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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세가지 질문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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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기태 목사 (창원침례교회)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25-33)

어느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영특한 딸이 엄마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난 거예요?" "응! 하나님이 널 만드셔서 선물로 우리 집에 보내 주셨단다." "그럼 엄마는요?" "엄마도 하나님이 너처럼 아기로 만드셔서 선물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주신거지!" 그러자 영특한 딸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나, 참! 그렇다면 우리 집 남자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좋은 질문을 잘 하고 많이 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무 질문도 없이 믿는 사람보다 좋은 질문을 가려 잘 하는 사람이 견고한 믿음에 서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도 아무 질문도 없이 사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풀고자하는 몸부림치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의 운명적인 순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비추며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세 가지 질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1.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는 것에 의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남편도 바다에 나가 선원이 되어 배를 타다 죽었고 큰 아들도 역시 선원이 되어 바다에서 풍랑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나이 어린 작은 아들 만큼은 절대 선원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바다로부터 멀리 이사와서 사는데 작은 아들마저도 선원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인이 아무리 만류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고민을 상의하였는데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보더니 "저 그림을 당장 치워 버리십시오."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넓은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나아가는 멋진 배와 선원의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치워버리자 작은 아들의 선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것 저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며 실과가 모두 탐스럽게 잘 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은 체구가 몹시 크고 힘이 세며 전투를 잘하게 단련된 강하게 생긴 사람임을 보았습니다. 또 그 땅에는 견고하고 큰 성벽을 높이 쌓아 그 성벽을 넘거나 무너뜨리기가 용이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고 돌아와 자기 민족을 비교하여 보니까 자신들은 메뚜기같이 작고 무능해 보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본 것은 정확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력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상황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거인들이고 용맹스러웠고 전쟁에 대비하여 튼튼한 성벽을 쌓고 방어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워 이기는 일은 먼 길을 여행하며 지쳐있는 이스라엘백성의 힘으로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전투력으로는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런 현실을 꿰뚫어 보았던 정탐꾼들은 정복 불가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에게 보고하면서 '우리가 그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두 명의 정탐군들은 똑같이 정탐을 하고 돌아왔지만 전혀 다르게 보고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합니다. 왜 열 사람은 가나안 정복 불가의 결론을 내세우는데 두 사람은 정복 가능 내지는 정복 필수를 외칩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아주 중요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육안으로만 보지 않고 영안으로 영적 세계를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14장 8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간의 군대로 정복할 계산만 하였으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그 전쟁에 개입하셔서 승리를 주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 그러므로 두려워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저들은 우리 밥이다. 다 차려논 밥상 먹기만 하면 되는데 왜 두려워하고 피하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육안으로 현실만 바라보면서 두려워 떨며 뒷걸음치며 사는 사람이 있고 영안으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람이나 질병이나 귀신이나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처해서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운명은 정반대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골리앗을 보고 '우리가 싸우기에는 너무나 큰 거인이다.'라며 뒷걸음질치고 숨었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교만하여 떠드는 것을 보니 네 운명도 끝이구나! 손쉽게 이길 수 있겠구나! 하고 겁내지 않고 나가 꺼꾸러트렸습니다.
오늘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중에도 믿음의 눈은 감겨 있고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낙심하고 주저앉아 울고 있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도망갈 궁리만 합니다. 불안해하며 자신의 불신앙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처럼 현실만 바라보고 계산하지 마십시오. 두 명의 정탐꾼처럼 우리와 함께 계시고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크기의 일을 벌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좋은 믿음을 소유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눈을 크게 뜨고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나를 기뻐하셔서 나의 인생에 큰 계획을 세우시고 나의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나의 한계 상황에서 능력을 나타내시고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육안으로 세상 사람들이 보두 보는 것만을 보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사람만이 볼 수 잇는 것을 보십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2.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이스라엘백성들은 소수인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을 듣기 보다는 다수인 열명의 정탐꾼의 말을 더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영향이 그대로 미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여 폭도로 변했습니다. 군중들은 모세와 아론을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다수의 견해라고 해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를 분별하지도 않고 부정적 견해를 무조건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보고,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의견을 따른 백성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스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입니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랐습니다. 다수의 위협에도 눈치보며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가 무엇인지 깨닫고 지도자 모세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하고 인정하셨습니다. '나를 온전히 쫓았은즉'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였다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귀에는 두 종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소리이고 하나는 우리에게 참된 길을 지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면서 넘어뜨리고자 유혹하는 온갖 소리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유혹하던 소리들이 계속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슴도 함께 들려옵니다. 아무 소리나 다 듣지 말고 그것이 미혹하는 소리인지 진리가운데로 인도하는 말씀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험한 소리가 분명하면 말씀으로 곧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소리에 속아 우리의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악한 영향을 주는 부정적인 말과 불신의 말에 끌려다니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게 될 수 있습니다. 코앞에까지 다가온 축복을 발로 차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은혜를 상실하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소리나 다 들어서는 안됩니다. 불신의 말, 부정적인 말, 악평하는 말, 원망의 말을 조심하고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로운 말을 가려 듣는 복된 귀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골에서 한 소년이 늘 주위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처녀 때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소년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소년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해 너무 외롭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마을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럽다는 소문이 나자 그 소년은 설교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여러 번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주일 아침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배시간이 시작된 후에 들어가서 조용히 됫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나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소년은 주일만 되면 발길이 교회로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소년은 점차 하나님 아버지께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늦게 가서 됫자리에 앉았다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과는 달리 예배를 마치고 조금 늦게 어른들 사이에 숨어 예배당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소년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었습니다. "넌 누구냐? 누구의 아들이지?"
돌아보니 거기에 목사님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곧 이어서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아! 네 얼굴을 보니 누굴 닮았는지 알겠구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이 소년은 목사님의 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변화되었고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벤 후퍼입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주에서 주지사로 두 번이나 당선되었고 사회와 교회에 아름다운 삶의 본을 남겼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일 예배 후 목사님께서 제게 하신 그 한 마디가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3.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열 명의 정탐꾼의 영향으로 이스라엘백성은 우왕좌왕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로 나온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려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축복으로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후손인 그들에게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오로지 그 땅에 들어가려는 목표로 거기까지 왔는데 목표를 상실했습니다. 갑자기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하며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백성이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과거로 돌아가려고 갑작스레 목적지를 변경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여 두려움이 앞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도저히 불가능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제 그들의 꿈과 기대가 다 물거품이 되었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영원히 미아가 될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애굽이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이라도 돌아가서 받아달라고 사정하자.'

