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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복음 21장(3) - 빈손 인생의 축복 (요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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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목사([email protected])
     
<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의 거울입니다 >

미국에 사는 한 여자 집사님이 앵무새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는 딱 한 마디 말만 했습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Kiss me, please)." 그런데 그분이 목사님 집에 가니까 그곳에도 앵무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앵무새는 그분을 보더니 "우리 기도합시다(Let's pray)"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앵무새 말을 듣고 목사님이 새롭게 보였다고 합니다. 목사님 집 앵무새는 말도 은혜롭게 잘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은 개도 잘 키워야 합니다. 개가 잘못 짖으면 성도가 시험에 듭니다. 목사님 집 개가 점잖게 짖지 않고 방정맞게 짖으면 은혜가 없다고 목사님이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집 앵무새가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하니,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하게 보였겠습니까?

그분은 목사님 앵무새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앵무새가 좋은 말을 배우도록 목사님 앵무새를 빌려갔습니다. 두 앵무새가 만났습니다. 목사님 앵무새가 집사님 앵무새에게 먼저 인사했습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그러자 집사님 앵무새가 대답했습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 그러자 목사님 앵무새가 흐뭇해서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 주셨군요."

물론 꾸민 얘기지만 이 얘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그 인생은 성공할 확률이 많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그 인생은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좋으신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것은 가장 큰 성공이고,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적은 것은 가장 큰 실패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를 주님과 멀리하게 하는 것은 저주이고, 무엇이든지 우리를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만약 성공으로 주님과 멀어지면 그 성공은 저주이고, 실패로 주님과 가까워지면 그 실패는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실패의 빈손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세일즈맨은 "거절당하는 순간부터 진짜 판매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실패자가 되느냐? 성공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실패해도 실패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단순히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자에게 거침돌은 성공자에게 디딤돌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빈손을 가지고 주님을 확실히 붙잡을 수만 있다면 빈손도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은 잘 말해줍니다.

< 인내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습니다 >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뵙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온 제자들은 처음 며칠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람이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면 그 기다림의 순간이 얼마나 황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기간이 길어지자 그들은 낙심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하고 다 물고기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3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 밤은 소득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인내가 없으면 소득도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 유대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떠나는 동료 유대인들의 죽음의 행렬을 목격하면서도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매일 면도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포기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 오후는 처형자들을 골라내는 시간에 나치들은 삶의 의지로 불타는 그의 잘 면도된 턱을 보고 차마 그를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독일 패망 후 수용소를 나와 스페인에 가서 유능한 외과 의사가 되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우리는 성급히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워도 인내하며 기다리면 기적과 변화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우연히 생기는 기적은 없습니다. 대개 기적은 절망의 순간을 믿음과 기도로 버틴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인내는 쉽지 않지만 인내하면 많은 것을 얻습니다. 성급하게 결정하면 후회하고 후퇴합니다. 그러나 인내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습니다.

<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가끔 일이 너무 힘들 때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다 끝났다." 그러나 우리가 꿈과 사명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결코 끝난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절망은 오히려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꿈을 버리지만 않으면 찬란한 내일은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습니다.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 그 상처만 생각한다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참으로 마음이 힘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급속히 치유하는 보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전입니다.

지난 5월 1일부터 저희가 새로 사랑매거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듯이 독자들에게 하루에 한편씩 글을 메일로 보내주는 사역입니다. 오늘까지 총 195명의 독자를 확보했습니다. 1차적으로 천 명, 2차적으로 만 명, 3차적으로 10만 명까지 독자를 확보하리라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10만 명 정도 독자를 확보하면 한국에서 사랑의 교회나 온누리 교회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메일 사역을 알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아침편지 식구가 지금 110만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는 독자 확보가 쉽습니다. 누가 추천만 하면 바로 메일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자체 메일 시스템이 없어서 인포메일이라고 하는 회사의 대행을 받기 때문에 독자 확보가 훨씬 어렵습니다. 누가 추천을 해도 인포메일에서 확인메일이 가면 대부분 스팸 메일인 줄 알고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는 사람에게 약 80통의 추천메일을 보냈는데 그 추천메일을 읽어본 사람은 고작 3명뿐이었습니다. 자체 메일 발행 시스템이 있으면 80명이 다 읽어보았을 텐데, 거의 읽어보지 않고 스팸메일로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자 확보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글 뒤에 인포메일 회사의 상품 광고가 따라 붙습니다. 그래서 받는 분들이 불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자체 이메일 발송 시스템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러면 10만 명 독자 확보가 환상적인 비전이 아닌 달성 가능한 구체적인 비전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하루에 10만 명이 매일 새벽 제가 보내는 말씀을 먹고 하루의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비전을 생각하고 달려가니까 현재의 교회 규모가 작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목회의 시름과 상처 등이 다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역사는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꿈을 비는 마음'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힘들어도 꿈을 잃지 말아야 아름다운 내열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꿈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비전에서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등잔의 심지가 곧으면 빛이 나옵니다. 그러나 심지가 옆으로 누우면 연기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꿈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연기만 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눕지 말고, 처지지 말고,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원칙을 강요하는 원칙주의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만 좋은 일을 끝까지 지키는 원칙주의자는 되어야 합니다.

