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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행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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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웠다면 굉장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만 키워 놓고 가셨습니다. 이 열두 제자가 3년 4개월 동안 예수님께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요즘 신학생들처럼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3년 4개월을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갖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충만한 사람들이요 예수 전문가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에 올라가 천국의 영광을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나는 모습,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을 다 보았습니다. 이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은 성령 충만을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신자가 되고 믿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은 일군이 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예수를 제일 잘 믿은 사람은 일군 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상고하겠습니다.

I. 증인의 생활 (6-8)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시면 권능이 나타나고 생활 속에 권능이 나타날 때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본문에 증인이라는 말과 교회에서 흔히 쓰는 순교자라고 하는 말은 같은 말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은 예수님을 위한 순교자가 되리라는 말입니다. 순교자는 목숨을 내 놓고 믿고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믿는 사람이 제일 잘 믿는 사람이요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 주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붙잡혀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제 한목숨 살겠다고 하나같이 도망을 쳤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목숨을 내놓고 충성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능력이 생활 속에 나타날 때 이런 순교자적인 자세로 충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즉 상태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바라바를 알고 있습니다. 강도로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고 사형이 언도되어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지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칩니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게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잡혀오지 아니 하였다면 바라바는 영락없이 죽을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산 사람입니다. 평생에 예수님의 덕을 제일 많이 입은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죄로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바라바가 예수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매를 맞고 가시 면류관 쓰고 조롱당하면서 끌려가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모습을 보니 너무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를 믿겠다고 예수 믿는 무리를 따라 다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살인자라고 멸시 천대를 하고 어울려 주지를 않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못 이겨 나중에는 교회를 떠나가 교회를 버립니다. 바라바가 평생에 배운 것은 도적질밖에 없습니다. 다시 강도 짓을 합니다. 로마군에게 붙잡히고 감옥에 갇혔다가 노예로 팔려갔는데 로마로 팔려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노예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당시만 해도 기독교인이 붙잡히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바라바가 노예생활을 하는데 독실한 신자 노예를 만났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예수를 잘 믿습니다. 그에게 전도를 받고 다시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는 죽으나 사나 끝까지 믿기로 결심하고 만나는 노예마다 전도를 했습니다.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믿는 사람을 죽일 때 산사람을 산채로 불태워 죽이고 사자에게 던져 먹이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이 순교를 당합니다. 바라바도 그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에게도 전도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하고 은혜를 체험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능력이 생활 속에 나타나야 순교자적인 일군 즉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성령 충만은 편히 누워 자다가 받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II. 변화의 생활 (9-10)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들은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골3:1).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예수님이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병 고치는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고, 축복 받는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고, 출세하는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게되면 그 믿음은 불행해 집니다. 반드시 예수를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본문으로 돌아가 9절에서 10절에 "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세상만 봤습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회복할 때를 물어볼 정도입니다. 주님이 왕이 되어야 높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할 것이 아니냐는 정치적 속셈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해 올라가시는데 제자들이 하늘을 처다 봅니다.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하늘을, 땅의 것을 찾던 목적이 예수님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증거하고 싶어도 무능하여 증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능력을 받고 세상 것만 찾던 자들이 하늘 의 것을 바라보는 목적의 변화, 생활의 변화, 인생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변화는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학 한 마리가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내려앉았습니다. 황새가 시궁창에서 달팽이를 찾고 있습니다. 황새가 묻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니? 하늘에서 왔다. 하늘에 가면 달팽이가 있냐? 하늘나라에 가면 달팽이 보다 열배 백배 좋은 것들이 많단다. 그렇지만 달팽이는 없단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황새가 하는 말이 달팽이가 없으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교회에서도 세상이라는 시궁창에서 세상 것만 찾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10년을 교회에 나와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셔도 교회에 나오면 됩니다. 술끊고 나오라 하면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생기면 주초를 끊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우는 골초가 담배끊고 나오라고 하면 나옵니까? 교회에 나와서 믿음이 생기면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당장 고쳐야 할 것은 습관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땅을 바라보고 세상 것만 찾던 목적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것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높아지고 몇 푼의 돈을 버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예수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하늘나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제일먼저 바꿔야 할 것은 목적입니다. 이것은 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III. 준비의 생활 (11-)

솔로몬이 잠언에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모으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개미는 여름에 다른 동물들이 춤추고 놀며 그 날 그 날을 즐길 때에도 땀흘려 창고에 쌓고 겨울을 준비합니다. 솔로몬은 개미에게서 준비의 생활을 배우라고 합니다. 자기 인생을 준비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본문 11절에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승천해 하늘로 가신 것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주님이 오시는 줄로 믿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보내시면서 이런 말씀 저런 말씀 끝에 너희가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 동네를 다니는 것은 평생에 모두 다닐 수 있는데 다니기 전에 오신다고 하시니 자기들의 생전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을 한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함은 주님이 재림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복음화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복음화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줄 알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 날 그 날을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으므로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제자들의 삶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주께서 재림하신다는 자세로 준비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복음화가 되든지 안되든지 그 날 그 날에 충실한 삶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의 삶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삶과 믿음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마치 학생이 공부에 충실하여 항상 시험준비가 되어있는 학생과 같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맞이할 준비는 한 날의 삶의 충실함에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미래를 준비합니다.


VI. 참여의 생활 (12-14)

12절에서 14절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면 그 가정공동체는 운명공동체 입니다. 남편이 성공했는데 아내는 거지노릇을 할 수는 없습니다. 부부라면 운명을 같이 합니다. 공동체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할 때 활발해 집니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벌고 함께 놀고, 모두 함께 하는 가정이 제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제대로 되려면 모이자 하면 다 모이고, 기도하자 하면 기도하고, 전도하러 나가자 하면 전도하여 공동체가 하는 일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팔짱끼고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구경꾼은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10년을 다니며 구경해도 구경은 예수 믿는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손발을 걷고 참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으면 구경만 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120명이 하나의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기도하는 일에 빠지지 아니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에 하나같이 앞장서서 참여함으로 주의 일을 함께 하는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변화의 일이지만 성령의 충만으로는 상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120명의 신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목적의 변화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 준비에 만전을 기합니다. 준비한 자만이 성공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준비는 그 날의 충실한 삶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앙공동체의 일이라면 앞장서서 참여합니다. 이상의 삶은 성령 충만한 자의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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