여러분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습니까? 목적지가 뚜렷하고 나아가는 분명한 방향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중에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되는대로 방향도 없이 목표도 없이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바람부는대로 물결이 흐르는대로 시대의 조류에 따라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옛날을 회상하며 옛날로 되돌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18세기초 영국에 윌리엄 캐리라는 행상인이 있었습니다. 소달구지에 물건을 싣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팔면서 기회있는대로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누더기가 된 세계지도를 보여주며 말하기를 "나는 먼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평생 소원입니다."하고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취급을 했습니다. 엉뚱한 공상가라고 빈정거렸습니다. 후에 그 윌리엄 캐리는 인도 선교를 개척하여 성공적으로 선교하였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사람들은 그를 부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비젼이 있고 목표가 분명해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위기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목표를 바꾸지 않은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광야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동안 광야에 머무르며 죽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빙향을 잃어버리고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은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숨을 쉰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꿈을 품고 살며 끊임없이 도전하여 성취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도 아름다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일하실 것을 확신하며 물러서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돌아갈 궁리를 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십니까?

학생 수가 39명뿐인 작은 섬에 한 선생님이 부임해왔습니다. 이 선생님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그 집에 가서 밤새 물수건을 갈아 주며 간호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섬에는 어른들이 얼마나 욕설을 많이 하는지 아이들의 입에도 욕이 늘 붙어있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제안했습니다. 이것은 욕표다. 한 사람에 열장 씩 준다. 한 주일동안 친구간에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장씩 뺏어라. 그래서 가장 많이 모은 사람에게는 공책을 선물로 준다. 그리고 다 뺏기고 한장도 없는 사람은 발가벗고 운동장을 도는 벌을 받는다. 누런 시멘트 종이를 잘라 공책으로 쓰던 시대에 아이들에게 하얀 공책은 굉장한 기대였습니다. 드디어 한 주간이 아이들이 욕표를 책상위에 내 놓고 상과 벌을 기다렸습니다. 한 아이에게는 욕표가 한장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따라오라고 하더니 교무실에서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열 대 맞는다. 큰 소리로 세라. 네대를 맞고 너무 아파서 돌아서서 선생님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렇게 실망시킬 수 있느냐"며 울면서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아이는 돌아와서 책상에 엎드려 울면서 결심했습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거야, 나도 선생님처럼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될거야,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거야"

그 소년이 우리 나라의 상담학의 최고인 한신대학교 정태기교수입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첫 월급을 탔는데 50만원이었습니다. 2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30만원으로 선생님을 대접하겠다고 초청했습니다. 비행기표를 보내드리고 서울의 최고 유명한 중국음식점에 가서 20만원을 내놓고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몇 인분을 준비할까요?" "2인분입니다." "이 돈이면 40인분도 준비할 수 있는데요?" .... 그런데 백발의 선생님은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안드십니까? 미안하이 위암 말기라네.. "선생님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선생님의 영향때문입니다. 그때 울면서 때린 선생님의 회초리덕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예수님도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도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듣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그 질문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을 반듯하게 교정하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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