< 새벽에 찾아오신 예수님 >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비전을 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능숙한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적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의 실패는 기적입니다. 그처럼 기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허탈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허탈함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동트는 새벽에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날이 새어갈 때에." 아무 소득 없이 제자들은 새벽을 맞았습니다. 새벽 시간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시작되는 눈에 보이는 현상 자체도 신비하지만 무엇보다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는 시간이 바로 새벽시간입니다. 새벽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에 사람이 가장 깨끗하게 되는 시간이고, 첫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시간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새벽 시간에 승리하는 사람은 하루를 승리하고, 그 승리들이 쌓여 인생 전체의 승부에서도 승리한다고 믿습니다. 새벽에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며, 기도의 마지막을 "하나님! 오늘도 우리 새벽기도 식구들과 제단에 속한 성도들과 우리 가족들을 아무 사고 없이 지켜주세요."라는 기도로 마치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보내는 새벽 시간은 그 사람의 사람됨과 성품과 장래를 잘 보여줍니다. 새벽 시간을 잘 보내면 하루의 시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더욱 부지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큰 일을 한 사람 중에서 충분한 수면을 누린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새벽 시간을 잠자는 시간이 아닌 기도하는 시간으로 만든다면 그것처럼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하면 우리에게 있던 각종 어둠이 물러갈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이 물러가고, 어두운 마음이 물러가고, 가정과 영혼의 모든 걱정 근심이 물러갈 것이고, 그때 주님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본문 4절을 보면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빈 손의 제자들을 새벽에 찾아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풍요한 사람은 찾아오지만 부족한 사람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풍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멀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까이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정의라고 합니다. 반대로 기독교는 사랑을 정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끔 교인들도 힘을 정의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되고 힘이 있을 때, 그때는 도움이 필요 없는데 돕겠다고 찾아옵니다. 힘이 있으면 찾아와서 헌신하겠다고 하고, 건축을 돕겠다고 하고, 봉사하겠다고 하고, 전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힘이 없으면 그 순간부터 발걸음이 끊어집니다. 그때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때인데 그때는 외면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릅니다. 주님은 내가 신앙이 좋다고 생각할 때에는 더 이상 은혜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신앙이 부족한 줄 알면 은혜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힘이 있을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힘이 없을 때에는 따뜻한 사랑으로 가지고 급히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리는 순간은 가장 은혜가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외면 당하는 순간은 하나님께서 가장 내 옆에 있는 순간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신앙이 부족하고 나의 신앙생활이 부끄러우면 주님은 나를 멀리하실 것 같지만 그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십니다. 내가 여러 번 실패해도 주님은 결코 나의 사명을 빼앗아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그때 나를 찾아와 주시고 다시 안아주시고, 다시 사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 빈손이 축복입니다 >

그런데 본문 4절을 자세히 묵상하면 주님께서 어디 가셨다가 새벽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아마 그 전에도 계속 지켜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는 예수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고기를 잡아보려고 했는데 주님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나중에는 고기가 안 잡히고 한참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은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혼자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 칠 때는, 예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고기도 안 잡히고 낙심되고 내 힘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느낄 때 주님이 보입니다.

술 먹고 젓가락 두드릴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술이 깨서 허탈함을 느낄 때쯤 주님이 보이게 됩니다. 노름을 열심히 할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벽 1시에서 2시까지는 주님 없이도 돈을 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새벽 5시간 되니까 자신이 빈털터리가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러나 바로 그때 주님이 보이게 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리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끔 빈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 나라 3공화국 초기에 한 젊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분의 취미가 웅변이었습니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전국 웅변대회에서 항상 일등을 했습니다. 누가 웅변대회 등록을 하려다가 그 목사님 이름이 있으면 등록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분은 27살에 목사 되고, 29살 때 7명이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9년만에 5천명이 모였습니다. 웅변을 맡아놓고 1등을 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얼마나 능력 있게 들렸겠습니까?

재산도 엄청났습니다. 한국 목사님들 중에 재산이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요새 돈으로 몇천 억 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쓴 책이 96권으로 32살에 자신 돈으로 직접 세운 4600명 학생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장과 이사장을 했습니다. 45살 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장관을 하라는 제의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잘 생기고, 말 잘하고, 똑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까부는 그 목사님을 치셨습니다. 50세에 쓰러져 3년 동안 말도 못하고, 몸을 가두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옛날같이 말을 잘하고 싶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교인들이 보고 싶어서 못 살겠습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교회 나가서 설교하고 죽게 해 주세요. 딱 한 번 5분 동안만이라도 설교하고 죽게 해 주세요. 그러면 죽을 때 감사하며 웃으면서 죽겠습니다."

거의 의식이 없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 목사님은 계속 "딱 한번! 5분만!"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3년만에 조금 거동하게 해주셔서 그후부터 담임목회는 못해도 그 뒤 자기 간증을 섞어 5백 번 이상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흥회 하면서 그 목사님이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교만하게 하나님 앞에 까불다가 혼나서 이렇게 바보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죽는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 없으면 안됩니다"

결국 빈손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빈손일 때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빈손은 정지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입니다. 그때 방향을 주님 중심적으로 잘 바꾸면 오히려 그때부터 훨씬 복된 인생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실패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싸인입니다. 실패해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한 것입니다. 반면에 성공해도 자기 의를 드러내면 그것은 실패한 것입니다.

왜 간증을 할 때 조심해야 합니까? 잘못하면 자기가 높아지고,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일종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순수하게 간증을 합니다. 그러다가 유명해지고, 강사비도 생기고, 그래서 직장과 자기 일을 그만두고 전문 간증집회 인도자가 됩니다. 그렇게 간증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말, 환상적인 스토리, 모험적인 무용담이 더해지면서 결국 자기가 가장 믿음 좋은 사람,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자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옛날에 '막쪄 낸 찐빵'의 저자 이만재 씨가 처음에는 간증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간증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간증을 하다 보니까 자꾸 자기 의가 드러나고 조금씩 무용담이 첨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문 간증꾼이 될까봐 요새는 간증집회를 사양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살이가 다 자기 뜻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참으로 힘든 때도 있지만 그때의 빈손으로 주님을 더욱 붙잡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주어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고통, 낙심과 좌절의 순간을 통해서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이해보다는 실패 중에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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