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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방법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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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형준 (동안교회)

미국 오하이오주 북서부로 향하는 철길을 예정에 없던 기차 한대가 달리고 있는 것이 레이더에 포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긴장했습니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싣고 마흔 일곱 량의 기차는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기차는 기관사와 차장이 마지막 정거장에서 잠깐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세워놓은 사이에 브레이크가 풀렸는지 저절로 역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시속 9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만약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한적한 곳에서 기차를 탈선시키고자 시도하던 중에 다른 기관차를 투입해서 뒤따라간 후 기적적으로 서른 한 살의 노련한 열차 담당 직원을 옮겨 태울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가까스로 바꿔 탄 직원은 겨우 난간을 잡고 기관차 앞으로 갔습니다. 엔진을 끄고 브레이크를 잡고 아슬아슬한 순간에 겨우 기차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기차 사건은 우리 삶도 이런 모습이지 않은가 돌아보게 합니다. 어제 살아온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오늘 사는 것처럼 내일을 살아갈 것입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기관사 없는 기차처럼 질주하며 어디론가 달리다가 벽에 부딪혀 폭발할 때 까지 오늘을 막연히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실제로 인생과 가정이 깨지고 부서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몸을 던져서 죽는 사람들은 마치 앞서 말한 기차가 그대로 달려갔다면 일어나고 말았을 폭발사건과 같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혀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며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남기고 떠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인생의 정거장에 멈추어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점검하지 않고, 운전자인 기관사에게 어느 만큼의 속도를 내고 무엇을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맡기지 않으면서 무조건 빨리 달린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는 지금 40일 동안 인생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 새벽마다 살펴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입니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는 기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되고 있기는커녕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정거장에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새 출발하고자 결단하는 많은 분들을 짧은 기간이지만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가족으로 삼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교제하며 교제의 풍성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제가 있기 때문에 맛보는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더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40일 새벽기도 기간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가족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주신 가족들을 사랑하며 함께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앞으로 한 주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또 다른 목적에 대해 생각해볼 텐데, 세 번째 목적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간에 사랑이 더하고, 꿈과 비전이 더 구체적이 되며 이 땅에서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기를 원하시지만 정작 우리의 모습은 진짜 성장해야 할 부분보다는 정욕과 욕심, 미움과 증오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 2박 3일간 설악산 켄싱턴 호텔에서 75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세미나에 참석해서 아픔이 있는 가정이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매 시간 부부간에 서로를 향한 원망과 한숨, 눈물과 탄식이 있었습니다. 자녀들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한 부모의 피눈물도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남편과 혹은 아내와 살수 없다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마지막으로’하는 심정으로 세미나를 참석한 커플들도 많았습니다. 자라지 못한 사랑, 성숙하지 못한 인격 때문에 관계가 깨지고 부서져 가정 안에 세월의 아픔들이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장해야 될 것은 성장하지 않고 성장하지 말아야 될 미움과 괴로움, 증오와 고통 그리고 슬픔만이 어느새 무성히 자라 우리 인생 전체를 덮어 오늘 하루하루도 어제까지 살아 왔던 것처럼 내일도 역시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딘지 모를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물리적인 벽에 부딪혀 인생이 깨져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은 바르고 아름다운 성장을 위해서 먼저 우리 삶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려 질 때 참된 성장과 성숙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 말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여기서 ‘몸’은 육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전체, 존재 전부를 말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모든 관계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육체의 건강과 물질, 가족들과 자녀들, 지식과 권세 등을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쾌락의 도구로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 드리는 통로와 도구로 사용하게 될 때 진정한 성숙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드림’이란 한번만 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도 계속해서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나타나는 큰 변화가 있다면 삶의 모든 여건으로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던 것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변화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더불어 거하시는 공간이 되고 주님이 거하시는 시간이 되어,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즐겁게 살았던 도구들이 이제는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삶의 도구로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반면에 로마서 6장 12절에서 13절에서는 우리 몸이 불의의 병기로도 쓰일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자기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외도하는데 사용하여 남편 혹은 아내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줍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손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기보다 때리고 지적하고 낙담시킬 때가 많습니다. 주신 입술로 축복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대신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보다 욕심과 증오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가 가진 물질, 지식,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통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로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칼이 강도의 손에 잡히면 많은 사람을 상하게 하고 심지어는 생명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수술하는 의사의 손에 잡히면 상한 환부를 도려내어 생명을 살리는데 쓰입니다. 칼 자체는 나쁘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목적에 따라, 누구 손에 잡혀있는지가 칼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렇듯이 오늘 권세와 지식, 물질과 건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특별히 몸을 강조한 이유는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육신이란 영혼의 감옥이라는 사상이 당시에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거룩하고 귀한 것이요, 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몸을 천히 여기는 사상과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몸을 육체의 쾌락과 바르지 않은 삶을 위한 도구로 쓰지 말고, 몸 까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통로로 올려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짧은 순간에 순교하는 것은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산 제물로 올려 드리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디 엘 무디 목사님은 공부를 많이 한 분이 아닙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하버드 대학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며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하고 내려오는데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님 한분이 ‘목사님 오늘 말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 중에 문법이 무려 스물여섯 군데나 틀렸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순간 당황했지만, 다시 정색하며 교수님에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저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 지식으로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사용합니다. 교수님은 하나님 주신 지혜와 놀라운 실력을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무디 목사님의 질문은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요? 내 삶의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 드리는 산 제물 될 때에 진정한 성숙이 있게 됩니다.

