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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른 뼈가 군대가 되는 비전을 ! (겔 37:1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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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삼철 목사 (천호교회)

시작하는 말 

이상(理想)이란 ①소원의 극치(an ideal) ②야망의 목표(the goal of ambition) ③ 궁극적인 목적(the ultimate object)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상이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최고라고 생각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인생의 최고 궁극적 목표인 진선미의 합일점을 말합니다.

개인이나 집단, 나라와 민족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상향(Utopia)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이상향은 "지상의 낙원, 이상적인 정치체제, 공상적인 완전 사회조직"을 꿈꾸고 있습니다. 소위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너무 멀고도 험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상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이상, 가정에 대한 이상, 사회에 대한 이상, 미래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상형을 찾아 오늘도 헤메이고 있습니다.

이상은 찾은 듯하여 잡아보면 제 그림자를 잡은 듯하고, 뜬구름과 안개를 잡은 듯하여 이내 실망하고 주저앉거나 뒤돌아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품고 있는 이상은 절대로 실현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헤메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는 절대로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목회자들은 이상적인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목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에는 목회하기에 이상적인 교회는 없습니다. 이상적인 당회원들도, 교인들도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린도 교회와 같은 문제 투성이의 교회를 접하게 됩니다.

사람이 모인 교회나, 목회자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근본은 어느 누구나,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것보다는 비전 적인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상(ideal)과 비전(vision)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인 반면, 비전은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묵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상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점점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이란" 말씀은 "비전이 없으면"이란 말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에스겔서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에스겔은 비전(환상)의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이 가졌던 비전중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마른 뼈가 군대가 되는 비전"은 정말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비전입니다.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무덤은 앗수르를 말합니다. 골짜기의 뼈들은  앗수르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소망을  잃고 멸절되었다고 포기하고 있는 이스라앨 백성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비전은 소망을 잃고 낙망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서 큰 군대가 되어 본국으로 다시 돌아올 비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개인적으로는 절망에서 소망을, 가정적으로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나라와 민족적으로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교회 적으로는 침체에서 부흥으로 도약하는 비전입니다.

거지가 왕이 되려는 것은 거지의 허황된 이상입니다. 그러나 거지가 왕 이상으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전입니다. 나사로는 그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비전을 이루자면 !


1.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겔37:1)라고 당시 자기의 영적인 상황을 설명합니다. 에스겔의 영적인 컨디션은 매우 양호했습니다. 최고의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셨다"는 말은 "여호와의 손이 내위에 임하셨다"는 말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손으로 나를 잡으사"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비전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엄청난 환난과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 두 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이 비전을 이루어야 할 곳은 해골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는 공동묘지, 그것도 파헤쳐진 공동묘지였습니다. 어시시한, 소름이 끼치는 공동묘지였습니다. 우리가 비전을 이루어야 할 무대는 공동묘지와 같은 세상입니다.

엘리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함이니이다"(왕상19:4)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 잤습니다. 잠시 후에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왕상19:5)고 했습니다. 천사가 어루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비전을 이루는 곳은 험난한 세상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다보면 믿음이 약해 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비전을 가지고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한밤중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했습니다. 마침 주님이 가까이 물위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허락을 받고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14:30-32)고 했습니다.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는 분명히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손이 베드로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셨습니다. 비전은 주님이 권능의 손으로 잡아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2.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에스겔은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겔37:1)라고 말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 즉 성령에 이끌리어 해골 골짜기로 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해골골짜기였지만 신령한 성령 충만한 눈으로 볼 때에는 비전의 골짜기였습니다. 비전이 이루어지는 현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았기에 모리아산에서 아들 대신에 산양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늘의 별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자나깨나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에 빈들에서 양들을 위해 곰이나 사자와 싸워이겼습니다. 전쟁터에서 적장 골이앗을 물 맷돌 하나로 눕힐 수 있었습니다.

빈들이나 토굴에서, 숲속이나 황무지에서 사울의 창이나 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불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후 아둘람굴에서, 놉땅에서, 그일라에서, 십 황무지에서, 엔게디 황무지에서, 시글락의 아말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는 자는 이삭과 같이 억울하게 밧줄에 묶여 칼날이 금방 목에 번득인다 할지라도, 요셉과 같이 억울하게 감옥 깊은 곳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요나와 같이 바다 깊은 곳에 빠진다 할지라도,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에 던짐을 받는다 할지라도, 다니엘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풀무 불에 던지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성령을 떠나 자기들 마음대로 동산을 거닐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내는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허황된 이상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붙잡고 평생에 씨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수님은 허황된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짐승같이 되어 오로지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는 비전을 가고 계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셔서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전이 있으셨기에 성령과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예수님을 시중 들었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비전인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흩어진 성도들은 홀로 고아와 같이 흩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고, 그들이 하는 일마다 성령의 역사인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극한 가난,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 견딜 수 없는 환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 성령이 인도하시면 비전을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 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4-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최후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혼돈한 우주를 질서의 우주로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온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시편기자는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 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 즉 물이 흐르는 도다"(시147:15-18)라고 말했습니다.

양털같이 내리는 눈, 재같이 흩어지는 서릿발, 떡부스러기 깉이 뿌려지는 우박의 추위와 재난을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그러한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달리면 봄바람이 불어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사람 살만한 아름다운 비전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 만물들이 다 듣습니다. 산천초목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동물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죽은 시체도(나사로, 나인성의 청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골짜기의 해골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움직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비전은 이루어집니다.


4.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각된 흙덩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본 뼈들이 군대가 되는 비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①소리가 나는 단계 ②움직이는 단계 ③서로 들어맞는 단계 ④서로 연락하는 단계 ⑤힘줄이 생기는 단계 ⑥살이 오르는 단계 ⑦가죽이 덮이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완전한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생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큰 군대더라"(겔37:10)고 비전의 성취를 선포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운 모양을 갖출지라도, 인간의 제도와 시스템이 완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운이 불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합니다. 군대가 될 수 없습니다. 진군할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주는 미국 본토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땅덩어리입니다. 1867년 미국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아무데도 쓸모없어 보이는 얼음덩어리인 알래스카(한국의 7배, 151만 8,717평방km)를 제정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사들였습니다. 미 의회는 발칵 뒤집혀 대통령에게 온갖 질책과 공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황금과 백금광산, 풍부한 어장, 우거진 삼림, 엄청난 석유 매장량 등으로 황금박스로 불리고 있습니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 땅의 가치를 예견의 눈을 가진 사람은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알래스카를 사는 것 같은 축복의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바라보는 예견의 눈이 없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생겨도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오히려 더 복받을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환란과 역경이 닥쳐도 언제나 당신의 각본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더 감사하고 찬양하여 큰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예견의 눈을 가진 성도가 됩시다.


끝맺는 말

이상은 크지만 비전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상은 최고의 접점을 찾아 올라가지만 비전은 최하의 접점을 향해 내려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보좌를 버리고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신 것같이 말입니다.

비전은 허황된 일장춘몽이 아닙니다. 소박한 현실과 미래의 꿈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적같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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