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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을 바다에 던져라 (막 1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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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우 목사 (한남제일교회)

오늘 성경에 보면 산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산을 바다에 던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하신다면 몰라도 여러분이 산을 바다에 던질 수 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내가 된다 안 된다를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넌센스 퀴즈를 내겠습니다. ‘오뎅’을 다섯글자로 늘려 보십시오. ‘뎅뎅뎅뎅뎅’
이런 이야기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되는 수도 있고, 안되는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웃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넌센스 중에 참새시리즈, 만득이시리즈, 최불암시리즈,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데, 답은 간단합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문을 닫는다.”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묻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역업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코끼리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냉장고를 수입한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문을 닫는다.” , “우리가 쓰는 냉장고에 들어갈만한 코끼리를 수입한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문을 닫는다.”
철학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개를 한 마리 산다. 술을 실컷 마신다. 개가 코끼리처럼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코끼리로 생각되는 순간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경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개를 한 마리 잡아온다. 고문을 시킨다. 코끼리라는 자백을 받아낸다.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유전공학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냉장고에 들어갈만한 코끼리로 유전자 변형시킨다. 문을 열고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이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입니다. 웃음입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우리가 나름대로 결정해서 된다, 안된다가 아니라, 말이 안되는 것같은 것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 장로님댁이 이사를 하려고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당시 시세보다 싸게 이사하려고 3억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자분이 찾아와서 저는 이 아파트 단지 작은 평수에 사는 사람입니다. 큰 평수가 나왔다길래 제가 왔습니다. 저는 이 근처 교회에 다닙니다. 제가 가진 돈이 2억6천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분이 교회 다녀 오면서 딱 찍고 “하나님 주실 줄로 믿습니다. 넌 내거야. 하나님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장로님이 제게 오셔서 집 팔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기도하셨답니다. 제가 주었습니다. 그분의 기도에 제가 쓰임받는 것 같아 나에게도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손해 본 느낌이 안 드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새로 등록하신 분이 있어 심방을 갔습니다. 이 분은 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하고 싶어서 “하나님, 이런 집에서 신앙생활하고 싶습니다.” 찍어놓고 복덕방에 들렸더니, 그 집 주인 자기보다 한걸음 먼저 와서 집을 내놓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 아주 싸게 이사했습니다. 우리는 가서 이렇게 싸게도 얻을 수 있나 하며, 은혜 끼치러 가서 은혜 받고 왔습니다.
얼마 전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 집의 남편은 홀쭉이고, 부인은 좀 포동하십니다. 그래서 부인과 반반이 되도록 하여 주시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그날 가서 보니 두 분이 똑같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저희 부부가 하나는 홀쭉하고, 하나는 포동해서 둘이 같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함부로 할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고, 기도하는 자에게 기쁨이 있을줄로 믿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많은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화입니다. 그대로 됩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따르던 군중들이 다 떠나가고 열두제자만이 남습니다. 세상이 다 그러합니다. 기적의 주인공도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소수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없어도 잘 사는 법, 기적을 이루는 법을 가르치겠노라고 하면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말라 죽었습니다. 제자들이 놀랍니다. 열매가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를 상징합니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를 지도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산더러 들리워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대로 이루어질줄 믿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이 산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설악산, 지리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집사님이 “설악산아, 들리워 동해로 가라”, 옆에 있는 집사님이 “아닙니다. 서해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떻하겠습니까? 물론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산의 의미라고 하는 것은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에 잡혀갔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성전건축을 합니다. 성전건축을 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를 해서 짓지 못합니다. 그 때 스가랴 선지자가 말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 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 때에 산이라고 하는 것은 장애물입니다. 풀어야 할 문제요,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 산을 바다에 던져지라는 것은 문제를 풀고, 숙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장애물을 물리칠수 있는지 예수님이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잘 들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방법을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내가 판단하지 말자.
23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 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디아크리노마이’입니다. 이 말의 뜻은 ‘~를 통해서 판단하다. ~를 결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의심하지 아니하면, 판단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뜻입니다. 의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도 의심은 옵니다. 마귀가 의심을 주기 때문입니다. 자꾸 우리에게 하는 말이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 보지도 말라’ 이것입니다. 마귀는 의심의 화살을 자꾸 쏘아댑니다. 마귀가 쏘는 의심의 화살을 내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의심이 모든 것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 형편에, 내 환경에, 내 주제에…” 이것은 아닙니다.
의과대학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매독이라는 성병에 걸려있고, 어머니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자녀가 넷이 있는데, 큰 아들은 병으로 죽고, 나머지 세 아이는 폐결핵에 걸려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 “이 아이를 낳아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고 질문했습니다. 한 학생이 손을 들며 하는 말이 “그 아이는 낳아서는 안 됩니다. 낙태수술을 시켜야 합니다.” 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방금 음악의 성자 베토벤을 죽였다.” 였습니다.
베토벤이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가끔 의료적 판단, 지성적 판단을 갖고 마치 된다와 안 된다를 결정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합니다. 인간의 지식을 너무나 과신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안됩니다. 내가 판단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보다 앞선 골프의 황제가 있습니다. 골프의 전설이라고 하는 잭니콜라우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골프는 나의 인생」이라는 자서전을 썻습니다.