둘째 온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이 원하시는 성장을 위해 변화 받아야 될 것이 많지만, 외형적이고 현상적인 것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우리 생각과 이해, 감정과 지식 그리고 태도를 모두 합쳐서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이 내 마음, 인격과 인생관을 지배하도록 두지 말고 성령께서 깊은 마음의 동기와 삶의 근본을 만지시도록 성령님께 맡겨 드리라는 것입니다.

제이비 필립은 성경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주변 세상으로 하여금 너희를 짜서 그 형틀에 맞추게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희 마음을 속으로부터 다시 틀을 짜시게 하라” 세상의 틀이 우리 마음을 형성하도록 맡겨 두지 말고 성령께서 만들어 가실 수 있도록, 내면의 삶을 만들어 가실 수 있도록 성령께 맡기십시오.

본문에서 ‘세대’라 함은 시대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신,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상을 말합니다. 오늘 이 시대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의 모습과 문화를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쾌락은 위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우리를 영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풍속을 따라가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새롭게 됨을 받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부부세미나를 하는 중에 부부관계에 대한 아무리 좋은 강의와 웍크샵을 해도 부부가 변하질 않습니다. 하다가 중단하고 내적치유를 시작했습니다. 개개인마다 살아온 삶 속에 깊이 배인 상처와 아픔, 자기인생 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가치관, 자기 마음의 운전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잘못된 가치관을 치료하고 난 다음에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타난 현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동기가 하나님을 향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백설공주를 그린 만화가 중의 한 사람 월트 킴볼은 일곱 난장이가 백설 공주를 위해 스프를 끓여주려다가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약 4분 30초짜리 우스운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장면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려 240일을 작업했고, 아무리 재미있어도 본 목적과 흐름에 맞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장면을 삭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월트 디즈니 만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이유입니다. 주제가 맞지 않은 것을 골라 잘라 내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삶의 부수적인 것을 잘라내고 정리하는 마음의 놀라운 변화, 바로 성숙을 의미합니다. 오늘 내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결단하고 돌아설 수 있을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즉 주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육을 즐겁게 하고 영을 타락시키는 삶의 습관과 기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포르노를 보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부모님들이 보고 잘못 놓아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접하지만 부모들의 잘못된 습관과 가치관으로 인해 자녀들이 멍드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 일시적인 기쁨은 주지만 내 영혼을 살찌우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들을 멀리 하시길 바랍니다. 술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유익하지 못하다면 술을 멀리 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잘못된 관점을 가진 친구가 계속해서 충동질한다면 그 친구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진정한 성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못된 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와 떨어뜨리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설득합니까? 그러나 정작 여러분 삶 속에서는 떠나보내지 못하고 오히려 중독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삶 속에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떠나보내야 합니다.

떠나보낼 뿐만 아니라 내게 유익이 되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과 만나 교제하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 말입니다.

이번에 만난 커플 중에 감리교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아내가 울면서 남편에게 언젠가 자기한테 뼈아픈 말 한 것 기억하느냐고 묻습니다. 남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남편 하나 보고 살아온 아내에게 언젠가 너무너무 어려워 이혼하자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아내가 자녀들 때문에 이혼 못한다고 하니 남편은 아이를 죽이면 이혼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만약 그랬다면 나는 정말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 너무 증오했습니다. 미워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순절 기간의 사십일 동안 성경을 통독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년 초에 헌금봉투 앞에 ‘주님! 제가 이제는 주의 날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성경을 일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했던 서원기도를 기억하고 통독 프로그램에 참석합니다. 말씀을 읽는 가운데 자기가 죄인이란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정말 자기 마음을 고침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통독을 계기로 정말 미워서 때려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그야말로 자기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이 달라졌고 마음에 새로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부부 사랑이 회복되기 시작하는데 서로 발을 씻겨 주면서 ‘당신 나 때문에 수고 많이 했어. 치매 걸린 아버지 2년 동안 대소변 받아내느라 고생 했어. 내가 취직 못해 일 못하는 동안 당신이 말없이 경제적인 것을 이끌어 가기 위해 수고하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고, 당신 눈가의 주름을 보니 내 마음이 덜컥해.’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울면서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또 아내는 남편의 발을 씻어 주면서 ‘여보, 나는 당신의 마음을 너무 몰랐어요. 당신의 마음이 그렇게 외롭고 고독한지 몰랐어요. 나 힘든 것만 호소했어요. 여보, 미안해요......’ 부부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미워했던 그들이 성장하니까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증오했던 그들이 서로 성숙해지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맡았던 커플 중에는 이혼 도장 찍고 온 부부가 있었는데 도무지 변화가 없습니다.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보다 더 했다고, 그러나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는 것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 말씀 앞에 섰기 때문이라고, 당신이 신앙생활만 하면 시각과 마음이 변화될 것이라고……. 결국 그들은 이혼하지 않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많은 부부가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행복한 척, 다정한 척 하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가정에 기쁨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쁨과 회복, 쉼이 있어야 할 가정이 체념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인 현실입니까?

