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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도 사람입니다. (행 14:8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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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2004.06.13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교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나 선뜻 나설 수 없는 일입니다. 선교사는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미국 어느 대학교에서 한국의 선교사에게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학교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셨습니다. 그 학교에선 대단한 행사를 치렀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라는 곳에 갔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앉은뱅이도 그의 설교에 취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그 사람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그 사람을 보면서 “당신의 발로 일어서시오.”(Said with a loud voice, Stand upright on thy feet.)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And he leaped and walked.)사람들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놀랐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했습니다. 그들은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The gods are come down to us in the likeness of men.)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울은 주로 말하기 때문에 헤르메스라 불렀습니다. (And they called Barnabas, Jupiter : and Paul, Mercurius, because he was the chief speaker.) 온 성은 야단났습니다. 성 밖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몇 마리의 소와 화환을 성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무리와 함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런 돌발적인 사태를 수습해야 했습니다. 사람인 그들이 신이 된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었습니다. 군중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왜 이러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And saying sirs, why do ye there things? We also are men of like passions with you.)  "여러분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것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And preach unto you, that ye shoud turn from these vanities unto the living God, which made heaven, and the sea, and all things that are therein:)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도 오늘 “나도 사람입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앉은뱅이를 고침.

루스드라는 이고나온에서 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디모데의 고향이었습니다.(행 16:3, 딤후 1:5) 루스드라 동남쪽 27Km에 있는 더베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종점이었습니다. 두 도시가 루가오니아 지방에 속했으나(행 14:6) 얼마 후에 갈라디아에 편입되었습니다. 루스드라 전도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고친 일입니다. 이 일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숭배하려고 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똑바로 일어서라.”고 큰 소리로 말하여 고쳐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였습니다. 거기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거지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다같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별다른 약을 쓰지 않고 고쳤습니다. 사도가 앉은뱅이를 보았다는 것 등이 다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나 바울, 두 사도가 한 마디 말로 병을 고쳤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즉시 나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약간 다른 것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행 3:2) 그러나 바울 사도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얻으려는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바울은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고쳐준 사람은 믿음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힘을 북돋우어 주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적을 보여주신 것은 힘을 얻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셨습니다. 온 천하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육체도 고쳐주신 것입니다. “네 발로 일어나 걸으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에게 이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라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요즈음은 좀 덜합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도 신유의 은사를 받으신 부흥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흥회하는 교회가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능력이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해야 합니다. 먼저 영혼의 병을 고쳐야합니다.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루스드라의 이적은 전도에 큰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환자가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사람이 바울의 설교에 취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믿음이 병 고침 받을 만 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설교를 멈추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발로 일어나라.”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울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 사람이 뛰어 걸었습니다. 이런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야단이 났습니다. 그 사람은 일어서서 펄쩍 펄쩍 뛰며 돌아 다녔습니다. 어떤 약을 준 것도 아닙니다. 침을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이전에 이런 일을 전혀 본 일이 없었습니다. 

Ⅱ. 여러분 나도 사람입니다.

바울이 행하는 이적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11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신들은 당시 최고의 신 제우스를 말합니다. 제우스(Zeus)는 로마의 주피터(Jupiter)에 해당합니다. 쓰쓰신이라 했습니다. 헤르메스(Hermes)는 로마의 머큐리(mercury 木星)의 신으로서 제우스의 대변자였습니다. 언어의 발명자 웅변의 신이었습니다. 바울이 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헤르메스(Hermes)라 하고 바나바를 제우스라 했습니다. 군중들은 흥분했습니다. 당시의 표준 공용어는 헬라어와 라틴어였습니다. 그런데 루가오니아 말로 소리 질렀습니다. 두 사도는 이적에 대해 소리 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이 몇 마리의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왔습니다.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 했습니다. 사람을 신으로 알고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은 군중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예배를 받으신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엎드려 절하는 것을 금했습니다.(행 10:25-26) 천사도 요한의 경배를 금했습니다.(계 21:8-9) 하나님의 사람에게 사람들은 경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다.”(14:15)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입니다. 불완전합니다.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꾀나 유명해지면 이상해졌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예수님이다.”는 엉뚱한 말을 해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그들이 너무 교만했습니다. 그들이 다만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나을 뿐 입니다. 사람은 우주에 한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 대한한양 우쭐대는 것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울은 정말 겸손한 사도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럴 때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신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만 예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의 기념비나 공덕비를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제가 서울 대길교회를 섬길 때였습니다. 그 예배당 터ㆍ건물 모두 다 김인득 장로님과 그 부인 윤현희 권사님이 헌납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머릿돌에다 누가 헌납했다고 새기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인득 장로님은 “나는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사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일을 하고 자기 공로를 앞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이렇게 야단이고 전도가 잘 되는데 사탄의 역사도 강했습니다. 안디옥과 이고나온에서 유대인 종교 깡패들이 몰려왔습니다. 거기서 이곳 까지는 250리(10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바울 전도에 방해꾼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헤르메스,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던 군중들이 변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들이 돌로 바울과 바나바를 쳤습니다. 바울은 성 밖으로 끌려갔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버렸습니다. 그 돌덤이 속에서 바울은 깨어났습니다. 그 다음날 더베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설교가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려웠습니다.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초대 선교는 늘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 갔습니다. 바울이 설교 할 때 많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마침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바울이 설교하다가 큰 소리로 “일어나 걸으라.”했습니다. 그때 그는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때에 이를 본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것은 신이 하는 일이지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헤르메스, 바나바를 제우스라 합니다. 제사장이 소를 끌고 와서 잡아 제사를 지내려 합니다. 바울은 옷을 찢었습니다. 군중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보세요. 우리도 여러분과 꼭 같은 사람입니다. 신이 아닙니다. 제사하지 마세요. 예배를 받으실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유대인 건달들이 몰려왔습니다. 루스드라 사람과 합작하여 핍박했습니다. 바울,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을 줄 알고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다시 살아나서 다를 곳으로 갔습니다. 바울, 바나바는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겸손하며 죽음을 각오한 선교사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6.213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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