내가 오늘에 이룰수 있었던 것은

첫째,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호주에 가서 낚시를 가서 오후 5시에 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너무나 커서 몇 백 키로 짜리를 끌어올리는데 친구랑 하다가 안 되자, 친구가 “우리 포기하자, 네가 뭐 아쉬워서 이것을 잡으려고 하냐?” 이러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밤11시까지 물고기와 실갱이를 하다가 잡아올렸습니다. 고기가 귀해서가 아닙니다. 한번 잡으면 놓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둘째, 나는 시합에 나가면서 우승한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렇지만, 꼭 우승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일로 인해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의 앞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나를 판단하고 마는 것입니다. 내 주제에, 내 형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적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겠냐 말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기억할 것은 다 내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다고 안된다는 것입니다. 되고 안되고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판단, 이 믿음의 단계를 넘어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4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 하셨고, 받은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할까, 말까를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셉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수생활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노예생활에서도 함께 하시고, 애굽의 국무총리를 하면서 승리한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하루는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제물로 바쳤습니까? 안 바쳤습니까? 그래서 제물로 바쳤는데, 막상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을 바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네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 순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보라는 소리도 안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가시덤불에 걸린 양이 보입니다. 그 양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이런 행위를 가르켜서 설명하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죽게 하셔도 다시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갖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이 양을 따로 두어서 준비하셨다라고 합니다만,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원어상에서 보면 준비했다라는 뜻도 있지만, 보고 있다라는 뜻도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리아 산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 산에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서 올라갑니다. 꼭대기에 갔더니, 양이 한 마리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준비해 놓고 올라오면 주실려고 주셨는지, 보고 계시다가 양을 끌고 올라가셨는지.
우리는 기도할 때에 그 때부터 하나님이 줄까 말까를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고, 받은 줄로 믿으라 하는 말씀의 뜻은 ‘엘라베테’ 과거형입니다. 이미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준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신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받은 줄로 믿으라, 기적을 이루는 믿음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항상 준비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기도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그 순간’, ‘일주일 후에 응답한다. 일년 후에 응답한다’ 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도할 때에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 명’이라고 하는 사람의 간증집 가운데 「백이 도대체 누구야?」 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다니엘 명이라는 사람은 목사님 아들입니다. 1996년도 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취업을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공부를 참 잘했습니다. 뛰어난 인재입니다. 미국의 최상법인 여섯군데 가운데, 네곳에서 오라는 제의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좋은 1위 회사인 ‘아서 앤더슨’ 이라고 하는 회계학 전공자들의 꿈의 대상인 곳에서도 제의가 왔습니다. 망설일 필요 없이 1등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지막 면접을 하는데, 이 회계사라는 직업이 수준 있는 직업이지만,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주일날도 일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주일날도 교회 못가고 일한다는 것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이 여섯군데 회사중 꼴찌인 ‘쿠퍼스 & 라이브랜드’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사장의 마음에 꼭 드는 인재란 말입니다. “어떤 조건을 들어주면 회사에 오겠는가?” ,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른 조건은 필요없습니다. 돈도 아닙니다. 출세도 아닙니다. 주일날 교회에 갈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흔쾌히 승낙을 합니다. 알고보니, 그 사장도 크리스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신앙만 지키면 되지, 굳이 주일날 갈 필요가 있는가? 1위 회사를 두고, 꼴찌 회사를 갔는가 하며 비아냥 거립니다. 같이 믿는 사람까지 그럽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당시 1위 회사였던 ‘아서 앤더슨’은 ‘앤론’이라는 회사와 더불어 회계부정 사건에 휘말려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6번째 회사는 2년 후 빅5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와 합병하여 일약 1위 회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명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꼴찌를 선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꼴찌를 1등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고 주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더 크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기적을 이루는 믿음의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주시는 하나님인줄 믿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 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성실한 믿음 생활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기적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이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8장18-19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왜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능력이 없어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대로 우리 말에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되면 자기가 잘해서 그러는 것처럼, 안 되면 누구 때문에 안된다고 합니다. ‘부모 때문에 안 된다. 이 나라에 태어나서 안 된다. 교회 탓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는 내가 받아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잘 되고, 안 되고의 영향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을 용서하고, 그것을 봐 줄 수 있을 때 기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억울하면 예수님만큼 억울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용서는 저들이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길입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의사가 있습니다. 풀 트르니에 라는 분이 있는데, 그중에 한 소녀 환자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빈혈입니다. 약물치료도 안 됩니다. 심리치료도 안 됩니다.
할 수 없이 요양소에 보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병이 나았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춘기 나이에 질투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 아이의 마음에 그것이 굉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불치의 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자신은 죽는다,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니,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것,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마음의 평안이 옵니다. 육신의 건강이 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용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나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보시면 구원 받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며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의 남편과 우리의 아내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의 부모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조금이라도 그분에게 마음의 섭섭함이 있으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받을 생각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고, 기적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셔야 우리의 삶에도 기적을 이룰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고 이 믿음으로 기적을 이루어 가고 즐겁고 힘있는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결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의 신앙의 삶을 살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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