우리 속사람이 변화 돼야 합니다.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이 우리 마음과 심령을 만들어가도록 허용하지 마십시오. 삼각관계, 사각관계 드라마가 우리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십시오. 첫사랑을 찾는 드라마가 지금 아내를 두고, 남편을 두고 처음 사랑을 찾아 방황하도록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텔레비전에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고, 남자가 여자의 얼굴에 술을 던져 붓는 등 자극적인 장면이 멋있게 느껴져 자기도 화가 날 때 똑같이 실천해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드라마 제작하는 분들의 말에 따르면 프로그램이 자극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본다고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말씀과 찬양 앞에 서고자 새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감화 감동 주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져 성장할 것을 기대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성장을 위해서 습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3절 이하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분별한 후 구체적으로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해 구습과 죄악을 쫓아가던 습관을 벗어 버리고 믿음에 기초한 새 습관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성품인 그리스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품이란 우리 습관이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격을 보면 습관을 알 수 있고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입술로는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삶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섬기고, 따라가는 진정한 습관의 변화 없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말씀대로 사는 습관 없이, 기분 나쁘고 화가 나면 성질대로 해왔던 방식대로 하는 습관을 가지고는 믿음의 진정한 성장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씀합니다.

내 습관이 어린아이의 습관 같이 조금만 불편하면 불평하고 원망하며,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고 좌절하며, 조금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 탓으로 돌리려는 습관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의 뜻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가족들을 축복하는 습관이 있습니까, 집을 떠날 때, 집에 돌아 왔을 때 자녀를 믿음 안에서 축복하는 습관이 있습니까, 가정에서 말씀 보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습관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지금 자녀들의 습관을 방치해두었다가 잘못 형성하게 되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풀러 신학교의 아치발트 하트 교수는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쁜 습관과 경쟁이 되는 새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습관을 위해서는 강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할 때에 바뀔 수 있습니다.’그리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강조했습니다.

1.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라.
2. 자신의 실패를 용납하라.
3. 양심을 맑게 하라.
4.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 말라.
5.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 작은 은총이라도 소중히 여기라.
6.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7. 올바른 낙관론자가 되라.
8.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9. 이 모든 것을 현실 속에서 늘 찾아라.

새벽에 교회 나와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굉장히 힘듭니다. 우리 옛 습관 가지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하루를 설계하고 시작하는 습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자 저녁 시간을 아끼는 습관은 가치 있습니다. 정말 자기 인생을 아끼는 사람은 새벽시간을 활용합니다.

얼마 전에 광림교회 전도 왕을 지냈던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믿고 보니 주일날 교회에서는 예수 믿는 신자인데 생활 속에서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더랍니다. 그래서 고민 하는데 이런 지혜가 생기더랍니다. 가족을 위해 티셔츠를 살 때면 하나를 더 사고, 양말을 살 때도 한 켤레를 더 사고, 그릇을 살 때도 한 세트 더 산다는 겁니다.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를 더 구입하여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활 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습관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반성하고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목사라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교회 일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 자매님처럼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인정하여 어느덧 하나님 뜻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름다운 신앙의 습관을 형성하시고 자녀들에게도 아름다운 습관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대 유산은 좋은 습관이라고 합니다. 싸우고, 원망하고, 낙담하고, 탄식하는 모습이 아이의 눈에 비취면, 곧 그 아이의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절망 가운데서도 주님을 기뻐하며, 구차함 가운데서도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는 습관이 오늘 여러분 영혼을 새롭게 만들고 성숙하고 성장하게 하기를,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의 생애와 여러분과 함께 하는 가족과 그리고 교회를 통해 주님의 기쁨이 이 민족 위에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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