 약물로는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설령 치료한다고 해도 그것은 부분적인 치료일 뿐입니다.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근본적인 치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② 그러기에 우울증은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증을 신앙으로 극복하면 인격의 성장과 신앙적 성장의 순기능도 있습니
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보면 모두 이런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서 자신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기도도 보통 때는 기도가 깊어지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러서야 기도도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신앙생활에서 갈림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려서 악령에 시험으로 빠져 버리느냐? 아니면,
성령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지느냐? 하는 갈림길입니다.

③ 그리고, 현실 너머의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현실이 나의 끝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잡석(雜石)으로 뒤섞인 광석이 용광로 속에서 철물이 되어 나오듯이 고난의 역경 속에서 미래의 기쁨이 조성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 생활에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라고 맡겨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중에 지난 세월의 반성과 함께 오는 세월의 일어날 모든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지난 세월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 하여 그 숫한 인생 환난과 질고의 계곡을 넘어 오늘까지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내가, 어찌 네 앞날에도 동행하지 않겠는가?
네가 네 키를 염려함으로 한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태어나는 복도 큰복이지만, 죽는 복도 큰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경기장에서 마지막까지 뛰다 종료 휫슬이 울리면 미련 없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큰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앙 생활에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시 뛰는 신앙의 경주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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